본문 바로가기 메뉴 바로가기
뉴스데스크
기자이미지 오해정

역사상 첫 남북정상회담 합의, 일관성없는 北 정책 비판

역사상 첫 남북정상회담 합의, 일관성없는 北 정책 비판
입력 2015-11-22 20:43 | 수정 2015-11-22 21:07
재생목록
    ◀ 앵커 ▶

    김 전 대통령 집권 당시는 탈냉전시대 속에 북핵문제가 새로운 쟁점으로 부각되던 때입니다.

    한미 갈등은 이어지고, 역사상 첫 남북정상회담이 추진됐지만 이뤄지는 못했습니다.

    오해정 기자가 정리했습니다.

    ◀ 리포트 ▶

    핏줄은 이념이나 사상을 뛰어넘는다는 취임사로 김영삼 전 대통령은 북한과의 화해, 협력을 강조했습니다.

    [故 김영삼 전 대통령/취임식(1993년 2월25일)]
    "민족의 화해와 통일에 전심, 전력을 다할 것입니다."

    미전향 장기수 이인모 씨를 조건없이 북한으로 송환하면서 대북 포용기조를 추진했습니다.

    하지만 북한은 핵확산금지조약, NPT를 탈퇴하고 서울을 불바다로 만들겠다며 한반도 긴장을 최고조로 끌어올렸습니다.

    대북정책은 강경 정책으로 급선회했습니다.

    [故 김영삼 전 대통령/취임 100일 기자회견]
    "우리는 핵무기를 갖고 있는 상대와는 결코 악수할 수 없다는 점을 분명히 밝혀 두고자 합니다."

    협상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판단한 미국은 영변 원자로 폭격 가능성을 내비치면서 한반도내 전쟁 가능성이 거세졌습니다.

    김 전 대통령은 미국의 폭격 계획에 강하게 항의했습니다.

    일촉즉발 긴장에 휩싸인 순간.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이 방북해 남북 정상회담을 성사시키면서 한반도 위기는 진정 국면으로 돌아섭니다.

    하지만 회담을 17일 앞두고 김일성 전 주석이 사망하면서 첫 남북정상회담은 무산됐습니다.

    김 전 대통령은 조문은 가지 않으면서 북한에 쌀 15만 톤을 제공해 대북정책에 일관성이 없다는 비판에 직면하기도 했습니다.

    MBC뉴스 오해정입니다.

    당신의 의견을 남겨주세요

      인기 키워드

        취재플러스

              14F

                엠빅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