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앵커 ▶
요즘에는 선거전이 주로 TV를 통해서 이루어지지만 과거에는 벌떼같이 모인 군중의 규모가 정치인의 세를 보여주던 대중연설의 시대가 있었습니다.
이른바 삼김 시절, 100만 군중이 모였다는 여의도 유세전이 대표적이죠.
그때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김세의 기자입니다.
◀ 리포트 ▶
1987년 대선은 16년 만의 이뤄진 대통령 직접 선거였습니다.
1노 3김 구도.
여당의 노태우 후보에 맞선 야권이 후보단일화에 실패하면서 김영삼·김대중·김종필 후보가 나섰습니다.
각 후보들은 구름 인파를 몰고 다니며 세를 과시했습니다.
절정은 여의도 광장 유세였습니다.
100만 명이 모이면서, 인파는 여의도 인근 한강 다리까지 메웠고, 망원경으로 연설을 지켜보기도 했습니다.
[김영삼 후보 (1987년)]
"이제 민주당의 집권, 나의 당선은 움직일 수 없는 천하의 대세가 되고 있습니다."
[김대중 후보 (1987년)]
"오늘 이 대회를 보니까, 이미 선거는 김대중이 이겼습니다."
불상사도 벌어졌습니다.
물 붓듯 돈을 쓰면서 버스를 대절한 군중 동원이 이뤄졌고, 인파수 신경전에, 상대 후보 연설 방해로 폭력 사태가 벌어졌습니다.
[노태우 후보 (1987년)]
"모든 모순된 감정을 누르고 우리 모두 화합합시다. 애국가를 부릅시다. 동해물과 백두산이…"
5년 뒤 1992년 대선.
김영삼·김대중 후보는 과열 선거를 막기 위해 대규모 유세를 취소하기로 합의했습니다.
[김영삼 후보 (1992년)]
"유권자를 불러 모으는 유세가 아니라 찾아가는 소규모 유세를 가지겠습니다."
1997년 대선부터 TV 합동 토론회가 시작되고 여의도 광장이 공원이 되면서 100만 인파의 유세는 역사 속으로 사라졌습니다.
MBC뉴스 김세의입니다.
뉴스데스크
김세의
김세의
치열했던 3김 정치, 100만 인파 몰렸던 대규모 유세
치열했던 3김 정치, 100만 인파 몰렸던 대규모 유세
입력
2015-11-23 2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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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2015-11-23 2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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