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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소하고 정 많은 동네 어르신, '인간 김영삼'의 삶

검소하고 정 많은 동네 어르신, '인간 김영삼'의 삶
입력 2015-11-26 20:55 | 수정 2015-11-26 2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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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앵커 ▶

    대한민국의 민주화의 꽃을 피운 고인을 많은 이들이 좌절을 모르는 승부사로 기억합니다.

    ◀ 앵커 ▶

    그럼 한평생 가까이서 지낸 이웃들은 어떻게 기억하고 있을까요?

    오유림 기자가 만나봤습니다.

    ◀ 리포트 ▶

    경남 거제시 장목면에서 태어난 故 김영삼 전 대통령은 어릴 때부터 배짱좋은 소년이었습니다.

    일본인 교장이 한국인 학생에게 이삿짐을 나르게 하자 설탕 자루에 구멍을 내 앙갚음을 했다 무기정학까지 당했습니다.

    하지만 책상 앞에는 '미래의 대통령 김영삼'이란 붓글씨를 붙이고 꿈을 키워간 당찬 소년이었습니다.

    1980년 군부독재에 맞서다 가택연금을 당했을 때는 앞집 꼬마에게 대장동지였습니다.

    열 살 꼬마동지는 하루에도 몇 번씩 집을 드나들며 바깥세상과 연결고리가 됐고 그 일화를 책으로 내기도 했습니다.

    [이규희/당시 꼬마동지]
    "편히 쉬셨으면..아무 말 안 했어요. 그냥 인사만 드렸어요. 오랜만에 만나뵀거든요."

    좋아하던 산에 가지 못해 정원을 산책할 때 신던 등산화는 대통령이 된 후에도 함께 했습니다.

    한 등산화를 20여 년을 넘게 신을 만큼 검소한 생활에 익숙했습니다.

    [임명형/수제화 가게 사장]
    "그게 70년대 거예요. 10년, 20년 이 정도 신는다 그러면 거의 새로 구비를 하시는데 (수선해 가셨어요.)"

    상도동 주민들은 故 김영삼 전 대통령을 '정 많은 동네 어르신'으로 기억합니다.

    반세기 동안 상도동에 살면서 아침 일찍 조깅하면서 인사도 나누고 함께 배드민턴도 쳤습니다.

    구수한 사투리와 재치있는 말로 숱한 일화를 남긴 김영삼 전 대통령의 마지막 모습은 병상에 누워서도 손으로 브이(V)자를 그린 밝은 표정이었습니다.

    MBC뉴스 오유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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