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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브닝 이슈] '진상 고객' 갑질, 감정노동자들의 설움

[이브닝 이슈] '진상 고객' 갑질, 감정노동자들의 설움
입력 2016-04-26 17:42 | 수정 2016-04-26 17: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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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앵커 ▶

    최근 은행을 찾은 한 30대 남성이 은행 여직원에게 일할 때는 웃으라고 강요를 하면서 소란을 피운 적이 있었죠.

    즉결심판에 넘겨졌는데, 이례적으로 구류 5일이 선고됐습니다.

    이 시간에는 일명 '진상' 고객들로 인해 고통을 받고 있는 감정노동자들의 실태를 짚어보겠습니다.

    먼저 이 사건 내용부터 살펴보겠습니다.

    ◀ 리포트 ▶

    서울 서초구의 한 은행입니다.

    30대 허 모 씨는 지난 8일 이 은행에서 소란을 피웠다가 은행 직원의 신고로 경찰 조사를 받았습니다.

    신고에 앙심을 품은 허 씨는 오후에 다시 은행을 찾아가 시비를 걸기 시작했습니다.

    여직원에게 "왜 이렇게 불친절하냐", "일할 때는 웃으라"고 강요했습니다.

    또 "눈이 잘 보이지 않는다", "손이 떨려 숫자를 못 적겠다"며 5천만 원이 넘는 돈을 직접 세어달라고 해 1시간 넘게 업무를 지연시켰습니다.

    이런 행동에 직원들은 항의했고, 허 씨는 직원들이 자신을 위협했다며 거짓 신고를 했다가 즉결심판에 넘겨졌습니다.

    [신재환/서울중앙지법 형사공보관]
    "무리한 서비스를 요구하여 업무를 방해한 뒤 이에 항의하는 은행원을 오히려 경찰에 거짓 신고한 사안으로 그 잘못이 가볍지 않다고 판단해 구류형을 선고한 것입니다."

    ◀ 나경철 아나운서 ▶

    이번 사건에 대한 법원의 판결 내용을 자세히 들여다보겠습니다.

    서울중앙지법 재판부는 허 씨에 대해 "세상 누구도 웃으라고 '강요'할 권리는 없다"면서, 구류 5일을 선고했습니다.

    또 "서비스직 종사자는 무조건 고객에 맞춰야 한다는 허 씨의 사고방식은 문제가 있다"고 밝히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보통 벌금형으로 마무리하는 즉결심판에서 구류 처분이 나온 것은 흔치 않은 일인데요.

    '구류'는 경찰서 유치장이나 교도소에 하루에서 30일 사이 가둬두는 형을 말합니다.

    다만 재판부는 정식재판을 통해 엄한 처벌도 생각했지만, 허 씨가 범죄 전력이 없고 허 씨의 앞날을 생각해 즉결법정에서 선고한다고 설명했습니다.

    ◀ 앵커 ▶

    항공기 승무원이나 백화점 직원 등이 일명 '진상' 고객들 때문에 어려움을 겪는 얘기들 들으셨을 텐데요.

    최근 어떤 사건들이 있었는지 이번에는 유선경 아나운서와 함께 되짚어보겠습니다.

    ◀ 유선경 아나운서 ▶

    항공기 승무원들은 대표적인 '감정노동자'죠.

    견과류 '마카다미아'를 그릇이 아닌 봉지째 내놨다며, 승무원을 내리게 한 이른바 '땅콩회항'사건 등이 기억나실 것 같습니다.

    최근 기내에서 이른바 '갑질' 행위를 한 승객들이 제주공항 경찰대에 의해 연이어 입건되기도 했는데요.

    이들 중에는 비행기 이륙이 왜 지연되냐며 승무원을 가방으로 때리는 등 폭력을 행사한 혐의로 붙잡힌 승객도 있었습니다.

    백화점이나 마트에서도 이런 '갑질' 사건이 일어나 사회적 파장을 일으키기도 했죠.

    판매원이나 주차요원 등이 화를 내고 있는 고객 앞에서 무릎을 꿇고 있는 모습이 잇따라 목격되기도 했는데요.

    보도 내용을 함께 보겠습니다.

    ◀ 리포트 ▶

    젊은 여성이 의자에 앉은 채, 무릎을 꿇은 매장 직원 2명에게 화를 내고 있습니다.

    [고객]
    (그게 아니고요, 고객님.)
    "그게 아니면 뭐야. 알았다고. 본사에 얘기했다고, 니들 서비스에 대한 문제나 해결하라고."

    발단은 무상 수리 문제였습니다.

    여성 고객의 어머니가 매장을 찾아와 팔찌와 목걸이 무상수리를 요구하다 거절당하는 일이 있었습니다.

    구입한 지 너무 오래된 제품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고객의 항의가 이어지자 결국 본사에서 무상 수리를 해주기로 결정했습니다.

    그러자 며칠 뒤 이번에는 딸이 매장을 찾아와 왜 처음부터 어머니에게 무상수리를 해주지 않았느냐며 항의를 하기 시작했고, 1시간가량 소동이 계속되자 직원들이 고객의 화를 달래기 위해 무릎을 꿇은 겁니다.

    ==============================

    서울 황학동의 한 대형마트에서도 고객 37살 박 모 씨가 마트 보안요원과 직원을 폭행한 사건이 뒤늦게 알려졌습니다.

    [박 모 씨/마트 고객]
    "내가 그럴만한 집안이기 때문에 소리 지르는 거야. VIP 고객한테 XXXX이야, 몇억씩 쓴 사람한테?"

    자신을 VIP 고객이라고 주장한 박 씨는 '내가 누군지 아느냐'며 약 30분 동안 난동을 부렸고, 이 과정에서 보안요원이 박 씨에게 맞아 피를 흘리기까지 했습니다.

    ◀ 유선경 아나운서 ▶

    텔레마케터나 콜센터 등에 전화를 걸어 욕설이나 성희롱을 하는 '진상' 고객들이 많습니다.

    기업 콜센터에 1년 동안 무려 1만 번이나 전화를 해서 상담원을 괴롭힌 남성이 구속되는가 하면, 112 경찰 신고센터에 매일 전화를 걸어 다짜고짜 욕을 한 남성이 붙잡히기도 했습니다.

    사건 내용을 보도 영상으로 준비했습니다.

    ◀ 리포트 ▶

    교회에서 훔친 노란색 승합차를 마치 자기 것인 양 5일 동안 몰고 다닌 남성.

    절도 혐의로 40살 김 모 씨를 붙잡은 경찰은 김 씨의 전화 통화 기록에 온통 '112'만 찍혀있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가족도, 친구도 없이 하루 두 번씩 통화한 대상은 오직 112신고센터, 통화는 항상 욕설로 시작했습니다.

    [실제 112신고센터 녹취]
    (경찰입니다.)
    "범인들은 다 놔두고 XX가. 멀쩡한 신고한 사람들만 걸면 되겠냐 XX들아, 진짜?"

    경찰조사에서 김 씨는 "외로워서 그랬다"고 한 것으로 전해졌지만, 다짜고짜 폭언부터 하는 이런 전화에 시달리는 경찰관들의 고충은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

    한 이동통신사 상담센터에 걸려온 전화입니다.

    [상담 고객]
    "전화 연결 하나 해달라니까 지금 뭐하는 거야?"
    (고객님, 저희 쪽에선 이 번호로 연결이 어렵습니다.)
    "지금 너 뭐하는 짓이야 이 XX야. XX같은 소리만 하고 있네."

    성희롱 발언도 서슴지 않고 내뱉는 이 남성.

    (더 이상 하실 말씀 없으십니까?)
    "쪽쪽 소리 내봐. 미치겠다."

    지난 1년 동안 1만여 차례나 상담센터에 전화를 걸어 욕설과 성희롱 발언을 늘어놨습니다.

    휴일도 없이 하루 평균 서른 번 가까이 여성 상담원을 괴롭히는 전화를 건 것입니다.

    [모 이동통신사 상담원]
    "일주일에 많게는 10번 정도…. 스트레스로 장염이라든지, 위경련이라든지 (병이 났죠)."

    ◀ 앵커 ▶

    소비자 입장에서 서비스가 미흡한 부분에 대해서 얘기를 하는 것은 당연하겠죠.

    하지만 그 강도와 빈도가 지나치거나, 얘기를 하는 방식에 있어서 상대방을 무시하는 듯한 인격모독적인 태도는 취하지 말아야 하는 건데요.

    그렇지 못한 게 문제가 되고 있는 겁니다.

    이번엔 감정노동자들이 겪는 실태에 대해서 좀더 자세히 알아보겠습니다.

    유선경 아나운서, 우리나라에 '감정노동'이라고 할 수 있는 일에 종사하는 사람, 얼마나 되나요?

    ◀ 유선경 아나운서 ▶

    한국안전보건공단의 보고서 내용을 살펴보면요.

    국내에서 유의미한 수준 이상으로 감정노동을 하는 사람의 수는 약 5백 92만 명이 넘는 걸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그럼 어떤 직종이 감정노동의 강도가 심할까요.

    한국고용정보원이 주요 직업 730개의 감정노동 강도를 비교해 봤는데요.

    감정노동이 가장 센 직업 1위는 '텔레마케터'로 나타났습니다.

    이어서 '호텔 관리자'와 '네일 아티스트'가 공동 2위에 올랐고요.

    '중독 치료사'나 '창업 컨설턴트' 그리고 '주유원' 등도 감정노동이 많은 직업으로 꼽혔습니다.

    그럼 이들은 어떤 괴로움을 호소하고 있을까요.

    한국노동사회연구소가 백화점 직원 등 유통 관련 사업장 114곳에서 일하는 3천여 명의 감정노동 실태를 조사했는데요.

    "고객에게 부정적인 감정을 숨기려고 노력한다"는 응답이 전체의 96%로 나타났습니다.

    또 "회사의 요구대로 감정표현을 할 수밖에 없다"는 답변이 89%, "그래서 힘들다"는 답변이 83%로 높게 나타났습니다.

    최근 1년간 고객으로부터 무리한 요구나 괴롭힘을 당한 적이 있다는 응답이 61%였는데요.

    괴롭힘 가운데는 폭언이 39%로 가장 많았고, 폭행과 성희롱 등도 있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업무상 질병 진단을 받은 비율도 전체 3명 중에서 1명꼴이었는데요.

    방광염이 17%로 가장 많았고, 족저근막염, 우울증도 많이 앓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 앵커 ▶

    감정노동을 하는 직원들의 피해가 이어지다 보니, 기업들이 진상 고객, 갑질 고객에 대응하는 매뉴얼까지 발간했다고 합니다.

    이 내용은 나경철 아나운서가 전해드립니다.

    ◀ 나경철 아나운서 ▶

    롯데그룹에서는 이달 초 갑질 사례와 이에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를 다룬 매뉴얼 1만 권을 사내에 배포했습니다.

    보시는 것처럼 고객으로부터 성희롱이나 폭언, 협박 등을 당했을 때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상세히 설명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사내 매뉴얼로 감정노동의 피해를 다 막기는 어려워 보이는데요.

    감정노동자들을 위한 법 제정은 어떻게 돼 가고 있는지 살펴보겠습니다.

    금융권 감정노동자 보호를 위한 법안 5건은 본회의를 통과했지만, 일부 법안은 국회에 여전히 계류 중인 상황입니다.

    지난해 11월, 산업재해보상 보험법은 시행령이 개정된 바 있는데요.

    고객의 폭언 등으로 우울증이 생길 경우에도 산업재해로 인정해주기로 한 겁니다.

    영상, 함께 보시죠.

    ◀ 리포트 ▶

    밀려드는 주문 전화에 눈코 뜰 새 없는 주방 일까지.

    피자 체인점 점장인 한동훈 씨는 힘들어도 미소를 잃으면 안 됩니다.

    주문을 하면서 술·담배를 사오라는 손님, 나가면서 자기 집 쓰레기를 버려달라는 사람도 있습니다.

    [한동훈/피자 체인점 직원]
    "배달 갔을 때 속옷 차림으로 나오는 고객들이 있습니다. 정신적으로 깜짝 놀라고 스트레스를 많이 받습니다."

    한 씨처럼 감정노동자의 상당수가 최근 1년간 폭언과 폭행, 심지어 성희롱을 직접 경험했고, 종사자의 83%는 참기 힘들다고 답했습니다.

    [고객센터 직원]
    "'이건 성희롱이다' 저희는 단정을 짓지만 고객이기 때문에 끝까지 답변을 해야 되는 거죠."

    이렇게 화를 참다 우울증까지 겪는 경우도 적지 않지만 뒷감당은 고스란히 본인 몫입니다.

    앞으로는 고객의 횡포로 우울증 같은 정신질환에 걸리면 산업재해로 인정돼 정부가 치료비나 요양비를 지원합니다.

    우울증이 우려되는 경우 사업주는 휴식시간을 늘리거나, 업무를 바꿔주는 등 산재를 막기 위해 노력해야 됩니다.

    [이기권/고용노동부 장관]
    "치료받는 기간 동안 평균 임금의 70%를 휴업급여로 지급할 예정입니다."

    고용부는 전속 대리기사와 신용카드 모집인 등 지금까지 산재 대상에서 제외됐던 3개 직종 11만 명도 보험 대상에 포함시키기로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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