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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 ' 가두방송 주인공, 계엄군 고문 38년 만에 폭로

'5.18 ' 가두방송 주인공, 계엄군 고문 38년 만에 폭로
입력 2018-04-30 20:39 | 수정 2018-04-30 2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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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앵커 ▶

    5.18 민주화운동 당시 계엄군의 만행을 가두방송으로 알렸던 차명숙 씨가 38년 만에 계엄군에게 받은 고문 실태를 폭로했습니다.

    열아홉 나이에 받은 극심한 고문으로 후유증에 시달려 온 차명숙 씨는 가해자의 처벌을 이야기했습니다.

    박수인 기자입니다.

    ◀ 리포트 ▶

    1980년 5월 19일,

    당시 열 아홉 살이던 차명숙 씨는 광주시민들이 계엄군에 의해 무차별 폭행을 당하는 모습을 본 뒤 스스로 가두방송에 참여했습니다.

    사흘간 광주 거리를 돌며 계엄군의 만행을 알리던 차씨는 21일 전남도청 앞 계엄군의 발포가 있은 뒤 병원에서 부상자를 돌봤고, 이때 기관원들에게 체포됐습니다.

    505 보안대 지하로 끌려간 차씨에게는 끔찍한 고문이 이어졌습니다.

    [차명숙/ 5.18 당시 가두방송]
    "하얀 속옷이 까만 잉크색으로 변하도록 살이 터져 피가 흘러나와 앉을 수도 누울 수도 없었습니다."

    광주교도소로 이감된 뒤에도 고문은 이어졌습니다.

    불온발언을 했다는 혐의를 뒤집어씌우기 위해 고문으로 거짓 자백을 유도했습니다.

    특히, 쇠사슬이 연결된 가죽 수갑, 이른바 혁시갑으로 양손과 허리를 결박당한 채 한 달 동안 징벌방에서 지내기도 했습니다.

    [차명숙/ 5.18 당시 가두방송]
    "가죽 수갑을 양쪽 손목에 찬 채 먹고 자고 볼 일까지 보면서…짐승만도 못한 상태로 지내야 했습니다."

    계엄령 위반 등의 혐의로 15년형을 선고받은 뒤 81년 12월 가석방으로 출소했지만 극심한 고문 후유증에 시달렸습니다.

    최근 재심에서 무죄를 받은 차 씨는 전두환 회고록같이 5.18을 왜곡하는 일이 이어지자 38년 만에 용기를 냈고 광주교도소 수감기록에 나오는 고문 가해자들을 고발하기로 했습니다.

    차 씨처럼 5.18 당시 계엄군에 연행돼 고문 피해를 당한 광주시민은 3천여 명에 달하지만, 구체적 물증이 남아있지 않아 가해자 처벌로 이어지지 못하고 있습니다.

    MBC뉴스 박수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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