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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4번 찍어도 '초범·반성' 내세우면 "벌금만"…실형 3%에 그쳐

254번 찍어도 '초범·반성' 내세우면 "벌금만"…실형 3%에 그쳐
입력 2018-10-09 20:25 | 수정 2018-10-09 2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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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 ▶

    그렇다면, 이 불법촬영 범죄에 대한 법원의 판단은 어떨까요?

    어떤 기준으로 유무죄와 형량을 판단할까, 또 정말 디지털 성범죄에는 유독 관대한 걸까, 이런 궁금증을 풀기 위해 취재진은 법원 판결문들을 입수해 하나하나 살펴봤습니다.

    이 판결문 안에는 이 문제의 실마리를 풀 몇 개의 키워드들이 있었습니다.

    취재진은 판결서사본제공 신청 제도를 통해 올해 상반기 서울 지역 다섯 개 법원의 불법촬영 범죄 1심 판결문들을 모두 입수했습니다.

    238건.

    우선 재판 결과를 보니, 실형이 선고된 경우는 모두 34건으로 14%였습니다.

    하지만, 대부분 강간이나 상해 등 다른 혐의와 함께 기소된 경우였고, 불법촬영 범죄만으로 실형을 받은 건 7건으로 3%에 그쳤습니다.

    10명 중 8명 이상이 풀려난 겁니다.

    절반에 가까운 피고인이 벌금형을 받았고 '이번만은 봐주겠다'며 선고를 미루는 선고유예도 12건이었습니다.

    두 건은 무죄를 받았는데, 이 중 하나를 살펴봤습니다.

    "수치심"

    작년 9월, A씨는 이곳 거리에서 여성 3명의 뒷모습을 몰래 찍다 붙잡혔습니다.

    그런데 재판에서는 무죄를 선고 받았는데요, 법원은 피해 여성들의 옷차림을 고려했습니다.

    모두 치마나 반바지를 입고 있었는데, 맨살이 찍힌 부분이 많지 않아 과도한 노출이 아니라고 본 겁니다.

    그러면서 "피해 여성들이 불안감과 불쾌감을 느꼈겠지만, 수치심까지 느꼈다고 보긴 어렵다"고 덧붙였습니다.

    두 달 뒤, 비슷한 사건을 두고 정반대의 판결이 나왔습니다.

    버스에서 치마를 입은 여성의 전신을 찍은 사건인데, 법원은 "혐오감과 수치심을 느꼈다"는 피해자의 진술에 주목해 벌금형을 선고했습니다.

    남을 몰래 촬영하는 행위 자체보다는 수치심 여부에 주목하고, 여기에 '수치심을 느끼는 신체 부위'의 기준조차 모호하다 보니 동일 사건 안에서도 유무죄가 엇갈립니다.

    지하철역 등에서 여성들의 다리를 몰래 찍다 재판에 넘겨진 B씨.

    법원은 B씨가 몰래 찍은 사진 38장 중 전신이 찍힌 6장은 무죄라며, 32장만 유죄로 인정했습니다.

    여성계에선 수치심 여부를 양형 기준으로 삼는 것 자체가 문제라고 지적합니다.

    [김영미/한국여성변호사회 이사]
    "법 자체가 성적 수치심을 유발할 수 있는 타인의 신체를 찍어야 되거든요. 피해자가 느끼는 감정을 그냥 막연한 추측으로 '이 정도는 별로 심각하지 않을 거야'라고 생각하는 것은 너무 경솔한 판단인 것 같고…"

    "초범"

    형량을 낮춰주는 사유도 다양했습니다.

    가장 흔한 사유는 동종 전과가 없는 초범이라는 겁니다.

    회사 탈의실에 카메라를 설치해 보름 동안 동료 여성들을 몰래 찍다 적발된 남성은, 피해자들이 엄벌해달라고 탄원까지 했지만 '초범'이라는 이유로 집행유예를 받고 풀려났습니다.

    전체 판결 사례 중 초범은 186명.

    하지만, 이들은 붙잡힌 게 처음일 뿐, 평균 범행횟수는 11건에 달합니다.

    무려 254번이나 여성의 신체를 몰래 촬영했지만 역시 초범이라는 이유로 벌금형을 받은 경우도 있었습니다.

    "반성"

    '반성' 여부도 강력한 감경 사유였는데 기준은 모호합니다.

    길거리에서 여성들의 다리를 몰래 찍다 적발된 이 남성.

    이미 2013년에 벌금형, 2015년에도 집행유예를 선고받은 상습범이었지만, 이번에도 반성하고 있다는 이유로 또 집행유예를 받았습니다.

    [박경미 의원/국회 교육위원회]
    "(불법 촬영 범죄는) 특수성이 있죠. 일단 찍히게 되면 추후에 공개될 가능성이 높고, 유포된다고 하면 불특정 다수에게 빠르게 퍼지기 때문에 그러니까 더욱 엄중한 처벌이 이루어져야 하는데…"

    솜방망이 처벌이 계속되는 사이 한 번 처벌을 받고도 또다시 범행을 저지르다 재판에 넘겨진 사람은 41명이었습니다.

    MBC뉴스 윤정혜입니다.

    ◀ 앵커 ▶

    저희 탐사기획팀이 취재한 불법 촬영 연속보도.

    내일(10일)은 불법 촬영된 영상의 유출과 유포 그리고 유통되는 과정과 함께 피해자들의 고통이 커지는 만큼 돈을 버는 음성적 산업화의 악순환을 고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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