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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현
김정현
[오늘 다시보기] 도시빈민투쟁 광주대단지 사건
[오늘 다시보기] 도시빈민투쟁 광주대단지 사건
입력
2018-08-10 07:24
|
수정 2018-08-10 0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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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대 이후 산업화 물결에 서울은 일자리를 찾아 농촌을 떠난 사람들로 만원이 됐습니다.
고층 빌딩 숲의 그늘 속에 불법 무허가 주택과 도시 빈민이 급격히 늘어났습니다.
도심 정비에 나선 정부는 청계천 등의 무허가 판자촌을 철거하고 주민들을 서울 밖으로 보냈습니다.
1968년부터 경기도 광주, 지금의 성남 일부 지역에 이주단지를 조성해 12만 명이 넘는 주민을 이주시켰습니다.
택지 분양과 일자리를 주겠다는 약속과는 달리 현실은 황무지에 세운 거대한 난민촌이나 다름 없었습니다.
[조연성/당시 주민 (2005년)]
"속에 뭘 먹고 살겠다고 우리 같은 사람들이 스스로 들어가겠습니까. 가라니까 떠밀려간거죠."
토지투기 바람이 일면서 정부가 당초 약속한 것보다 토지불하가격을 인상하고 세금까지 부가한 것도 문제를 키웠습니다.
주민들의 불만은 1971년 8월 10일 폭발했습니다.
3만여 명이 배고파 못살겠다, 일자리를 달라는 구호와 함께 토지불하가격 인하와 세금감면 등을 요구하는 시위에 나서 사실상 광주대단지 전역을 장악했습니다.
관공서와 경찰차가 불타고 놀란 당국이 주민들의 요구를 들어주기로 약속하고서야 사태는 진정됐습니다.
이 지역은 성남시로 승격됐고 공장과 병원 등이 점차 들어왔습니다.
해방 후 최초의 대규모 도시빈민투쟁은 이렇게 막을 내렸지만, 아직도 무리한 재개발과 철거로 인한 갈등과 후유증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고 있습니다.
오늘 다시보기였습니다.
고층 빌딩 숲의 그늘 속에 불법 무허가 주택과 도시 빈민이 급격히 늘어났습니다.
도심 정비에 나선 정부는 청계천 등의 무허가 판자촌을 철거하고 주민들을 서울 밖으로 보냈습니다.
1968년부터 경기도 광주, 지금의 성남 일부 지역에 이주단지를 조성해 12만 명이 넘는 주민을 이주시켰습니다.
택지 분양과 일자리를 주겠다는 약속과는 달리 현실은 황무지에 세운 거대한 난민촌이나 다름 없었습니다.
[조연성/당시 주민 (2005년)]
"속에 뭘 먹고 살겠다고 우리 같은 사람들이 스스로 들어가겠습니까. 가라니까 떠밀려간거죠."
토지투기 바람이 일면서 정부가 당초 약속한 것보다 토지불하가격을 인상하고 세금까지 부가한 것도 문제를 키웠습니다.
주민들의 불만은 1971년 8월 10일 폭발했습니다.
3만여 명이 배고파 못살겠다, 일자리를 달라는 구호와 함께 토지불하가격 인하와 세금감면 등을 요구하는 시위에 나서 사실상 광주대단지 전역을 장악했습니다.
관공서와 경찰차가 불타고 놀란 당국이 주민들의 요구를 들어주기로 약속하고서야 사태는 진정됐습니다.
이 지역은 성남시로 승격됐고 공장과 병원 등이 점차 들어왔습니다.
해방 후 최초의 대규모 도시빈민투쟁은 이렇게 막을 내렸지만, 아직도 무리한 재개발과 철거로 인한 갈등과 후유증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고 있습니다.
오늘 다시보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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