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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현
김정현
[오늘 다시보기] 지강헌 탈주사건 (1988)
[오늘 다시보기] 지강헌 탈주사건 (1988)
입력
2018-10-08 07:35
|
수정 2018-10-08 07: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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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 전 오늘, 지강헌 등 10여 명의 미결수가 지방 교도소로 이감하던 중 집단으로 탈주했습니다.
[뉴스데스크 1988년 10월 8일]
"숨기고 있던 칼과 드라이버, 철사 등 흉기를 들이대며 교도관을 덮쳐 폭행하고 버스를 탈취했습니다."
서울로 숨어든 12명 가운데 5명은 탈주 하루 만에 자수하거나 검거됐지만 지강헌 등 7명은 경찰의 체포망을 비웃듯 가정집을 돌며 탈주 행각을 이어갔습니다.
[뉴스데스크 1988년 10월 12일]
"서울 성동구 행당동 주택가에 진입해서 가족들을 위협해서 꼬박 하루를 보낸 뒤 오늘 새벽 빠져나간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가족들을 인질로 잡은 상태에서 또 다른 강도 행각을 벌이기도 했습니다.
[뉴스데스크 1988년 10월 14일]
"김씨 가족 9명을 권총으로 위협하고 현금 5백만 원을 요구한 뒤에…"
지강헌 일당은 탈주 8일 만인 16일 새벽, 서대문구의 한 가정집에 침입했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과 대치하며 인질극을 벌이기 시작했습니다.
[지강헌 (뉴스데스크 1988년 10월 16일)]
"우리의 의사를 전달할 수 있는 사람 한 명을 들여보내달라."
자수와 인질 처리 문제를 두고 갈등을 빚던 탈주범들 중 2명은 스스로 목숨을 끊었고, 지강헌은 자해를 시도하다 경찰의 총에 맞은 뒤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결국 숨졌습니다.
이들은 탈주 과정에서 돈과 권력을 가진 사람들보다 과도한 형량을 받았다고 주장하며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말이 유행어가 되기도 했습니다.
이들의 탈주와 인질극은 추후 영화로도 제작돼 큰 반향을 불러왔습니다.
당시 우리 사회상을 그대로 비춰준 사건으로 기억되고 있습니다.
오늘 다시보기였습니다.
[뉴스데스크 1988년 10월 8일]
"숨기고 있던 칼과 드라이버, 철사 등 흉기를 들이대며 교도관을 덮쳐 폭행하고 버스를 탈취했습니다."
서울로 숨어든 12명 가운데 5명은 탈주 하루 만에 자수하거나 검거됐지만 지강헌 등 7명은 경찰의 체포망을 비웃듯 가정집을 돌며 탈주 행각을 이어갔습니다.
[뉴스데스크 1988년 10월 12일]
"서울 성동구 행당동 주택가에 진입해서 가족들을 위협해서 꼬박 하루를 보낸 뒤 오늘 새벽 빠져나간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가족들을 인질로 잡은 상태에서 또 다른 강도 행각을 벌이기도 했습니다.
[뉴스데스크 1988년 10월 14일]
"김씨 가족 9명을 권총으로 위협하고 현금 5백만 원을 요구한 뒤에…"
지강헌 일당은 탈주 8일 만인 16일 새벽, 서대문구의 한 가정집에 침입했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과 대치하며 인질극을 벌이기 시작했습니다.
[지강헌 (뉴스데스크 1988년 10월 16일)]
"우리의 의사를 전달할 수 있는 사람 한 명을 들여보내달라."
자수와 인질 처리 문제를 두고 갈등을 빚던 탈주범들 중 2명은 스스로 목숨을 끊었고, 지강헌은 자해를 시도하다 경찰의 총에 맞은 뒤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결국 숨졌습니다.
이들은 탈주 과정에서 돈과 권력을 가진 사람들보다 과도한 형량을 받았다고 주장하며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말이 유행어가 되기도 했습니다.
이들의 탈주와 인질극은 추후 영화로도 제작돼 큰 반향을 불러왔습니다.
당시 우리 사회상을 그대로 비춰준 사건으로 기억되고 있습니다.
오늘 다시보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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