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데스크
박진주
'차마 이름 못 밝혔던'…더 많은 '소녀'들의 恨
'차마 이름 못 밝혔던'…더 많은 '소녀'들의 恨
입력
2019-01-29 20:10
|
수정 2019-01-29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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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앵커 ▶
240명.
정부에 등록된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의 숫자입니다.
그러나 한 분 한 분 세상을 떠나시고 이제 생존해 계신 분은 23명뿐입니다.
김복동 할머니처럼 거리에서 분노의 외침을 이어온 분도 계시고 이름조차 밝히지 않은 채 한많은 생을 마감한 할머니도 계십니다.
이 모 할머니.
이씨라는 사실만 알려진 위안부 할머니가 김복동 할머니와 같은 날 세상을 떠났습니다.
저마다 한을 안고 쓸쓸하게 스러져가는 할머니들.
어떻게 해야 그 상처를 조금이라도 치유할 수 있을까요?
우리 세대의 과제는 무엇일까요?
박진주 기자가 보도합니다.
◀ 리포트 ▶
1991년 8월 14일 김학순 할머니가 첫 증언을 한 뒤 정부에 등록된 위안부 피해자는 모두 240명.
이중 생존자는 23명뿐입니다.
[이옥선/충북 보은(93)]
"내가 93살인데 조금 있으면… 몸이 안 좋아요. 여기 올 적에는 싱싱해서 왔는데 여기 와서 아파요."
반세기가 훌쩍 지난 시간.
그러나 할머니들은 난데없이 끌려가던 그 날의 일을 지금도 어제처럼 또렷이 기억합니다.
[이옥선/부산(93)]
"남자가 둘이 길을 딱 막는거예요. '니 어디 가니, 이름이 뭐니' 한 놈이 팔 하나 쥐고 (다른) 한 놈이 팔 하나 쥐고 무조건 끌고 가는 거예요."
그 오랜 세월 바라던 건 일본의 사죄뿐이었습니다.
그러나 일본의 반복되는 부정과 책임 회피, 우리 정부의 무책임한 합의 시도로 위안부 문제는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했습니다.
[이옥선/부산(93)]
"일본서 돈을 받고 할머니들을 팔아 먹었다고 (생각해요.) 어떻게 말하면 좋겠어요? 아무리 말해도 듣지 않으니까. 우리 입만 아팠지."
이런 세상이라 할머니들은 이름 석 자 남기기도 쉽지 않았습니다.
김복동 할머니와 같은 날 위안부 피해자였던 이 모 할머니도 한 많은 세월을 마감했습니다.
그러나 유족들의 요청으로 이름도, 나이도, 빈소도 공개되지 않았습니다.
지난해 초 세상을 떠난 임 모 할머니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안신권/'나눔의집'소장]
"당시 20만 명이 끌려갔는데… (귀국 후) 공개 못 하고 숨어 사시는 분이 많습니다. 신고를 했어도 자식들이 사회적 냉대, 차별 때문에 말씀 못하게 하는 안타까운 사연들이 많습니다."
아픈 기억을 꺼내 놓지 못해 지금도 품고 살아야만 하는 위안부 피해자들이 분명 더 있을 겁니다.
이들을 세상으로 이끌어 내 기록으로 남기는 것은 우리 세대의 과제입니다.
그리고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MBC뉴스 박진주입니다.
240명.
정부에 등록된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의 숫자입니다.
그러나 한 분 한 분 세상을 떠나시고 이제 생존해 계신 분은 23명뿐입니다.
김복동 할머니처럼 거리에서 분노의 외침을 이어온 분도 계시고 이름조차 밝히지 않은 채 한많은 생을 마감한 할머니도 계십니다.
이 모 할머니.
이씨라는 사실만 알려진 위안부 할머니가 김복동 할머니와 같은 날 세상을 떠났습니다.
저마다 한을 안고 쓸쓸하게 스러져가는 할머니들.
어떻게 해야 그 상처를 조금이라도 치유할 수 있을까요?
우리 세대의 과제는 무엇일까요?
박진주 기자가 보도합니다.
◀ 리포트 ▶
1991년 8월 14일 김학순 할머니가 첫 증언을 한 뒤 정부에 등록된 위안부 피해자는 모두 240명.
이중 생존자는 23명뿐입니다.
[이옥선/충북 보은(93)]
"내가 93살인데 조금 있으면… 몸이 안 좋아요. 여기 올 적에는 싱싱해서 왔는데 여기 와서 아파요."
반세기가 훌쩍 지난 시간.
그러나 할머니들은 난데없이 끌려가던 그 날의 일을 지금도 어제처럼 또렷이 기억합니다.
[이옥선/부산(93)]
"남자가 둘이 길을 딱 막는거예요. '니 어디 가니, 이름이 뭐니' 한 놈이 팔 하나 쥐고 (다른) 한 놈이 팔 하나 쥐고 무조건 끌고 가는 거예요."
그 오랜 세월 바라던 건 일본의 사죄뿐이었습니다.
그러나 일본의 반복되는 부정과 책임 회피, 우리 정부의 무책임한 합의 시도로 위안부 문제는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했습니다.
[이옥선/부산(93)]
"일본서 돈을 받고 할머니들을 팔아 먹었다고 (생각해요.) 어떻게 말하면 좋겠어요? 아무리 말해도 듣지 않으니까. 우리 입만 아팠지."
이런 세상이라 할머니들은 이름 석 자 남기기도 쉽지 않았습니다.
김복동 할머니와 같은 날 위안부 피해자였던 이 모 할머니도 한 많은 세월을 마감했습니다.
그러나 유족들의 요청으로 이름도, 나이도, 빈소도 공개되지 않았습니다.
지난해 초 세상을 떠난 임 모 할머니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안신권/'나눔의집'소장]
"당시 20만 명이 끌려갔는데… (귀국 후) 공개 못 하고 숨어 사시는 분이 많습니다. 신고를 했어도 자식들이 사회적 냉대, 차별 때문에 말씀 못하게 하는 안타까운 사연들이 많습니다."
아픈 기억을 꺼내 놓지 못해 지금도 품고 살아야만 하는 위안부 피해자들이 분명 더 있을 겁니다.
이들을 세상으로 이끌어 내 기록으로 남기는 것은 우리 세대의 과제입니다.
그리고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MBC뉴스 박진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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