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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장 박동' 듣는 순간…'엄마' 되기로 결심했지만

'심장 박동' 듣는 순간…'엄마' 되기로 결심했지만
입력 2019-05-27 20:03 | 수정 2019-05-27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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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앵커 ▶

    오늘은 우리 곁에 결코 낯설지 않은 일이지만 쉽게 꺼내놓고 말하기 힘든 문제를 다뤄보겠습니다.

    바로 10대 청소년 부모들 이야깁니다.

    어제 발표된 정부 조사를 보면 동거 같은, 다른 형태의 가족에 대한 인식은 많이 너그러워 졌지만 미성년이 아이를 낳아 키우는 것에 대해선 열명 중 일곱명 정도가 부정적인 시선을 갖고 있다고 답했습니다.

    그렇다고 회피만 할 수 없는 우리 사회의 엄연한 현실인데요.

    이들을 그저 우리 사회의 '예외' 쯤으로 취급해야 하는지 먼저 남재현 기자가 만나본 10대 부모들의 이야기.

    들어 보겠습니다.

    ◀ 리포트 ▶

    생후 10개월.

    작은 조막손으로 젖병을 움켜쥐고 있는 민희의 엄마는, 17살 민채림 양입니다.

    학교를 다녔다면 고등학교 1학년 나이입니다.

    [민채림(가명)/10대 부모]
    "고등학교 원서를 내고 제가 임신 사실을 알게 돼서 되게 무서웠어요 처음에는."

    임신 때부터 낙태 권유가 끊이지 않았지만, 차마 그럴 순 없었습니다.

    [민채림(가명)/10대 부모]
    "'어쩔 수 없는 거다. 네가 무조건 지워야 한다'라고 하셨는데. 제가 끝까지 '저는 못 지우겠다'고 낳고 싶다고."

    당시 고등학생이던 아이 아빠도 아이를 낳는 게 책임있는 선택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승호(가명)/10대 부모]
    "아이를 가진 건 철없는 행동이었어요. (하지만) 아이는 낳아서 키우는 게 맞는 거다 보니깐. 정답은 없겠지만 제가 맞다고 생각한 일을 그냥 하는 거예요."

    하지만 뒤따른 현실은 가혹했습니다.

    일단 학교부터 그만둬야 했습니다.

    엄마는 온종일 아이를 돌봐야하고, 아빠는 하루 13시간 택배 일을 하며 돈을 벌어야했기 때문입니다.

    [이승호(가명)/10대 부모]
    "(월 수입은) 보통 한 200만 원 중반. 남는 건 없어요. 월세 내고 공과금 내고, 애기 필요한 거 사고."

    아이 엄마가 미성년이다보니 아직 혼인신고도 안됩니다.

    그래서 각종 양육, 출산 지원을 받기 어렵습니다.

    한 달 20만 원, 한부모가정 지원이라도 받으려면 거짓말을 해야 합니다.

    [이승호(가명)/10대 부모]
    "지원해 주는 게 있었는데 미혼모만 되는 거예요. 예를 들어서 제가 도망갔다거나 그럴 때 지원해 주는 거였는데."

    직접 주민센터를 찾아가 봤습니다.

    [이승호(가명)/10대 부모]
    "10대 부부가 따로 애 키우면서 살고 있을 때 받을 수 있는 게 있나 하고 여쭤보는 건데요?"

    [주민센터 직원]
    "그런 건 딱히 없어요. 젊기 때문에. 근로해야 한다는 조건이 붙는 수급이거나 아니면 질병이 있어서 일을 못한다는…"

    이들을 더 힘들게 한 건, 편견이었습니다.

    [민채림(가명)/10대 부모]
    "주변에서 안 좋게 생각하시는 분들이 너무 많은 거 같아요. '쟤는 임신하고 나서 밖에 돌아다녀?'"

    이들은 이렇게 학생도, 한부모도, 부부도 아닌, 사회 어디에도 포함되지 않는 예외가 됐습니다.

    그래도 아기가 있어 오늘 하루를 또 살아냅니다.

    [민채림(가명)/10대 부모]
    "저는 후회 안 해요. 후회를 해 본 적이 없어요. 아기를 낳은 거에 대해서"

    이런 10대 미혼 부모들은 얼마나 될까요.

    통계청 자료를 보면 19세 이하 10대들이 아이를 낳고 출생신고를 한 경우가 1526명.

    그런데 이 숫자엔 베이비박스에 맡기거나, 몰래 버리는 경우는 빠져 있습니다.

    여기에 불법 입양 등을 포함하면 10대들의 임신과 출산은 공식자료보다 훨씬 많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통계에도 잡히지 않는 이들에게 가장 힘든 건 무엇이었을까요?

    어디 한 곳, 상의할 곳 없는 '고립'이었습니다.

    ◀ 리포트 ▶

    박지연씨는 고등학교 1학년, 17살 때 첫 아이를 가졌습니다.

    임신 사실을 알게된 가족과 학교의 반응은 외면이었습니다.

    [박지연(가명)]
    "끊겼어요 연락이. 제 아버지랑. (저도) 모르게 핸드폰 번호를 바꾸셨어요. 선생님은 '그래 그만둬라', 먼저 눈치를 채셨어요. 자퇴하고 나니까 연락을 끊으시더라고요."

    어딜 가서 도와달라 말도 못하고 먼저 손 내미는 곳도 없었습니다.

    [박지연(가명)]
    "타인 시선 때문에 제가 스스로 위축돼 가지고 밖에를 못 나갔어요. 거의 하루 종일 집에만 있었어요. 병원 갈 때 빼고. 괜히 누가 들으면 어쩌나, 상의할 생각은 하나도 안 했어요."

    실제 한 아동복지전문기관이 10대 미혼부모 1백 명을 직접 만나 조사한 결과 가장 힘든 점은 의논할 곳이 없다는 점과 남의 시선이었습니다

    가족, 학교, 사회안전망에서 섬처럼 고립되다보니, 막막한 현실에 불법 대출이나 불법 입양 유혹을 떨쳐내기 어렵습니다.

    [김윤지/비투비 대표]
    "임신을 한 10대 커플이고 양쪽 집에서 쫓겨났어요. 카페나 찜질방에서 한 달 동안 돌아다니면서 병원에 입원했는데 돈이 없고 불법 대출 같은데 빠지면서.."

    하지만 지역 사회의 관심이 이들의 삶을 바꾸기도 합니다.

    이 지자체는 민간단체와 연계해 한 10대 부모에게 임대주택과 취업프로그램을 제공했습니다.

    [이승훈/남양주시 오남읍 담당공무원]
    "가구의 위기 상황, 요청하신 사항들을 정리해서 민간 복지기관이나 시의 복지부서가 참여해서 방법을 마련했습니다."

    법적 지원 조건에 안맞더라도 대상자의 상황을 종합적으로 판단해 지원하는 통합사례관리 제도를 활용한 겁니다.

    그런데 지난해 이 제도의 수혜를 받은 10대 미혼 가구는 전국적으로 26가구에 불과했습니다.

    [박지연(가명)]
    "시청에 알아봤는데 한부모(지원)는 또 사실혼 관계여서 안된다고 하고, 다른 거는 지원해줄 수가 없다고 하더라고요. 기초생활수급자도 알아봤는데 안된다고 하고.."

    보통 갑작스런 임신과 출산을 맞게된 10대들에겐 이름도 생소한 이런 제도들이 있다는 것 조차 알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김윤지/비투비 대표]
    "(지원을 위한) 사회적 자원도 충분하지 않고 그 자원을 찾아 나가는 과정도 굉장히 어려웠고요. 사실 주변에 아무도 없는 경우가 많아요."

    그저 일탈 청소년쯤으로 낙인찍힌 채 사회로부터 철처히 외면받으며 살아야하는 10대 미혼 부모들.

    그저 자신의 처지를 조용히 들어줄 최소한의 소통창구가 마련돼 사회와 이어질 수 있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MBC뉴스 남재현입니다.

    (영상촬영: 서두범, 박주영, 영상편집: 여유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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