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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수의견] '전쟁통' 탈출해왔지만…서울살이 또 다른 '전쟁'

[소수의견] '전쟁통' 탈출해왔지만…서울살이 또 다른 '전쟁'
입력 2019-12-30 20:18 | 수정 2019-12-30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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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앵커 ▶

    우리 사회를 향해 더 큰 목소리가 필요하지만 낼 수 없는 이들을 대신합니다.

    소수 의견, 오늘은 연말을 맞아서 저희가 지난 1년 동안 기록한 어느 이라크인 가족의 힘겨운 서울 살이를 전해드립니다.

    목숨 걸고 전쟁 통을 탈출했지만 뜻하지 않게 한국에 정착해야 했던 네 가족, 그리고 생이별한 부부 가난과 차별에도 꿋꿋했던 버텨낸 2019년의 삶을 양소연 기자, 그리고 김희건 영상 기자가 보도합니다.

    ◀ 리포트 ▶

    <겨울: 크리스마스>

    이라크에서 온 이방인 45살 칼리파 유스라 모하메드씨 가족.

    한국에 온지 5년 만에 처음으로 가족 나들이를 나왔습니다.

    [아야/막내딸]
    "행복해요."

    능숙한 젓가락질로 자반고등어를 발라 먹는 세 아이들.

    먼 타국에서 잘 적응해주는 아이들이 대견스럽기도 하지만, 이런 아이들을 볼 때마다 유스라씨, 호주에 있는 남편 생각이 간절합니다.

    [유스라/이라크인 '인도적 체류자']
    "남편이 있었으면 선물도 사고 그럴 텐데 마음이 편하지 않아요."

    유스라 씨 가족을 갈라놓은 건 이라크 내전이었습니다.

    당시 형사였던 남편이 기독교인을 도왔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무장 세력은 집에 총을 쏘며 위협하기 시작했습니다.

    [유스라]
    "저는 아야와 아흐메드만을 데리고, 벽에 걸린 수건을 히잡 용도로 얼굴에 감은 뒤 집에서 빠져나왔습니다."

    결국 남편 압둘라 씨는 이라크를 떠나 호주로 몸을 피했습니다.

    그후 2년간 유스라 씨는 아이들과 함께 이라크에서 버텨보려 했지만 더이상 견딜수 없었습니다.

    [유스라]
    "집으로 편지가 왔어요. '이틀의 시간의 줄 테니 이라크를 떠나라, 그렇지 않으면 너와 아이들을 죽이겠다'."

    유스라 씨와 아이들은 이라크에서 호주행 비행기를 탔습니다.

    한국은 잠시 거치는 경유지였는데요.

    하지만 출국 직전 영국 여권이 문제가 됐습니다.

    결국 유스라 씨와 세 아이는 아빠가 있는 호주에 가지도, 위험한 고향으로 돌아가지도 못한채 한국에 머물게 됐습니다.

    <봄 : 이방인>

    새학기가 시작된 지난 봄.

    한국의 여느 가정집 처럼 아이들의 등굣길은 그야말로 전쟁입니다.

    "빨리 준비해라"

    한바탕 부산을 떨고 나서야 겨우 아침 식탁에 앉았습니다.

    그런데 식사를 하며 SNS로 고향 소식을 살피던 유스라씨의 표정이 갑자기 굳어집니다.

    [유스라]
    "지금 SNS 보니까 학교에 폭탄이 떨어졌다고…"

    유스라 씨와 아이들은 '난민'이 아니라 '인도적 체류자입니다'.

    6개월마다 연장 신청을 해야하고, 호주에 있는 남편도 초청할 수 없습니다.

    더욱 힘든 건 일하고 싶어도 언어와 문화적 차이때문에 일자리를 구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입니다.

    [유스라/이라크인 '인도적 체류자']
    "저 무슬림 안 돼요. 지금 식당, 무슬림 안 된대요."
    (왜 안 된대요?)
    "잘 모르겠어요."

    <여름: 피난처>
    "지난 7월 여름, 민간지원단체인 피난처에서 유스라 씨를 다시 만났습니다."

    [유스라]
    "지금 문제 있어요. 가스, 물, 전기… 하…"

    처음 한국에 왔을때부터 정착과 생계를 도와준 고마운 곳입니다.

    어쩌면 유스라 씨 가족이 한국에서 만난 가장 친절한 사람들일지 모릅니다.

    [오은정/'피난처' 간사]
    "반지하였는데, 집에 부엌 쪽에는 곰팡이가 너무 많았고, 바퀴벌레가 부엌을 다 돌아다니는 거예요."

    <가을 : 생활고>

    그리고 가을 추석.

    유스라 씨 집엔 전기를 끊겠다는 통지서가 날아왔습니다.

    [아야/막내딸]
    "나간 사이에 문에 붙어 있었어요."

    여기에 올해 초부터 인도적 체류자들도 건강보험료를 내야 합니다.

    [유스라/이라크인 '인도적 체류자']
    "저요, 문제 있어요! 여기 돈. 저요, (한 달에) 돈 50만 원 (벌어요). 40만 원, 월세. 10만 원, 여기 가스, 전기, 물. (남는) 10만 원 (중에) 8만 원 여기 (건강보험료)."

    [아야/막내딸]
    "'한국은 저희가 아마도 이라크에 가는 걸 원하는 걸까… '이런 생각도 (들어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막내딸 손을 붙잡고 주민센터를 찾았습니다.

    하지만, 법으로 인정한 난민이 아니어서 경제적 지원은 어렵다는 답변만 돌아왔습니다.

    [주민센터 관계자]
    "대한민국 국민하고 혼인 중에 있거나 혼인을 했다 이혼을 하시거나, 난민법에 의해서 난민으로 인정을 받은 난민인정서가 있어야 돼요."

    <단 하나의 소원>

    그래도 희망은 한국에서 느끼는 따듯한 온정입니다.

    스스럼없이 대해주는 한국인 친구들을 볼때마다 힘이 납니다.

    [아야]
    "왜 나와 좋은 친구가 될 수 있다고 생각했냐고?"

    [이채연]
    "뭔가 착하고…"

    [아야]
    "내가 착하다고? 그건 나도 인정 안 하는데?"

    [이채연]
    "아니 1학년 때만."

    한창 반항기 많은 중2 큰아들 요셉.

    촬영내내 요리조리 카메라를 피해 다녔지만, 이말은 꼭 하고야 맙니다.

    [요셉/첫째 아들]
    "이거 (방송) 해서 뭐… 아빠 만날 수 있는 확률이 조금만 더 높아졌으면 좋겠어요."

    7년 동안 보지 못한 아빠 볼에 입맞춤 하는 것이 유일한 소원인 아이들.

    [아흐메드/둘째 아들]
    "아빠랑 이야기하고, 아빠랑 커플티 같은 거 맞춰 입고, 아빠랑 떠들고 싶고, 아빠랑 같이 웃고 싶어요."

    새해에는 꼭, 온 가족이 함께 살고 싶다는 유스라 가족의 '단 하나의 소원'은 이루어질 수 있을까요?

    MBC뉴스 양소연입니다.

    (영상취재 : 김희건 / 영상편집 : 장동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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