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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효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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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가 '반토막'낸 덕수궁…'광명문'부터 제자리로
일제가 '반토막'낸 덕수궁…'광명문'부터 제자리로
입력
2019-03-02 07:20
|
수정 2019-03-02 0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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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앵커 ▶
일제는 우리 민족의 정기를 끊겠다며 특히 조선의 궁궐을 크게 훼손했는데요.
궁궐의 절반 이상이 훼손된 덕수궁을 복원하는 작업이 시작됐습니다.
양효경 기자입니다.
◀ 리포트 ▶
1919년 1월 21일 고종의 갑작스런 서거.
일제에 의한 독살설이 급속히 퍼지면서 전국 각지에서 망국의 울분이 터져 나왔고, 이 분노는 3월 3일 고종의 국장에 앞서 3월 1일 만세운동으로 이어집니다.
망국의 책임을 지고 있는 동시에 3.1운동의 기폭제가 된 고종의 죽음.
그 국장 행렬이 시작됐던 역사적 현장이 바로 80년 만에 제자리를 찾은 덕수궁 광명문입니다.
광명문은 고종의 침전이었던 보물 제820호 함녕전의 정문입니다.
그러나 1938년 일제가 덕수궁에 이왕가 미술관을 만들면서 궁의 남서쪽 구석으로 옮겨 버렸습니다.
그리고 80년 넘게 본래의 역할을 잃은 채 자격루와 흥천사명 동종의 야외 전시관으로 사용돼 왔습니다.
[이전영/문화재청 복원정비과장]
"1938년 덕수궁 (이왕가) 미술관 공사가 마무리될 즈음 광명문은 창경궁 자격루와 흥천사명 동종의 전시를 위해 미술관 남측 지금의 옛자리로 이전되었습니다."
고종 승하 이후 일제는 덕수궁을 공원으로 만들며 훼손했는데, 1902년에 지어진 서양식 연회장인 돈덕전과 역대 왕의 어진을 봉안하던 선원전을 허물었습니다.
문화재청은 돈덕전은 2021년, 선원전 권역은 2038년까지 복원할 계획입니다.
나라를 빼앗긴 비운의 역사가 고스란히 남아 있는 덕수궁.
고종 승하 이후 변형되고 왜곡된 그 역사적 현장이 100년 만에야 제 모습을 되찾게 됐습니다.
MBC뉴스 양효경입니다.
일제는 우리 민족의 정기를 끊겠다며 특히 조선의 궁궐을 크게 훼손했는데요.
궁궐의 절반 이상이 훼손된 덕수궁을 복원하는 작업이 시작됐습니다.
양효경 기자입니다.
◀ 리포트 ▶
1919년 1월 21일 고종의 갑작스런 서거.
일제에 의한 독살설이 급속히 퍼지면서 전국 각지에서 망국의 울분이 터져 나왔고, 이 분노는 3월 3일 고종의 국장에 앞서 3월 1일 만세운동으로 이어집니다.
망국의 책임을 지고 있는 동시에 3.1운동의 기폭제가 된 고종의 죽음.
그 국장 행렬이 시작됐던 역사적 현장이 바로 80년 만에 제자리를 찾은 덕수궁 광명문입니다.
광명문은 고종의 침전이었던 보물 제820호 함녕전의 정문입니다.
그러나 1938년 일제가 덕수궁에 이왕가 미술관을 만들면서 궁의 남서쪽 구석으로 옮겨 버렸습니다.
그리고 80년 넘게 본래의 역할을 잃은 채 자격루와 흥천사명 동종의 야외 전시관으로 사용돼 왔습니다.
[이전영/문화재청 복원정비과장]
"1938년 덕수궁 (이왕가) 미술관 공사가 마무리될 즈음 광명문은 창경궁 자격루와 흥천사명 동종의 전시를 위해 미술관 남측 지금의 옛자리로 이전되었습니다."
고종 승하 이후 일제는 덕수궁을 공원으로 만들며 훼손했는데, 1902년에 지어진 서양식 연회장인 돈덕전과 역대 왕의 어진을 봉안하던 선원전을 허물었습니다.
문화재청은 돈덕전은 2021년, 선원전 권역은 2038년까지 복원할 계획입니다.
나라를 빼앗긴 비운의 역사가 고스란히 남아 있는 덕수궁.
고종 승하 이후 변형되고 왜곡된 그 역사적 현장이 100년 만에야 제 모습을 되찾게 됐습니다.
MBC뉴스 양효경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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