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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에 꽃피운 독립의 꿈…'왕의 주치의' 이태준

몽골에 꽃피운 독립의 꿈…'왕의 주치의' 이태준
입력 2019-03-02 07:23 | 수정 2019-03-02 0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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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앵커 ▶

    일제강점기 아시아 깊은 내륙 몽골에서 독립운동 거점을 만들어 지킨 애국지사가 있습니다.

    대암 이태준 선생인데요, 몽골에서 근대 의술로 명성을 떨쳤지만 의사라는 안정된 삶을 버리고 조국 독립에 헌신한 그의 발자취를 윤주화 기자가 현지 취재했습니다.

    ◀ 리포트 ▶

    몽골 수도 울란바토르 한 가운데, 한국인 의사 이태준을 기리는 기념공원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오 송/前 주 몽골 대사]
    "상당히 의미가 있는 것은 몽골 정부에서 약 2천 평 부지를 제공했었고…"

    1910년대 몽골을 휩쓴 전염병을 치료하면서 의사로서 명성을 떨친 이태준은 몽골 마지막 왕의 주치의가 됐고 최고훈장까지 받았습니다.

    경남 함안에서 태어난 이태준은 1907년 세브란스 의학교에 입학한 뒤 도산 안창호의 영향으로 독립운동의 길을 걷게 됩니다.

    그가 일본의 힘이 미치지 않는 몽골로 근거지를 옮긴 것은 비밀군관학교를 세우기 위해서였습니다.

    [반병률/한국외대 사학과 교수]
    "김규식 선생과 1914년에 갈 때는 몽골에 하나의 독립운동 기지를 만들러, 근거지를 만든다고 간 거거든요."

    울란바토르에 세운 병원 '동의의국'은 중국과 러시아를 오가는 수많은 애국지사들의 독립운동 거점이 되었고, 파리강화회의에 파견되는 김규식에게 거금 2천 원을 지원했습니다.

    의열단원이었던 이태준은 폭탄 기술 전문가 헝가리인을 김원봉에게 소개시켜 주기도 했습니다.

    소비에트 정부가 임시정부에 지원한 자금 운반에도 깊이 관여했지만 이 과정에서 러시아 반혁명파에 피살돼 38살의 나이에 비극적 최후를 맞습니다.

    [김희곤/경북독립운동기념관장]
    "그 거점을 통해서 독립운동가들이 오가는 교통로도 되고, 문서도 오가고, 자금도 오가고. 이태준이라는 사람이 그 루트 중에 뻥 뚫려 있는 공간 '몽골' 그곳을 책임지려고 간 사람입니다."

    몽골의 슈바이처로 불리며 독립운동의 지평을 넓힌 이태준에게 정부는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습니다.

    MBC뉴스 윤주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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