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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찬
김민찬
시사만화 상징 '고바우 영감' 김성환 화백 별세
시사만화 상징 '고바우 영감' 김성환 화백 별세
입력
2019-09-09 06:45
|
수정 2019-09-09 0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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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앵커 ▶
한국 시사만화의 상징인 '고바우 영감'의 김성환 화백이 어제 오후 노환으로 별세했습니다.
어렵고 약한 사람들 편에 서서 권력을 풍자했던 고인의 삶을 김민찬 기자가 되돌아봤습니다.
◀ 리포트 ▶
1958년 1월 23일 자 일간지에 실린 시사풍자만화 '고바우 영감'입니다.
지게꾼에게 90도 인사를 하자, 고바우 영감이 누구냐고 묻습니다.
그러자 경무대에서 똥을 치는 분이라고 답합니다.
지금의 청와대인 경무대에선 똥지게를 지는 사람도 권력을 갖고 있다는 의미를 네 컷 만화에 담았습니다.
유명한 '경무대 똥통 사건'입니다.
[故 김성환 화백]
"자유당 때 경찰에 의해 2번 재판에 회부되어서 벌금을 물고 나온 적이 있는데, 제일 많이 알려진 게 경무대 변소 치는 만화가 알려져 있죠."
이후로도 고 김성환 화백은 약자와 어려운 사람 편에 서서 그들의 얘기를 만화에 담았습니다.
그럴수록 권력의 감시는 더 심해졌습니다.
[故 김성환 화백]
"대통령이 직접 사람을 시켜서 만화가 상당히 불쾌하니까 그렇게 알아두라고 전달도 여러 번 받았고요. 박정희 대통령 때…"
6·25전쟁 당시 다락방에 숨어지내면서 그리기 시작한 '고바우 영감'은 그렇게 우리 사회상을 50년 동안 비춰왔습니다.
2000년까지 연재된 횟수만 무려 1만 4천 회 넘어 한국 기네스북에 등재되기도 했습니다.
국내뿐 아니라 외국 언론의 관심을 받은 '고바우 영감'은 2013년에는 원화가 근대 만화 최초로 문화재로도 선정됐습니다.
"그전에 내가 고바우를 그리고 고바우를 다루고 했었는데, 세월이 지나다 보니까 고바우가 날 다루는 거 같아…"
만화 속 캐릭터의 머리털 하나로 세태를 풍자하고 권력을 비꼬았던 고 김성환 화백.
17살에 시작한 만화를 70년 가까이 그려온 그는 이제 '고바우 영감'을 만나러 여든일곱 해의 여정을 마무리했습니다.
MBC뉴스 김민찬입니다.
한국 시사만화의 상징인 '고바우 영감'의 김성환 화백이 어제 오후 노환으로 별세했습니다.
어렵고 약한 사람들 편에 서서 권력을 풍자했던 고인의 삶을 김민찬 기자가 되돌아봤습니다.
◀ 리포트 ▶
1958년 1월 23일 자 일간지에 실린 시사풍자만화 '고바우 영감'입니다.
지게꾼에게 90도 인사를 하자, 고바우 영감이 누구냐고 묻습니다.
그러자 경무대에서 똥을 치는 분이라고 답합니다.
지금의 청와대인 경무대에선 똥지게를 지는 사람도 권력을 갖고 있다는 의미를 네 컷 만화에 담았습니다.
유명한 '경무대 똥통 사건'입니다.
[故 김성환 화백]
"자유당 때 경찰에 의해 2번 재판에 회부되어서 벌금을 물고 나온 적이 있는데, 제일 많이 알려진 게 경무대 변소 치는 만화가 알려져 있죠."
이후로도 고 김성환 화백은 약자와 어려운 사람 편에 서서 그들의 얘기를 만화에 담았습니다.
그럴수록 권력의 감시는 더 심해졌습니다.
[故 김성환 화백]
"대통령이 직접 사람을 시켜서 만화가 상당히 불쾌하니까 그렇게 알아두라고 전달도 여러 번 받았고요. 박정희 대통령 때…"
6·25전쟁 당시 다락방에 숨어지내면서 그리기 시작한 '고바우 영감'은 그렇게 우리 사회상을 50년 동안 비춰왔습니다.
2000년까지 연재된 횟수만 무려 1만 4천 회 넘어 한국 기네스북에 등재되기도 했습니다.
국내뿐 아니라 외국 언론의 관심을 받은 '고바우 영감'은 2013년에는 원화가 근대 만화 최초로 문화재로도 선정됐습니다.
"그전에 내가 고바우를 그리고 고바우를 다루고 했었는데, 세월이 지나다 보니까 고바우가 날 다루는 거 같아…"
만화 속 캐릭터의 머리털 하나로 세태를 풍자하고 권력을 비꼬았던 고 김성환 화백.
17살에 시작한 만화를 70년 가까이 그려온 그는 이제 '고바우 영감'을 만나러 여든일곱 해의 여정을 마무리했습니다.
MBC뉴스 김민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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