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메뉴 바로가기
뉴스데스크
기자이미지 남상호

[단독] '취재수첩'에 기록된 오월 광주…"1시 일제 사격"

[단독] '취재수첩'에 기록된 오월 광주…"1시 일제 사격"
입력 2020-04-27 19:48 | 수정 2020-04-27 19:50
재생목록
    ◀ 앵커 ▶

    전두환 씨는 헬기 사격은 물론이고 아예 무고한 시민을 향해 총을 쏜 일조차 없다고 합니다.

    그럼 그때, 그 총탄에 맞아 숨진 이들은 대체 누구라는 말인지, MBC는 5.18 40주년을 앞두고 오월 광주, 그 현장을 기록한 기자 6명의 취재 수첩과 일기장을 원형 그대로 입수했습니다.

    전 씨가 기억하고 싶은 5.18, 또 현장 기자들이 기록한 5.18은 어떻게 다른지 먼저, 남상호 기자입니다.

    ◀ 리포트 ▶

    광주 금남로 민주광장 바로 앞, 총탄 흔적 숫자에서 이름을 딴 전일빌딩245가 있습니다.

    이 가운데 꼭대기 10층에서 발견된 1백여 개 총탄 자국이 헬기 사격의 물증입니다.

    "M60 기관총으로 헬기가 쏜 게 유력하다"는 국립과학수사연구원 보고서도 이를 뒷받침합니다.

    오늘 전일빌딩을 찾은 노년의 기자들은 40년 전 이곳을 생생하게 기억합니다.

    [나의갑/당시 전남일보 기자]
    "내·외신기자들이 5·18 당시에 전부 다 전일빌딩으로 몰려왔다는 겁니다. 계엄군 상황도 볼 수 있고, 시민들 상황도 볼 수 있고…"

    MBC는 5.18민주화운동기록관을 통해 확보한 취재기자 6명의 취재수첩과 일기장 등 모두 11권 966쪽을 당시 군 기록과 비교해가며 시간과 장소에 따라 재배치해 오월 광주를 복원했습니다.

    집단 발포가 있었던 1980년 5월 21일.

    오전 10시 10분, 공수부대에 실탄이 지급됩니다.

    오후 1시, 일제 사격.

    애국가가 도청 스피커를 통해 울려 퍼지는 도중이었습니다.

    총탄이 쏟아져도 "전두환 물러가라"는 구호가 멈추질 않자 조준 사격이 이어집니다.

    [김영택/당시 동아일보 기자(5.18 청문회, 1989년)]
    "젊은 사람 대여섯 명이 태극기를 들고 다시 구호를 외칩니다. (계엄군이) 거기에다 정조준을 해서 쐈습니다. 그러면 대여섯 명이 가서 그 시체나 부상자를 다시 끌어내고, 다시 가서 태극기를 들고…"

    계엄군이 앉아쏴 자세로 고쳐잡고 시민을 겨눈 시각은 1시 32분.

    도청, 수협, 전일빌딩 옥상 곳곳에 배치돼 지나가는 사람에게 무조건 총을 쏘던 공수부대의 만행도 분명하게 적혀있습니다.

    남편을 기다리던 임산부마저 머리에 총을 맞고 숨졌습니다.

    [조광흠/당시 조선일보 기자]
    "이런 주요 건물, 높은 건물에는 저격병들이 있었어요. '진 모 씨'라고 옥상에서 구경하고 있는 사람도 맞혔었던…"

    하지만 전두환 씨는 선량한 국민을 향해 총구를 겨눌 일은 없다(383쪽)거나 양민에 대한 국군의 의도적이고 무차별적인 살상 행위는 없었다(27쪽)며 사죄는 커녕 거짓말을 늘어놓고 있습니다.

    법원은 역사 왜곡이라며 오월 단체 등에 손해 배상하라고 판결했지만, 전 씨는 이에 불복해 항소심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MBC뉴스 남상호입니다.

    (영상취재: 최경순, 강종수 / 영상편집: 신재란)

    당신의 의견을 남겨주세요

      인기 키워드

        취재플러스

              14F

                엠빅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