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앵커 ▶
조명 뒤의 사람들을 조명하는 앵커로급니다.
그제는 노동절이었죠.
오늘 앵커로그는 노동자이지만 노동자일 수 없는, 서로 특별한 인연을 갖고 있는 두 사람의 이야기입니다.
◀ 리포트 ▶
('하루 64만 명' 인파로 북적이는 서울 강남역 / 25M 상공에 홀로 올라선 한 사람 / 뉴욕타임즈 "삼성과 외로운 투쟁하는 한국의 시위자")
여기는 강남역 사거리입니다. 종일 이렇게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지나다니지만, 이 한가운데 있는 저 철탑 위, 사람이 있을 거라 생각하는 분들은 많지 않을 것 같습니다.
(1991년, 삼성 계열사의 노조 설립을 앞두고 해고 / 복직과 해고를 반복하다 25년 전 최종 해고된 뒤 지금까지 삼성과 싸우는 김용희 씨)
[김용희/삼성 계열사 해고자]
"여기는 강남역 CCTV 철탑 위 0.5평 되는 철제 탑입니다. 구부린 상태에서 잠을 자고 쉬기도 하고 그렇습니다."
[김용희/삼성 계열사 해고자]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많은 분들이 걱정하세요. 꼭 그렇게 농성을 열악한 곳에서 해야 하나.")
"헌법에 보장된 노조 만든다는 것이 이렇게 생명을 담보로 하는 이런 극단적인 투쟁까지 간 현실이 좀 안타까울 뿐이고. 그런데 지상에서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어요."
[김용희/삼성 계열사 해고자]
("이렇게 지나가는 사람들을 위에서 보고 계시면 어떠신지 궁금해요.")
"자녀들과 같이 식당에 들어가는 모습을 보면… 자식들 초등학교 1학년 때 제가 해고됐거든요."
("그럼에도 계속 계실 수밖에 없는 이유 뭘까요?")
"최소한의 인권을 보장받을 수 있는 그런 노동환경을 만들기 위해서 저는 희생하려고 각오했습니다."
==============================
(그리고 철탑 아래 또 한 사람)
[박미희 씨]
"여보세요? 아침은 뭐 좀 드셨어요?"
(가족은 아니라는데…?)
[박미희 씨]
("여기는 지금 뭐가 들었어요?")
"물 하고 휴대전화 충전기."
(300일 넘게 고공농성 중인 김 씨를 위해 밑에서 궂은일을 대신하는 박미희 씨)
[박미희 씨]
"김용희 동지하고 이야기도 하고 물품도 올려 주고, 손님들 안내도 해드리고. 제 집회 끝나면 항상 이쪽으로 와요."
(알고 보니 또 다른 회사의 해고노동자)
==============================
(서울 양재동 기아자동차 본사 앞)
지금 시각 새벽 5시 50분입니다. 안녕하세요.
("네. 안녕하세요")
(당일 새벽 5시 50분, 박미희 씨 출근길 집회 현장)
[박미희/기아자동차 영업소 해고자]
("왜 피켓을 들고 서 계신 건지?")
"기아자동차 대리점에 근무를 했었어요. 회사에서 내부고발을 했어요. 그런데 시정은 되지 않고 저 혼자 해고가 됐어요."
(7년 전, 영업소의 자동차 부당판매 사실을 본사에 신고했지만 되돌아온 건 영업소장의 해고 통보)
[박미희/기아자동차 영업소 해고자]
("이렇게 7년 동안이나 시위를 하게 될 거라고 생각하셨어요?")
"'일주일만 나 본사 앞에 가서 1인 시위를 하고 오겠다'고 이야기를 하고 집을 나섰어요. 이게 이렇게 길게 오리라고 사실 생각 못 했죠."
("그만하고 싶다는 생각 든 적 없으세요?")
"제가 그만두면 수천 명의 영업사원들이 앞으로 더 입을 닫고 살아야 하는 그런 상황에 놓일 거예요."
(기아차 입장 – 박미희 씨는 대리점 대표와 계약 관계가 있었을 뿐 회사와는 어떠한 고용 관계나 위임 관계도 없으며, 회사는 부당판매 행위에 대한 제보자를 확인해 준 적도 없습니다.)
==============================
(자신의 1인 시위가 끝나면 고공농성자를 돌보러 가는 삶을 1년 가까이 반복)
(오후 5시 30분, 강남역)
지금 시각은 오후 다섯 시 반인데요. 이제야 오늘 처음으로 식사가 올라간다고 합니다.
(처음으로 식사를 올려보낼 시간 / 사회단체에서 준비한 식사를 매일 챙겨 보내는 박 씨)
[박미희/기아자동차 영업소 해고자]
("어떤 인연으로 인해서 이 일을 하게 되셨는지.")
"같은 투쟁을 하는 입장이다 보니까 서로 공감대가 있고 해서 현수막을 단다든지 이런 일 있으면 (김용희 씨가) 저에게 연대해주고 그런 역할 했었어요."
[박미희/기아자동차 영업소 해고자]
("사실 본인의 일도 다급한 일인데, 아무래도 본인 일보다 김용희 씨에게 시선이 쏠릴 수밖에 없는데 아쉬움은 없으세요?")
"물론 저의 일이 중요하지만. 때로는 저의 일보다 더 집중해야 될 그런 일도 있는 것 같아요."
(같은 아픔을 공유하며 묵묵히 서로의 곁을 지킨 두 해고자 / 촬영 3일 뒤, 김용희 씨를 응원하러 모인 인파 / 크레인을 타고 김용희 씨를 만나러… / 근 1년 만에 재회한 두 사람)
[김용희 해고자]
"1년 만이다. 눈물이 나는데?"
[박미희 해고자]
"그런데 왜 그렇게 마스크가 안 깨끗해요? 밑에 마스크 있는데 올려드릴까요?"
[김용희 해고자]
"아껴 써야지요."
[김용희 해고자]
"내가 이렇게 1년 동안 버틸 수 있던 건 우리 박미희 동지 힘이었어요. 조금만, 조금만 참읍시다."
[박미희 해고자]
"밑에서 봅시다."
앵커로그, 내 생애 첫 인터뷰입니다.
뉴스데스크
김경호, 남형석
[앵커로그] '노동자일 수 없는' 두 사람 이야기
[앵커로그] '노동자일 수 없는' 두 사람 이야기
입력
2020-05-03 20:26
|
수정 2020-05-03 21:03
당신의 의견을 남겨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