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앵커 ▶
전쟁에서 전사한 남편이나 아버지의 유품을, 68년 만에 받는다면, 그 마음을 어찌 가늠할 수 있을까요?
오늘 현충일을 맞아, 긴 세월 끝에 가족 품에 안긴, 숟가락 하나의 여정을 남형석 기자가 따라가봤습니다.
◀ 리포트 ▶
현충일을 나흘 앞둔 서울 국립현충원.
대구로 떠날 쇠숟가락 하나가 봉인을 앞두고 있습니다.
숟가락 곳곳엔 주름살같은 세월의 흔적이 남았습니다.
새겨놓은 이름마저 희미해졌습니다.
숟가락은 어떻게 현충원까지 왔다 이제 누구에게 향하는 걸까요?
경기도 연천 민간인통제구역.
땅 속 3미터 지점에서 유해가 발굴됩니다.
[이혁희 대위/돌풍연대]
"조국에서 끝까지 책임진다는 마음으로 장병 120명이 유해발굴작전에 임하고 있습니다."
한국전쟁 전사자 유해발굴이 시작된 2000년 이후 지금까지 찾은 유해는 1만300여 구.
[서정호 중사/돌풍연대]
"할아버지와 전쟁을 함께 했던 전우들이 같이 묻혀 있을 거란 생각을 분명히 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10여km 북쪽으로 더 가면 한국전쟁 막바지에 치열한 쟁탈전이 전개됐던 화살머리 고지가 나오는데, 지난해 5월 거기서 숟가락 하나와 8cm 가량 뼛조각이 함께 발견됐습니다.
숟가락과 뼛조각은 유해발굴감식단의 정밀 감식을 거쳤습니다.
[임정민 감식관/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
"얇잖아요, 뼈가. 그러니까 빨리 자연으로 돌아가는 경향이 많겠죠. 유해 잔존 부위가 얼마큼 있는지 확인을 다 한 다음에요…"
[이호연/유품감식관]
"자기 숟가락에 이름을 남겼기 때문에 그것을 근거로 신원확인이 된 경우라서. 그렇게 명문이 확인되는 유품은 1%가 안 되거든요."
감식 결과, 제2사단 소속으로 참전했던 故 김진구 하사의 유품과 유골로 확인됐습니다.
김 하사는 정전협정을 불과 2주 앞두고 포탄에 맞아 전사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장유량/유해발굴감식단 신원확인처장]
"(여기가 다른 데보다 서늘하네요?)유해를 최대한 손상을 늦추는 그런 과정이 되겠고."
김 하사의 유해는 신원이 확인되지 않은 유해를 모시는 이곳 국선제에 보관되다가, 유가족의 유전자 채취로 올해 2월 극적으로 가족을 찾았습니다.
[장유량/유해발굴감식단 신원확인처장]
"지금까지는 1만 여구를 발굴을 해서 147분의 신원이 확인이 되었습니다. 유가족분들의 유전자 검사를 하기 위해서 노력을 많이 하고 있고."
다음 날 아침, 유품전달식이 열리는 대구.
김 하사가 전쟁터로 떠날 당시 생후 18개월이던 아들은 칠순이 됐고, 스물네 살 청춘이던 아내는 구순을 훌쩍 넘겼습니다.
[이분애/故김진구 하사 부인]
(기분 좋으세요?)
"그런 것도 없어. 저 혼자 산다고…무슨 얘기할 게 없어요."
[김대락/故김진구 하사 아들]
"(어머님께서)생전에 아버님하고 같이 가시는 게 소원이라고 했는데 같이 가시게 되어서 소원은 풀었는 거 같습니다. 며칠 잠을 못 주무시더라고요."
꽃신 신고, 곱게 차려입고, 남편을, 또 아빠를 만나러 가는 길.
그리고 68년 만에 가족을 찾아온 숟가락.
"(김진구 하사는)1952년 6월 3일 나라를 구하기 위해 사랑하는 가족의 곁을 떠나…"
비무장지대 차가운 땅 속에 있던 고 김진구 하사의 숟가락은 이제 대전 국립현충원에 유해와 함께 안치될 예정입니다.
[이분애/故김진구 하사 부인]
"'김진구 님이 사용했던…' 남편이 사용했던 거네."
MBC뉴스 남형석입니다.
(영상취재 : 서두범 / 영상편집 : 김하은)
뉴스데스크
남형석
68년 만에 돌아온 '숟가락'…스물넷 아내는 어느덧 구순
68년 만에 돌아온 '숟가락'…스물넷 아내는 어느덧 구순
입력
2020-06-06 20:18
|
수정 2020-06-06 20:27
당신의 의견을 남겨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