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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리지 않은 '학살의 상흔'…유해로도 못 돌아와

풀리지 않은 '학살의 상흔'…유해로도 못 돌아와
입력 2020-06-25 19:34 | 수정 2020-06-25 2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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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앵커 ▶

    3년이라는 전쟁 동안, 진격과 후퇴를 반복하면서 충북 청주의 형무소는 국군과 인민군이 번갈아 점령했습니다.

    그리고 형무소를 적에게 빼앗기는 상황이 되면 수감자를 적의 편에 넘져줄 수 없다는 이유로, 또 우익 또는 좌익이라는 딱지를 붙여서 무고한 양민을 학살했습니다.

    이채연 기자입니다.

    ◀ 리포트 ▶

    한국전쟁 초기인 1950년 7월초, 청주형무소.

    북한군에 밀려 퇴각하던 국군과 경찰은 좌익인사로 분류해뒀던 정치범 800여 명을 따로 화물차에 태웠습니다.

    [윤덕수/당시 청주형무소 간수(2006년 증언 영상)]
    "서울에서 후퇴하면서 국가보안법 위반자들 숙청하라고 했지. 차로 싣고. CIC(방첩부대)라고 있었어, CIC."

    20킬로미터 떨어진 골짜기들로 끌고다니며 무참히 총을 난사했습니다.

    그냥 두면 북한군 편에 설지 모른다는 광기에 찬 불신에 사로잡혀 학살극을 벌인 겁니다.

    진실화해위원회의 조사에 따르면 800여명 전원이 숨진 것으로 추정됩니다.

    이렇게 희생된 인사 중에는 의열단 출신의 독립운동가인 고 홍가륵 선생도 있습니다.

    해방후 진천군청에서 근무하다 시국사건에 휘말려 4년형을 선고받고 복역중이었는데, 이때 학살된 겁니다.

    지난 2009년, 의열단 활동을 인정받아 뒤늦게 건국훈장 애족장에 추서됐지만, 70년이 흐른 지금, 유해도 찾지 못하고 있습니다.

    [홍우영(만 74살)/故 홍가륵 선생 아들]
    "심지어 그 양반(목격자)이 하는 말이 (희생자들을) 손으로 들을 수가 없어서, 썩어서... 곡괭이로 찍어서 끌어다 그냥 놓고 이렇게 해서 묻더라 이거여."

    약 석달 뒤, 청주형무소는 잿더미가 됐습니다.

    이번엔 형무소에 갇혀있던 우익인사들이 희생양이 됐습니다.

    국군과 유엔군의 반격에 퇴각하던 북한군은 형무소에 불을 지르고, 우익인사 220명을 인근 공원으로 끌고가 총과 둔기로 학살했습니다.

    허망하게 남편과 아버지를 잃은 유족들.

    그때의 통곡은 빛바랜 흑백사진에 드러납니다.

    [박만순/민간인학살 충북대책위]
    "외진데, 야산으로 끌고 갈 시간이 없었던 거예요. 그러다 보니까 급하게 청주 한복판에서 학살을 하고 도망간 거죠."

    좌익과 우익 사이에서 숨져간 이들 수많은 희생자들은 우리 현대사에서 철저하게 잊혀져온 존재들이었습니다.

    [신경득 /청주형무소 희생자 유족]
    "가해자와 피해자를 분명하게 가리고, 벌을 줄 사람은 벌을 주고 용서할 사람은 용서를 해야 된다고 생각을 합니다. 피해자는 있고 가해자는 없는 그런 진상 규명은 있을 수가 없습니다."

    진상규명은 물론 중요하지만, 이에 앞서 이제 몇명 남지 않은 가해자와 그 관계자들이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진심어린 진실고백과 사죄의 움직임을 보여주는 것이 시급합니다.

    억울하게 숨져간 희생자들의 명예를 회복해주고 전쟁의 상처를 보듬기 위한 첫걸음입니다.

    MBC뉴스 이채연입니다.

    (영상취재: 허태웅/충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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