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앵커 ▶
6.25 전쟁이 일어난 1950년에 태어난 이들을 전쟁 둥이, 또는 피란 둥이라고 부릅니다.
올해 일흔 살이 된 이들의 삶엔 잿더미에서 맨주먹으로 시작해 지금의 대한 민국을 일구어 낸 우리 현대사가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이용주 기잡니다.
◀ 리포트 ▶
1974년, 24살 홍수환 선수는 지구 반대편에서 세계 챔피언이 됐습니다.
[홍수환 (1974년 경기 직후 통화)]
"엄마? (어.) 나 챔피언 먹었어. (대한국민 만세다. 대한국민 만세야)"
3년 뒤, 체급을 바꿔 다시 나선 도전.
[1977년 파나마]
"다운되는 홍수환! 다시 다운되는 홍수환 선수!""
4번이나 링 위에 쓰러졌지만 끝내 이겨낸 '4전 5기'의 신화로, 당시 고된 삶을 살던 국민들에게 큰 용기를 줬습니다.
[홍수환/전 프로복싱 세계챔피언]
"남들은 '4전 5기'의 신화라고 하지만 이건 신화가 아니야. 끊임 없는 연습과 노력으로 이뤄낸, 사람이 만들어낸 거지. 결코 신화는 아니야."
1950년에 태어난 홍수환 선수와 같은 '전쟁둥이' '피란둥이'들, 이제 70살을 맞았습니다.
전쟁의 참혹함을 들려주던 부모님의 이야기가 아직 생생합니다.
"우리 어머니께서 솜으로 항상 내 귀를 틀어막아주셨어. 하도 포탄이 떨어지고 꽝꽝 소리가 나니까 귀가 먹으면 애가 말을 못 하니까."
"적(북한군)이 알아서 사람이 어디 가는가 노출될까봐 (우는 갓난아기) 입을 틀어막는 거지. 입을 틀어막았다는 거야."
유년 시절 기억의 저편엔 늘 배고픔이 있었습니다.
"산에 가면 하다 못해 진달래꽃인가, 그런 것도 따 먹고 (꽃을요?) 어, 그리고 소나무 그걸 벗겨. 그러면 그 안에 살이 있어. 소나무 살…"
"미군들 따라다니면서 뭐 얻어먹고 초콜릿 얻어먹고…"
스물이 되자 날아온 입영 통지서.
그리고 베트남에 갔습니다.
[여동선]
"(면회 때) 아버지가 죽으러 가는 걸로 생각하고 그냥 막 우시더라고. 그래서 괜찮다, 나는. 살아올 수 있다. (나도) 똑같이 울었지."
이역만리 정글에서 손에 쥔 일당은 하루 1달러 남짓.
피로 벌어들인 달러는 산업화의 밑거름이 됐습니다.
[김용관]
"그거(경부고속도로) 타고 올라오는데 감회가 깊더라고. 월남에서 벌어놓은 돈으로 그걸 깔았다고 그러는데, 야 이거 내가 벌어서 깐 건가 보다…"
자고 나면 공장이 지어지고 수출이 늘어나던 시절.
고달파도 앞만 보고 내달렸습니다.
[엄해룡]
"처자식하고 같이 먹고 살려니까 무슨 수단을 써서라도 벌어야 되는 거예요. 건설 현장이라도 가든지 공장에 가서 직장생활을 하든지…"
1980년대, 국민들의 땀과 피로 이룩한 민주화.
인내와 열정으로 얻어낸 한강의 기적.
88서울올림픽은 그 결실이면서 도약의 디딤돌이었습니다.
[김용관]
"올림픽이 우리나라에서 열린다는 게 이게 가능한 일인가, 의아스럽기도 하고 그랬지. (우리나라가) 많이 컸구나. 진짜."
하지만 1997년 IMF 외환위기의 시련이 닥칩니다.
'피란둥이'들이 47살이 되던 해입니다.
[엄해룡]
"한 달에 만 원, 2만 원씩 모아서 내 집 마련한다고, 은행에 가서 담보대출 꺼내 가지고 조그만 거 하나 해놨다가 IMF 딱 오니까… IMF가 없는 사람은 다 죽여 놨어."
그래도 주저앉지 않고, 모두 힘을 모았습니다.
[엄해룡]
"나라가 이렇게 어려운데 도와달라고 국가 원수가 TV 나와서 얘기하는데 누가 그거 마다하고 안 하겠어요. ('금 모으기 운동'에) 다 동참했죠."
어느덧 대한민국이 세계에 우뚝 선 지금.
참화 속에서 태어난 전쟁둥이들의 소망은, 힘들게 지켜온 평화의 발판 위에 더 나은 미래를 후손에게 물려주는 것입니다.
[김용관]
"전쟁도 치러가면서 이 나라의 발전을 정말 기원하고 살아왔는데 조금 더 우리나라 강건한 그런 나라가 됐으면…"
MBC뉴스 이용주입니다.
(영상취재: 정민환 김두영 영상편집: 장동준)
뉴스데스크
이용주
어느덧 '일흔'…'전쟁둥이'들이 돌아본 70년은
어느덧 '일흔'…'전쟁둥이'들이 돌아본 70년은
입력
2020-06-25 19:39
|
수정 2020-06-25 2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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