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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이미지 이미경

"지금도 어디선가 벌어지고 있는" 아동학대 그 후…

"지금도 어디선가 벌어지고 있는" 아동학대 그 후…
입력 2020-06-30 20:54 | 수정 2020-06-30 2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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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앵커 ▶

    뉴스데스크 2부, 시작하겠습니다.

    언급하는 것 조차 안타까운 아동 학대 사건이 끊이지 않고 발생하고 있습니다.

    사회적 공분이 모아져서 아동 학대를 근절시킬수 있는 더 나은 정책으로 이어진다면, 어른으로서 조금은 덜 미안할텐데, 항상 다른 이슈에 밀리다 보면 그 공분이 쉬 가라 앉습니다.

    ◀ 앵커 ▶

    하지만 학대 받는 당사자들은 과연 어떨까요?

    그 악몽을 떨쳐내고 건강한 사회 구성원으로 잘 성장하고 있을지,

    또 우리 사회는 그렇게 성장하도록 손을 내밀어 주고 있는지.

    그들의 힘겨운 고백을 통해서 함께 고민해 보겠습니다.

    ◀ 리포트 ▶

    "한 손에 술, 한 손에 몽둥이 밖에 기억이 안나요 아버지를 생각 하면…"

    "다 벗긴 상태로…막 때리고 밟고…"

    휘민이가 처음 폭행을 당한 건 초등학교 4학년 시절.

    키워주던 외할머니를 떠나 친엄마와 새 아빠의 집으로 간 후였습니다.

    처음에는 훈육 수준의 체벌.

    [석휘민(17세 /가명)/아동학대 피해자]
    "잘못이 있을때 효자손 그걸로 많이 때렸는데…"

    시간이 갈수록 엄마와 새 아빠가 싸워도, 밖에서 안 좋은 일이 생겨도, 모든 건 휘민이 잘못이 됐습니다.

    [석휘민(17세 /가명)/아동학대 피해자]
    "주먹 쥐고 얼굴부분이랑 배 같은데 때리기도 하셨고 OO같은 거 막 들이밀고 목 같은 데너 같은 게 왜 태어났냐고 그냥 뱃속에 있을 때부터 지워버리는 건데"

    이복 여동생들 앞에서도 무차별 폭행은 이어졌고,

    [석휘민(17세 /가명)/아동학대 피해자]
    "여동생들 앞에서 옷을 다 벗긴 상태로 아빠가 힘으로 저를 잡고 강제적으로 엄마가 막 때리고 밟고…"

    계부는 협박까지 했습니다.

    [석휘민(17세 /가명)/아동학대 피해자]
    "(집 근처에) 저수지가 하나 있는데 거기 데려가서 몸에 돌 같은 거 묶어서 빠트리겠다고…"

    학대 사실이 외부에 처음 알려진 건 초등학교 6학년 놀이공원으로 현장학습을 간 날, 담임선생님에 의해서였습니다.

    엄마는 학대 사실을 숨기기 위해 맞아서 멍이 든 얼굴을 짙은 화장으로 덮었지만 선생님의 눈을 피할 순 없었습니다.

    [석휘민(17세 /가명)/아동학대 피해자]
    "엄마가 지우면 OO인다고 그래서 최대한 조심조심 했는데, 놀이동산이어서 놀다보니까 저도 모르게 그게 지워져 버린 거에요.선생님이 놀라시면서…"

    선생님의 신고로 친모와 계부는 구속됐고, 3년간의 악몽은 끝났습니다.

    그룹 홈 생활을 시작했지만 처음엔 휘민이도 학대 당한 여느 아이들처럼 불안했습니다.

    [석휘민(17세 /가명)/아동학대 피해자]
    "주변사람들이 인사같은 거 할때도 손을 이렇게 올리잖아요. 그럼 본능적으로 숨게 되고, 피하게 되고 엄마가 덩치가 되게 컸어요. 우연히 그런 사람을 만나게 되면 알면서도 굳이 먼 길로 돌아가고"

    그룹홈에서는 아이를 위해 전문 심리상담을 진행했습니다.

    비슷한 상처를 가진 그룹 홈 아이들과 함께 하는 것도 힘이 됐습니다.

    지금은 요리사가 되겠다는 꿈도 생겼습니다.

    [석휘민(17세 /가명)/아동학대 피해자]
    "마음이 편해졌어요. 이런 이야기들, 솔직히 막 친구한테도 잘 할수가 없고 학교 선생님들한테도 잘 할수가 없는데, 좀 많이 가벼워지는 느낌?"

    하지만 학대 아동 모두가 휘민이처럼 보호와 지원을 받을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학대 아동은 한해 2만여 명 넘게 생기지만 이들이 성인이 될때까지 돌봄을 받을 수 있는 그룹 홈은 전국에 470여개.

    쉼터는 겨우 72개입니다.

    각 시설 최대 수용 인원이 7명에 불과하다는 점을 감안하면 그룹홈의 수용인원은 3천여명이 조금 넘고.

    쉼터 수용인원은 500여명에 불과한 겁니다.

    [공혜정/한국아동학대방지협회 대표]
    "(시설 수용 아동은) 행운이라고 볼 수 있는 거죠. 80%이상이 그냥 원가정 지속 보호입니다. 그냥 학대를 한 가정에 그냥 놔둔다는 얘기에요. 분리가 된다고 할지라도 한 달 미만에 다시 원가정으로 돌아가는 비율이 45%가 넘습니다."

    =============================

    올해 쉰여섯 살, 중년이 넘은 나이지만 준희씨는 어린시절 겪은 학대의 기억을 잊을 수 없습니다.

    아버지의 외도로 태어난 준희씨는, 네 살때부터 매일같이 본처인 큰어머니에게 폭행 당했습니다.

    [한준희(가명/56세)/아동학대 피해자]
    "또 눈 뜨면 맞겠구나 처음에는 이런 뒤통수 같은 뼈마디를 먼저 때리고, 아파서 손을 올리면 이런 뭐 팔꿈치 뼈, 그래서 또 수그리면 이제 허리 무릎 이런 뼈마디만 골라서 매질을 하셨죠."

    친 아버지의 폭력도 못지 않았습니다.

    [한준희(가명/56세)/아동학대 피해자]
    "잡아서 막 던지죠. 이런 벽 같은 곳에 그 시절에 시골집 벽들이라는 게 전부 황토잖아요. 그래서 머리가 부딪쳐도 함몰이 안 되고, 뇌진탕이 안 오고"

    아동학대의 개념조차 없던 시절, 이웃들은 학대받는 아이에게 무심했습니다.

    고통은 준희씨가 13살 되던 해 서울로 도망치며 끝났지만, 그 후유증은 몸으로, 마음으로 드러났습니다.

    [한준희(가명/56세)/아동학대 피해자]
    "굉장히 허리가 많이 아픈 거에요 강직성 척추염이라는 병명이 나오더라고요. 어린 시절 외부충격에 의해서 이제 발병이 돼서 평생을 가는 거라고 담당 의사 선생님이."

    불쑥불쑥 알수 없는 화가 치밀고 갑자기 우울해지기도 했지만, 말할 곳도, 도움을 받을 곳도 없었습니다.

    폭력의 기억으로부터 벗어나려는 의지뿐이었습니다.

    [한준희(가명/56세)/아동학대 피해자]
    "집사람이나 아이들을 보면 그 어렸을때 내 가정환경하고 늘 연관지어서 그렇게 되면 안된다고 스스로 막 최면을 걸거든요. 육체적 고통은 잊어버릴 수 있어요. 하지만 어렸을때부터 심리적인 위축감 압박감, 때로는 이게 매보다 더 무섭거든요."

    [노규식/정신과 전문의]
    "이 사례자 같은 경우는 스스로를 통제하려고 하는 노력을 정말 많이 하신거죠. 쉽게 이뤄지는 그런일은 아닙니다. 아직도 왜 그러냐, 아직도 못 벗어났니 라고 얘기하지 마시고 포기하지 말고 계속 노력하면 더 나아질거다라는 희망과 격려를 꼭 해주셔야 합니다."

    사회 구성원 모두가 관심을 갖고 지켜봐야 할 아동학대...

    이와함께 학대의 고통에 빠진 피해자들이 이를 극복해나가도록 돕는 것 역시, 우리가 함께 해야 할 일입니다.

    "보통 아동학대를 당하거나 그렇게 하는 사람들이 많이 소심하고 조용하게 막 그렇게 지내는 편이에요. 만약에 흉터나 그런걸 봐도 대수롭게 넘기지 말고, 좀 더 관심을 갖고 바라봐 줬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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