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운 게 없으니까 이 짓거리 하고 있지"
"뽀뽀 한 번만 하면 안 돼요?"
"(CCTV로) 감시당하는 기분이 들었던 적이 있어요"
◀ 앵커 ▶
이용자에겐 그저 편리한 곳이지만 편의점 노동자들은 실제로 이런 일을 겪고 있습니다.
◀ 앵커 ▶
왜 그들은 안전과 수치심까지 접어두고 그 좁은 공간에서 해가 뜨기를 기다려야 하는지 그들의 목소리를 통해서 들어보겠습니다.
◀ 리포트 ▶
편의점 '야간 알바' 은정 씨에게 자정을 넘긴 시간은 긴장의 연속입니다.
술에 취해 들어온 두 명의 손님.
[손님]
"카드 어디다 뒀어? 어?"
[직원]
"네? 무슨 소리여요?"
[손님]
"카드 조금 아까 있었잖아."
취객은 카드를 꺼낸 적이 없습니다.
[손님]
"아니, 술 안 취했다고… 그런데 계산은 난 몰라."
이런 황당한 일은 거의 매일 밤 일어납니다.
[직원]
"잔액이 부족해요."
[손님]
"나 코로나!"
만취 상태의 손님은 코로나19에 걸렸다면서도 자꾸 손을 뻗어 은정 씨를 만지려다, 계산하기 전에는 소주 뚜껑을 따더니 엎지르기까지 합니다.
[직원]
"제가 닦을게요."
[손님]
"내가 실수한 거 아니잖아!"
자기가 엎지르고도 남 탓, 심지어 돈도 없습니다.
[직원]
"잔액이 부족하다고 나와요. 다른 카드 주시겠어요?"
[손님]
"외상 깔아! 내일 갖다 줄게 내일… 전체 얼만데?"
[직원]
"4천500원요."
[손님]
"외상해, 그냥. 악수 한 번 하자. 나 코로나 됐어. 악수 한 번 해줘."
취객이 난동을 부리고 나간 뒤에도 할일은 끊이지 않습니다.
[편의점 아르바이트 6개월]
"지금은 새벽 3시 53분이고 물건 정리를 하도록 하겠습니다."
[편의점 아르바이트 6개월]
"이제 (새벽) 5시 53분이고 이제 청소를 해야 합니다."
아침 8시. 드디어 퇴근입니다.
무사히 하룻밤을 버텨낸 겁니다.
편의점 노동자들은 범죄 위험에 노출돼 있습니다.
전국 편의점에서 발생한 강도·폭행 등 각종 범죄는 1만 건이 넘습니다.
비닐봉지값을 달라고 했다고 흉기로 찔러 살해.
전자레인지 사용법을 제대로 안 알려줬다고 펄펄 끓는 라면 투척.
현금을 빼앗기 위해 우산으로 폭행.
편의점 아르바이트생 절반 이상이 폭언과 폭행을 경험했습니다.
[편의점 아르바이트 3년]
"봉투값 받아야 하는데 봉투값 20원 받는다고 폭언해서 바로 경찰 불렀어요. XX, 네 XX가 뭔데? 네 부모가 그렇게 가르치디?"
[배병용 /편의점주]
"자기가 건달이라고 해서 협박하는 분도 있었어요. 집기를 들었다 놨다 하면서…"
성희롱과 성폭행도 자주 일어납니다.
경기도 한 편의점에서 일하는 수진 씨는 일 년이 지났지만 그날 일만 생각하면 아직도 심장이 내려앉습니다.
한 남자손님이 들어오자마자 대뜸 외모 칭찬을 쏟아냈습니다.
[손님]
"진짜 예쁘시다. 연예인 아니세요? 몇 살이에요?"
[직원]
"나이 많아요. 남자친구는 있어요."
[손님]
"아쉽구만…"
사적인 질문공세에 기분이 나빴지만 빨리 보내기 위해 친절하게 응대했더니 느닷없이 악수를 청합니다.
[손님]
"악수 한 번만 해주세요! 뽀뽀 한 번만 하면 안 돼요?"
[직원]
"아, 그건 안 돼요."
순식간에 벌어진 일입니다.
손님을 보내고 나서야 공포감이 몰려왔습니다.
성추행을 당하고서도 친절함을 잃지 않았던 수진 씨.
[성추행 피해 편의점 직원]
"기분도 엄청 나쁘지만 친절할 수밖에 없고 화도 못 냈던 이유는 저는 다음 날 그 시간에 똑같이 출근이잖아요. 혹시나 또 안 좋은 일 또 생길까봐 그냥 참는 방법밖에 없더라고요."
특히 혼자서 편의점을 지킬 때 성희롱이 비일비재합니다.
[성추행 피해 편의점 직원]
""알바 끝나면 술 한잔하러 갈래요?" 이런 사람도 엄청 많고요. 엄청 수치스럽죠. 제가 이러려고 이곳에서 일하는 건 아닌데…"
범죄 피해를 조금이라도 줄일 방법은 없는 걸까요?
[편의점 아르바이트 4년]
"사실 포스기에 신고하는 걸 3초 누르면 저절로 신고된다거나 전화기도 수화기를 몇 초 동안 안 끊으면 자동 신고되는 그런 게 있는데…"
이런 긴급 신고 시스템이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경우도 많습니다.
[편의점 아르바이트 4년]
"(안전) 교육이 잘 안 되고 있어요."
한 조사결과 아르바이트생 중 60% 이상이 기본적인 안전 교육조차 받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편의점 업체들이 점주들을 대상으로는 안전교육을 하고 있지만 아르바이트생의 안전교육은 점주의 몫이라고 미루는 경우가 적지 않기 때문인데요, 범죄 피해 책임은 누가 지는 걸까요?
[편의점주]
"보험이 다 들어져 있거든요. 본사에서 다 보험을 들거든요. 그럼 거기서 처리하죠."
본사에서 가입한 보험으로 처리한다는 겁니다.
[대형 편의점 업체 관계자]
"고용계약의 당사자는 개인사업자인 점주님과 스태프 사이에 있고요."
하지만 본사는 고용계약의 당사자인 점주의 책임을 더 강조하는 입장입니다.
범죄의 위협만큼 힘든 것은 인격적인 무시.
지난달 광주의 한 편의점.
남자 손님이 물건을 집어 던지고 밀치는 바람에 여성 직원이 바닥에 나동그라집니다.
폭행보다 더 상처가 됐던 것은 편의점 노동을 비하하는 막말이었습니다.
[손님]
"배운 게 없으니까 이 짓거리 하고 있지. 배운 것이 없으니까 이 짓거리 하고 있다고!"
아르바이트생 갑질 경험에 대한 각종 설문조사 결과 매번 1위를 차지하는 응답은 '반말' 등 인격적인 무시입니다.
편의점 노동에 대해서 차별과 편견이 존재한다는 겁니다.
[배병용/편의점주]
""젊은 친구가 이런 데서 뭐해?", "어디 나가서 좋은 일 해야지, 이게 뭐하는 거야 지금. 시간 아깝게…" 이런 식으로 비꼬는거죠."
[편의점 성추행 피해자]
""나이도 어린데 뭐 이런 데서 썩고 있냐", "정신 차리고 공부를 해라"‥ 되게 비참하죠. 왠만한 사람만큼의 취급도 못 받는 것 같아요. 이곳은…"
부당한 일을 당해도 일자리를 잃을까봐 해코지를 당할까봐 적극적으로 대처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편의점 아르바이트 3년]
"이것만 참으면 내가 여기에서 일 할 수 있고, 정신 승리를 하는 편이에요. 저는 생계를 위해서 어쩔 수 없이 견뎌내야 하는 부분이 있는 것 같습니다."
열악한 편의점 노동 현실이 매년 지적되는데도 개선되지 않고 있습니다.
[편의점 아르바이트 4년]
"나도 정당하게 일을 하는 1명의 노동자잖아요. 그러니까 그 노동의 가치를 조금 더 존중해줬으면 좋겠어요."
1989년 서울에 첫 24시간 편의점이 문을 연 뒤 전국 편의점은 4만여 개, 종사자 수는 15만여 명으로 폭발적인 성장을 했습니다.
하지만 이런 30년 역사에는 부당한 처우, 감정 노동, 그리고 '편의점 알바'들의 눈물이 스며있습니다.
뉴스데스크
김은진
공포의 심야 편의점…범죄에 노출된 직원들
공포의 심야 편의점…범죄에 노출된 직원들
입력
2020-07-13 20:50
|
수정 2020-07-13 2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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