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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데스크

[심층취재] 목숨 걸고 도왔는데…그 후 '의인'들의 삶은?

[심층취재] 목숨 걸고 도왔는데…그 후 '의인'들의 삶은?
입력 2020-08-10 20:54 | 수정 2020-08-10 2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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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앵커 ▶

    밀려 내려가는 차를 온몸으로 막고, 불타는 차에서 운전자를 구해낸 사람들, 구조 전문가가 아닌 우리 이웃이었습니다.

    자신이 다칠지도 모르는 위급한 상황에서도 타인을 돕는 이들을 의인이라고 부르는데요.

    그들은 그때 왜 그런 선택을 했을까요? 그리고 지금은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요?

    직접 만나봤습니다.

    ◀ 리포트 ▶

    논바닥에 떨어진 승용차.

    빗속에서도 불길이 치솟지만 한 남자가 망설이지도 않고 불타는 차 문을 열고 운전자를 끌어냅니다.

    당시 택배기사이던 유동운 씨.

    [유동운]
    "저도 사람이니까 터지면 어쩌지 라는 생각은 하긴 했는데 '지금 내려가면 꺼낼 수 있겠다' 그래서 신고하면서 무조건 뛰어 내려갔죠."

    좀 더 안전한 일을 찾아 농작물 관리를 시작한 유동운 씨.

    일상이 크게 달라지진 않았지만 소방서, 군청, 민간단체 등에서 주는 각종 '의인상'을 받으면서 주변을 의식하게 됐다고 합니다.

    [유동운]
    "아내가 항상 그래요. 돌아다니면서 거리에서 침도 뱉지 말라고 조금씩 평소보다 더 조심하게 되죠."

    달리던 차가 차선을 바꾸려다 화물차와 추돌한 후 중앙분리대를 들이받습니다.

    사고를 목격한 손형권 씨와 이수찬 씨.

    서로 모르는 사이였지만 힘을 합쳐 의식을 잃은 운전자를 구출했습니다.

    5분 뒤 사고 차량은 전소했습니다.

    [이수찬]
    "솔직히 처음에 뛰어 갔을 때 차에서 굉음이 너무 세게 나서 좀 무섭긴 했어요. 문은 안 열리고 '야 이거 차 이러다 터지는 거 아니야?'"

    [손형권]
    "불날지도 모르고 터질 것 같기도 하고 참 무모했다. 무모했어."

    자칫 목숨을 잃을뻔한 사건 후 1년이 지났습니다.

    [이수찬/보험회사 직원]
    "본업에 충실하고 있어요. 형님도 회사 잘 다니고 있으신 거잖아요?"

    [손형권/반도체회사 직원]
    "글쎄요. 특별히 달라진 건 없는 것 같아요."

    '의인'이라는 호칭에는 오히려 민망하다는 반응입니다.

    [손형권]
    "의인들은 (상금을) 기부한다고 했잖아요. 솔직히 저도 그런 것에 대해서는 고민을 했는데 선뜻 안 되더라고요. 그러니까 저는 그 정도 역량은 안 되는 것 같고"

    부산의 한 주택가.

    한 남성이 오르막길에 세워둔 승합차에서 버팀목을 빼는 순간, 차가 뒤로 밀려 내려가면서 바퀴에 깔리고 맙니다.

    지나가던 마을버스에서 여고생 5명이 뛰어내려 달려갑니다.

    일사불란하게 승합차를 뒤에서 있는 힘껏 밀어 올렸고 주변 사람들까지 합세해 남성을 무사히 구조했습니다.

    [신인경]
    "저희보다는 위급하신 분이 너무 눈에 크게 보여서 저희는 그런 생각 없이 바로 도와드렸던 거 같아요."

    거침없이 구조에 나서는 모습에 '여고생 어벤저스'로 불린 이 여고생들은 벌써 성인이 됐고 이들 중 신인경 씨는 취업을 했습니다.

    [신인경]
    "주변 분들께서 많은 칭찬도 해주시고 상도 좀 많이 받고 제가 취업하는 것에 대해서 많은 도움도 받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저는 좀 더 많은 도움이나 좋은 영향을 받았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그날' 이후 일상을 잃어버리는 등 고통 속에서 살아가는 '의인'들도 있습니다.

    터널 앞에서 연료가 떨어져 멈춰선 차.

    평소에도 어려운 사람 돕는 일에 주저하지 않았던 김용선 씨는 당황한 운전자를 도와 갓길까지 차를 밀어줍니다.

    무사히 차량을 이동시키고 한숨 돌리려던 순간 트럭이 이들을 덮쳤습니다.

    [김용선]
    "화물차 기사가 졸음운전하면서 올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그 차가 졸음운전을 안 했으면 제가 뒤처리 잘 처리를 하고 무사히 잘 빠져나왔을 텐데"

    도움을 받은 차량 운전자는 무사했지만 김용선 씨만 크게 다쳤습니다.

    중환자실에서 한 달 넘게 생사를 넘나들었고 사고 후 뇌졸중까지 발병, 왼쪽 팔과 다리가 마비돼 지금도 병원에서 치료 중입니다.

    [김용선]
    "제가 선택해서 했던 일이기 때문에 후회는 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현실은 참담하네요."

    퇴원하더라도 이전 같은 삶을 살 수는 없습니다.

    그날의 선택에 후회가 없다가도 도움을 받은 운전자가 감사인사는커녕 연락조차 없는 것을 떠올리면 원망이 솟구치기도 합니다.

    [김용선]
    "몸이 안 좋다 보니까 화장실 가려다고 혼자 움직이려면 '아 내가 괜한 짓을 했구나' 한번 와서 얼굴이라도 보여주면 좋겠는데 얼굴도 한 번 안 보여줘서
    서운합니다."

    사고 후 1년 넘게 병원에 있으면서 운영하던 자동차정비소까지 처분해 마땅한 수입이 없습니다.

    가해 차량과의 보험 협상은 최근에야 마무리돼, 도로공사에서 받은 의인상 상금과 주변의 도움으로 근근이 생활하고 있습니다.

    곽경배 씨도 길가는 여성을 폭행하던 노숙자를 말리다 흉기에 찔려 오른팔 동맥과 신경이 절단됐습니다.

    게임잡지 기자였던 곽 씨는 더이상 기사를 쓰지 못합니다.

    [곽경배]
    "꽉 쥐는 게 안 되죠. 요즘도 밤마다 손이 저려서 엉덩이 밑에 손을 깔고 자요."

    오른손을 거의 사용할 수 없게 됐지만 다행히 가정을 꾸리고 살아가는 데는 큰 어려움이 없다고 합니다.

    [곽경배]
    "저는 이 일로 제 인생이 그렇게 드라마틱하게 바뀌었다고는 생각 안 하거든요. 하던 일도 그대로 하고 있고 계획했던 결혼도 했고, 일생생활의 약간의 불편함은 있지만…"

    의상자로 선정돼 국가로부터 보상도 받았습니다.

    위험에 처한 사람을 돕다가 피해를 본 경우 국가에서 보상해주는 의사상자 지원제도, 등급에 따라 최고 2억 2천여만 원까지 보상금을 받을 수 있고 교육, 취업, 의료 등 여러 혜택이 있습니다.

    곽경배 씨는 선행이 대대적으로 보도되면서 한 달 만에 의상자로 선정됐지만 김용선 씨는 이런 제도가 있는지도 몰랐습니다.

    [김용선]
    "못 들어봤어요."

    [오경화/김용선 아내]
    "고속도로 의인상하고 같은 거 아니에요? 저는 그거 하나로 다 연결이 된 줄 알고"

    의사상자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절차도 복잡하고 기간도 최대 3개월이나 걸립니다.

    어렵게 의상자로 선정되더라도 있는 혜택을 챙기는 것도 쉽지 않습니다.

    [곽경배]
    "남을 돕다가 어떤 위해나 위험으로부터 피해를 당해도 정부는 그런 사람을 버리지 않는다라는 믿음을 주기 위해서라도 심사나 이런 부분은 좀 간소화할 필요는 있다고 생각합니다."

    희생에 대한 보상이 아무리 대단해도 누구나 이들과 같은 선택을 하진 못합니다.

    [유동운]
    "댓글에 그런 말이 있더라고요. 일반화시키지 말라고… 자기는 절대 들어갈 생각이 없는데 왜 그렇게 말을 해서 강요를 하느냐…"

    일상으로 돌아온 의인 일상을 잃어버린 의인, 결과는 달라도 그날의 선택에 대한 답은 같습니다.

    [신인경]
    "그런데 저는 제가 조금 피해를 보더라도 남들이 다 행복하다면 그 조금의 희생 정도는 저는 괜찮다고 생각을 해서…"

    [김용선]
    "분명히 몸이 정상이 되면 또 이런 일이 생기면 도와줬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손형권]
    "그때도 평범한 사람이었고 지금도 평범한 사람이거든요."

    일상에선 평범하지만 위기 때는 평범하지 않은 의인들이 우리 곁에 살고 있습니다.

    (영상취재: 박종현 최재훈 영상편집: 김정은 강다현 취재구성: 김은진 나래이션: 김민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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