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앵커 ▶
1973년 8월13일, 일본에서 중앙 정보부 요원들 에게 납치돼 수장될 위기에 처했던 당시 야당 지도자 김대중이 동교동 자택으로 돌아 왔습니다.
내일이면 만 47년이 되는데요, 그런데 당시 김대중 역시 납치 시도가 있을 거라는 걸 사전에 알고 있었다는 사료가 처음 공개 됐습니다.
누군가가 편지를 보내서 테러 정황을 비밀스레 경고해 준건데, 신수아 기자가 당시 편지와 녹취를 단독 입수했습니다.
◀ 리포트 ▶
박정희 대통령의 유신 발표로 해외 망명을 시작하게 된 야당 지도자 김대중.
미국에 머물고 있던 1973년 5월 5일 그에게 한 통의 편지가 도착했습니다.
누가 보냈는지 알 수 없는 편지였습니다.
거기엔 "최근 정확한 소식에 의하면 선생님을 암살하려는 테러 음모를 꾸미고 있다"는 내용이 들어 있었습니다.
이 제보자는 그러면서 "이를 폭로하고 여론을 환기시켜 그들이 손을 대지 못하도록 대처하라"고 조언합니다.
열흘 뒤 이희호 여사가 인편으로 남편에게 보낸 편지에도 중앙정보부의 위협을 조심하라는 우려가 담겨있었습니다.
두 달 뒤인 1973년 7월 6일, 뉴욕에서 열린 반유신 투쟁단체 미국본부 창립행사에서 김대중은 이런 사실을 털어놨습니다.
[김대중(1973년 7월)]
저는 이번에 일본 가는데 일본 가면 또 여기보다도 훨씬 더 험악한 분위기입니다.
47년 만에 처음 공개된 육성에는, 해외 반유신 운동 확산을 위해 위험을 무릅쓰겠다는 비장함이 녹아 있습니다.
[김대중]
"들리는 바에는 박 정권에서 저에 대해서 여러 가지 무슨 수를 쓰기 위해서 일본에 무슨 일을 하고 있단 얘기도 듣고 있고… 저도 여러 가지 조심은 해서 가지만 그렇다 해서 제 할 일을 안 할 수는 없는 것이고… 그래서 제가 잠시동안 다녀오겠습니다.”
건너간 지 한 달이 지난 73년 8월 8일, 우려는 현실이 됐습니다.
김대중은 일본의 한 호텔에서 납치됐고 마취된 채 현해탄에서 수장될 위기에 처했습니다.
[김대중/1993년 일본 NHK 인터뷰]
"오른쪽 팔목, 왼쪽 발목에 각기 한 30~40kg 물체가 달려있어요. 이제 마지막으로 물에 나를 던지나 보다 했는데…"
미국의 개입으로 가까스로 목숨을 건진 김대중은 납치 129시간 만인 1973년 8월 13일, 동교동 자택으로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훗날 2007년이 되어서야 박정희 정권의 중앙정보부가 납치 테러를 주도했다는 사실이 공식 확인됐습니다.
납치 직전, 김대중에게 편지를 보낸 얼굴 없는 제보자가 누구인지는 확인할 길이 없지만 정보기관 관계자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장신기/연세대 김대중도서관 박사]
"상당히 극소수 사람들만 알고 있던 비밀공작인데 그것이 새나갔단 얘긴즉슨 이걸 어떻게든 막아보려는 '일종의 내부 고발자가 있었다'라고 볼 수밖에 없는 거죠."
김대중은 자신을 죽음의 문턱까지 몰고 갔던 정적 박정희 대통령의 부인 육영수 여사가 총격으로 숨진 1974년 8월 15일 일기에는 이런 글을 남겼습니다.
"육영수 여사의 서거는 참으로 충격적"이라며 "테러는 민주주의의 적"으로 "아무리 시간이 걸려도 민주주의는 평화적 원칙으로 해결되어야 한다."
MBC 뉴스 신수아입니다.
(영상취재: 이지호/영상편집: 배윤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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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수아
[단독] 'DJ 납치' 녹취 입수…"암살 음모 있다" 사전 경고
[단독] 'DJ 납치' 녹취 입수…"암살 음모 있다" 사전 경고
입력
2020-08-12 20:35
|
수정 2020-08-12 2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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