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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이미지 김경호

[앵커로그] 한국의 히로시마에 사는 사람들

[앵커로그] 한국의 히로시마에 사는 사람들
입력 2020-08-15 20:28 | 수정 2020-08-15 2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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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앵커 ▶

    조명 뒤에 있는 사람들을 조명하는 앵커로그입니다.

    오늘은 광복절이죠.

    75년 전 8월, 원자폭탄이 떨어진 일본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엔 우리 국민도 많이 있었다는 거 알고 계십니까.

    그 분들, 그리고 그 후손들은 지금 어떻게 살고 있을까요.

    제가 앵커로그에서 만나봤습니다.

    제가 찾아온 곳은 한국의 히로시마로 불리는 경남 합천입니다.

    <원폭 피해 생존자 2천여 명 중 600여 명이 사는 경남 합천 먼저 찾은 곳은 교외의 한 복지회관>

    [심진태/한국원폭피해자협회 합천지부장]
    (100명이 여기서 지금 거주하고 계신 거예요?)
    "그렇습니다."
    (유독 합천 분들이 히로시마에 간 이유가 있나요?)
    "합천군이 산이 73%입니다. 벼농사가 안 됐어요. 배고픔이 많죠. 그러니까 배급을 주는 곳(히로시마)으로 가고"

    <이곳에서 만난 '원폭 피해 1세대' 이수용 할머니(93세)>

    [이수용/원폭 피해 1세대]
    "18살에 내가 원폭에 당해서 나왔거든요. 사무를 보려고 하는데 '팍' 하는 거예요. 제가 실신을 했습니다. 놀라서. 정신이 돌아왔는데 보니까 온 바닥에 피투성이고, 기름처럼 까만 비가 막 쏟아져요. 그걸 맞아가면서도 살 거라고…"

    (당시 히로시마에서 숨진 한국인만 4만여 명 생존한 2만3천여 명은 고국으로 탈출했지만…)

    [이수용/원폭 피해 1세대]
    "그때부터 시작해서 이때까지 압박양말을 신고 있습니다, 양쪽에. 이걸 안 신으면 걷지를 못해요. 전에는 내 돈으로 샀고, 요즘은 안 사도 자기네(일본)들이 줍니다."

    일본에서는 97년부터 '인도적 차원'이라며 진료를 해주고 있지만, 혜택을 받은 한국의 원폭피해자는 전체의 3%도 되지 않습니다. 그럼 우리나라는 이들을 제대로 돌보고 있을까요?

    [심진태/한국원폭피해자협회 합천지부장]
    "우리가 (일본에)개인 소송했고 국가에는 아무런 혜택을 못 받았죠."
    (우리 정부에서는 지원해 주는 게 뭐가 있어요?)
    "93년부터 월 10만 원을 진료보조 겸 교통비로 했어요."
    (월 10만 원 이외에는 없고?)
    "네."

    (복지회관 뒤뜰, 원폭 희생자 1,000여 명의 위패를 모신 위령각)

    피해자 분들 중에 이렇게 위패라도 모셔져 있는 분들은 극히 일부라고 합니다.

    [심진태/한국원폭피해자협회 합천지부장]
    "빨리 조치를 해서 치료를 했으면 아직도 여기 살아계신 분 반 정도 있을지도 모르는데…"

    (이제 2천여 명밖에 남지 않은 원폭피해 생존자 그러나 그들이 더 걱정하는 것)

    [앵커]
    "지금 이 문제를 조명할 수밖에 없는 건 피해자의 2세, 그리고 3세까지도 비슷한 고통을 호소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원폭 피해가 대물림됐다고 호소하는 피해자 2세 형제>

    [문택주·문종주 / 원폭피해 2세 형제]
    (두 분이서 사시는 거예요?)
    "네. 어머니는 한 3년 전에 돌아가셨고요. 아버님은 히로시마에서 불구가 돼서 돌아왔죠."
    (2세 중 형은 눈이 잘 안 보이시고?)
    "네. 전혀 안 보여요. 들리는 것도 정확하게 못 알아들어요. 저는 폐암. 한쪽 폐를 절제를 해버리고 잘라 내버렸어요."
    (그동안 치료 지원이나 그런 걸 받으셨나요?)
    "말은 있었는데 잘 안 되는 모양이에요."
    (결혼은 하셨어요?)
    "아뇨, 결혼은 못했죠. 집안 내력을 보자고 하고. 제 자존심이 팍 꺾여버리더라고요."

    이 형제만의 일일까요? 지금 피해자들을 위한 위령제가 열리고 있는데요. 이렇게 비가 오고 있는 와중에도 많은 분들이 참석했습니다.

    <아들 부부와 함께 위령제에 참석한 원폭피해 1세대 안해순 님>

    [안해순/원폭 피해 1세대]
    "우리 영감도 폐암으로 돌아가시고, 얘(아들)의 할머니도 폐로 돌아가시고. 얘도 뭐 다 죽는다고 했는데도 그래도 참 질질 (삶을)끌고 나가네. 며느리도 원폭 피해 2세라 눈 한쪽에 시력이 하나도 없고. 부모한테 원망을 하지. 아프다가 보면 '엄마 우리를 왜 낳았냐'고 해요. 그러면 우리 부모가 할 말도 없지. 어쩔 수가 있나."

    <장애를 겪고 있는 원폭피해자 2세, 확인된 사람만 9%>

    피해자들은 2세뿐 아니라 3세, 4세까지 피해가 이어지고 있다고 호소합니다

    [한정순/원폭2세대환우회 부회장]
    "지금 3세대인 내 아들도 태어나면서부터 뇌병변으로 38년 동안에 방에서 누워만 있습니다. 단순히 피해자의 자녀라는 이유로 이렇게 큰 고통을 겪으면서 살아야 하나…"

    늦게나마 유전 원인에 대한 정부 차원의 조사가 올해부터 시작될 예정입니다.

    [박보영/한양대학교 보건대학원 부교수]
    "본 연구에서는 2, 3세에 대한 유전성에 대한 걸 우선 보고자 합니다. 2024년까지 5년 동안."

    피해자들은 또 5년의 시간을 확신 없이 기다려야 합니다.

    [한정순/원폭2세대환우회 부회장]
    "지금 75주기가 됐는데도 한 가지도 지금 해결된 문제가 없어요. 이렇게 저희를 버려둔 채 그냥 어떻게 살아가든지 말든지 남의 일인 양... 물론 우리 정부에서 저지른 일이 아니기 때문에 억울하다고는 말할 수 없어요. 그래도 어쩔 수 없이 가는 길이라도 편하게 갈 수 있도록 해주셨으면…"

    앵커로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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