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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 분담에 건물주만 예외?…'임대료 인하 요구'도 권리

고통 분담에 건물주만 예외?…'임대료 인하 요구'도 권리
입력 2020-09-16 20:14 | 수정 2020-09-16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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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앵커 ▶

    여기, 사회적 거리 두기로 아예 영업을 못하게 된 가게가 있습니다.

    문을 닫았으니까 전기, 수도 요금은 덜 낼 테고 직원들 인건비도 어떻게든 줄겠죠.

    하지만 변함없이 내야 하는 거 바로, 임대료입니다.

    착한 건물주가 먼저 깎아 주지 않는 한 따박 따박 내야 합니다.

    그런데 '경제 사정이 바뀌어서' 임대료가 너무 버거워졌을 때 건물주한테 임대료 인하를 요구할 수 있는 법 조항이 있다는 걸 아십니까.

    법은 있지만 잘 알지도 못하고 제 구실도 못하는 사정을 노경진 기자가 설명해 드립니다.

    ◀ 리포트 ▶

    역사 이야기로 시작해보겠습니다.

    일제강점기, 1930년대요. 당시는 우리나라 주 산업이 농업이었습니다.

    지주와 소작농 관계를 법 제도화한 <조선농지령>이 제정됐는데요.

    물론 일제가 수탈을 목적으로 만든 법이었지만, 거기에 이런 조항도 들어갔습니다.

    바로, 임대료를 깎아달라고 신청할 수 있는 권리입니다.

    여기 보면, 불가항력. 즉, 사람의 힘으로 피할 수 없는 태풍이나 가뭄 같은 재해가 났을 때 소작농이 지주에게 소작료를 깎아달라고 요구할 수 있는 권리를 법제화해놨습니다.

    실제 이 법령에 따라 감면이 이뤄졌고요.

    이 법령을 근거로 농민들이 감면해달라고 제기했던 소작 쟁의, 즉 분쟁조정신청도 4년간 6천8백건이나 됐습니다.

    그렇다면 100년 뒤 지금, 2020년 상황을 볼까요?

    안경 수출업체를 운영하고 있는 김유석 씨.

    코로나19로 해외 수출길이 막힌데다 내수까지 침체되면서, 매출은 거의 제로가 됐습니다.

    한 때 4명이었던 직원은 1명으로 줄었고, 이 1명에게도 휴직을 권고해, 최근까지 김씨 혼자 일해왔습니다.

    온갖 비용을 줄이며 사무실을 유지하려 안간힘을 썼지만, 임대료만큼은 어찌할 재간이 없었습니다.

    [김유석/안경 수출업체 대표]
    "사무실 유지비(임대료) 같은 경우는 제가 한번 여기가 110만원을 내고 있거든요, 한 달에. 부가세 별도로 그래가지고 아 이거라도 아껴야겠다. 이사하는 게 보통 일이 아니잖아요."

    결국 더 저렴한 사무실로 옮기기로 하고 중개업소에 알렸더니, 그제야 월세를 20만원 깎을 수 있었습니다.

    [김유석/안경 수출업체 대표]
    "네이버부동산이나 그런 걸 보다 보니까 주변 시세가 확 내려갔더라고요. 이 사무실 자체가. 공실도 많고…"

    하지만 김 씨처럼 임대료를 깎은 사례는 극히 일부입니다.

    소상공인 1천여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90%는 '자신의 건물주는 임대료를 깎아달라는 요구에 응하지 않았다'고 답했습니다.

    [이창민/인쇄업소 운영]
    "여러 차례 얘기도 좀 했었고 그랬지만…여기(다른 가게)는 또 월세를 잘 내고 있고 그러다보니, 이제 좀 건물주 입장에서도 여기는 잘 되는데 여기는 왜 안 되지? 너네가 잘못하고 있는 거 아닐까? 이런 식으로 생각을 하고 있는 거죠."

    코로나 사태 6개월여.

    손님이 다 끊기고, 거리두기와 행정명령으로 문까지 닫아 매출이 0에 가까운데도 임대료는 똑같이 꼬박꼬박 내야 하는 겁니다.

    아무리 지출을 줄이고 세금까지 감면받아도 임대료가 그대로이다보니, '소상공인들은, 가게 운영에 가장 부담되는 게 뭐냔 질문에 임대료를 꼽은 답이 5월엔 40%였는데, 코로나 재확산 뒤인 이달 초엔 70%로 압도적으로 늘었습니다.'

    [목진성/인쇄업소 운영]
    "하루에 (고객) 전화 한 통이 안 오니까. 다 올스톱 되어 있는 상태에서. 그러니까 사실 임대료 내는 것도 참 버겁죠. 이 안에 있는 사람들이 다 마찬가지예요, 동일해. 들어가 보면 아시겠지만 문 닫은 데도 많고 어려워서 그냥 다…"

    100년 전에도 소작료를 깎아주는 법이 있었는데 그럼 지금 우리 법엔 이런 제도가 없는 걸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상가임대차보호법 11조를 보면, '임차건물에 관한 조세, 공과금 등 부담이 늘었거나 <경제 사정 변동>이 발생할 경우 임차인은 차임 즉 임대료 인하를 청구할 수 있다'고 돼있습니다.

    이 '경제사정의 변동'에 대해 전문가들은 전쟁을 제외하곤 코로나 사태 이상의 변동이 있을 수 있겠느냐며, 바로 지금이 이 법 규정이 적용돼야 할 때라고 말합니다.

    100년 전 표현대로라면 불가항력적인 상황이라는 거죠.

    [김남근/변호사]
    "코로나19 상황이 오래 되면서 매출액이 전혀 나오지 않거나 절반 이하로 감액된 상가 임차인들이 많은데요. 바로 이러한 것들이 상가건물 임대차보호법에서 임대료 감액 청구를 할 수 있는 '경제사정 변동'에 해당되는 것이기 때문에…"

    그런데 이 법은 거의 사문화돼있습니다.

    20년 전 IMF 외환위기 때 말고는 사용된 적이 없는 이 법조항에 대해, 소상공인들도 건물주들도 아는 사람이 거의 없습니다.

    설사 알고 감면을 요구한다 해도 건물주가 거절하면 감정만 상할 뿐, 그 이상의 진행은 힘듭니다.

    감면을 거절당한 소상공인은 지자체 분쟁조정위원회를 찾아가거나 민사소송을 할 수는 있지만, 돈과 시간을 들여 소송하는 게 쉽지 않은데다 건물주에게 밉보여 가게를 뺄 각오가 없다면 못할 일이기 때문입니다.

    [차남수/소상공인연합회 연구위원]
    "그게 이제 조정위원회까지는 갈 수도 있습니다. 다만 그런 조정위원회를 간다고 하더라도 법적 구속력이 없습니다. 그러면 법으로 가야 하는데, 법에서는 결국에는 그게 시간적인 문제이고 그 비용에 대한 또 부담도 있습니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엔 임대료 감면을 요구하는 글이 수십개 올라와 있습니다.

    코로나 사태로 자영업자 영업권을 비롯해 모두가 조금씩 손해를 감수하고 있는데, 어째서 건물주의 재산권만 신성불가침의 영역이냐는 항변입니다.

    정치권에선 언제까지 건물주의 선의에만 기댈 거냐며, 지금 법 갖고는 소상공인들이 임대료 감면을 요구하기 힘드니, 법조항을 실효성 있게 보완하고, 지원 절차와 시스템도 마련하자는 움직임이 일고 있습니다.

    법무부 역시, 임대료 감면 요구 조건으로 '경제사정 변동'만 적혀있는 것에 '재난상황'을 추가해, 법 개정을 추진 중이라고 밝혔습니다.

    MBC뉴스 노경진입니다.

    (영상취재:이창순, 김경락, 강재훈/영상편집:문명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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