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앵커 ▶
명절이라고 해서 제대로 못 쉬는 직업, 대표적으로 119 구급 대원이 있습니다.
출동했다가 오히려 폭행을 당하기도 하죠.
2년 전, 취객을 구조하다 맞은 뒤에 숨진 고 강연희 소방관 사건 이후 구급 대원 보호를 위한 법안과 대책이 이어졌지만 현실은 변한 게 없습니다.
당시에만 요란 했지 여전히 폭행과 폭언에 노출된 구급 대원을 취재했습니다.
◀ 리포트 ▶
만취한 상태로 길에 쓰러져 있던 한 남성.
구급대원들에게 욕설을 퍼붓고, 속옷까지 모두 벗어 던지며 난동을 부립니다.
이 남성은 모욕과 공연음란 혐의로 구속돼 검찰에 넘겨졌는데, 알고 보니 2년 전 고 강연희 소방관을 폭행했던 바로 그 사람.
"손 놔, ***아, 죽여버린다, ** 어린*의 **들이."
(가만히 계세요!)
"네 까짓 게 뭔데 ***아 때려 죽여버린다."
강 소방관은 이 남성에게 폭행을 당한 뒤 뇌출혈 증세로 쓰러졌다 한 달 뒤 끝내 숨을 거뒀습니다.
하지만 폭행이 강 소방관의 사망과 직접적인 관련성이 없다는 이유로 '폭행 치사죄'는 적용되지 않았고, 다른 범죄 혐의와 합쳐 징역 1년 10개월을 선고 받고 복역했습니다.
그리고 출소하자마자 또 이런 난동을 피운 겁니다.
[장지훈 소방교/구급 경력 2년]
"주취자도 많이 만나봤지만 이렇게까지 욕설을 하고 이렇게 옷까지 벗고 순종적이었던 사람이 갑자기 폭력성을 나타내는 환자는 처음이어서 좀 당황하기도 하고…"
고 강연희 소방관을 폭행했던 사람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구급대원들은 다시 한 번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김유진 소방장/구급 경력 10년]
"강연희 소방관이 사망했다고 했을 때 충격이 너무 커서 사실 며칠 동안 일이 손에 안 잡힐 정도였거든요 그 당사자가 현장에 있다고 하니까 순간적으로 멈칫했어요 장례식장부터 강연희 소방관에 대한 것이 쭉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가면서 아 조심해야지…"
인천에서는 70대 할아버지가 출동한 구급대원에게 칼을 휘두르는 일도 있었습니다.
[최연진 소방교/구급 경력 6년]
"(할아버지가) 양손에 칼을 들고 휘두르면서 나오셨어요 (아파트) 현관이랑 복도 사이가 좀 좁아서 미처 거기서 피하지를 못한 거죠 진짜 내가 죽을 수도 있겠구나…"
장비를 챙기던 동료 대원이 최연진 소방관의 비명소리를 듣고 달려와 할아버지를 막았지만, 피해는 심각했습니다.
[최연진 소방교/구급 경력 6년]
"왼손 여기 엄지 안쪽이랑 오른손은 검지 손톱이 잘리면서 안에 뼈까지 같이 절단이 됐거든요 핀을 세 개를 박고 손톱을 빼내고 인조손톱으로 덮어놨어요."
최 소방관은 후유증으로 두 달째 업무 복귀를 못하고 있습니다.
구급대원 폭행 피해는 최근 3년 간 587건에 달합니다.
하지만 실제 현장에서는 통계 수치보다 더 많은 피해가 일어나고 사례도 다양합니다.
"xx xx."
욕설과 주먹질은 기본.
흉기로 위협을 가하는가 하면, 성추행과 함께 폭언 폭행을 하기도 합니다.
"의자를 던지셔서 플라스틱 의자 있잖아요 간이 플라스틱 의자 자기 화난다고."
[최연진 소방교/구급 경력 6년]
"여자는 밖에 나와서 일하면 안 된다고 욕을 하시고 환자석이랑 구급대원이 앉는 석이 좀 가까워요 은근슬쩍 허벅지를 만지시는 분들이…"
가족 협박도 서슴지 않습니다.
[김유진 소방장/구급 경력 10년]
"너를 죽이겠다든가 너를 가만 안 두겠다라든가 그런 말은 크게 마음에 남지는 않는데 어머니, 아버지를 언급하면서 죽이겠다 죽여버리겠다… 굉장히 충격이 컸습니다."
가해자의 90% 이상이 술에 취한 사람.
도와주러 갔다가 이유 없이 폭행을 당하고 나면 물리적인 상처만큼 정신적인 트라우마도 크게 남습니다.
[장지훈 소방교/구급 경력 2년]
"계속 상황은 남는 것 같아요 정확하게 어떤 내용이었고 어떤 상황이었는지 기억을 안 하려고 하는데도 계속 머릿속에…"
[최연진 소방교/구급 경력 6년]
"저는 제가 되게 씩씩하다고 생각을 했는데요 막상 어두운 곳에 가야 하거나 당시 봤던 것과 유사하게 생긴 칼을 보면 저도 모르게 조금 주춤하게 되는 경우가 있었어요."
하지만 경찰과 달리 소방관은 흉기로 위협을 받거나 폭행을 당해도 자신을 보호할 수 있는 법적 근거와 보호 장치가 없습니다.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는데요.
[김유진 소방장/구급 경력 10년]
"구급차 안에 같이 들어가 있으면 도망칠 수도 없고 그 사람한테 위해를 가해도 안 되기 때문에 그냥 어떻게든 참고 맞고 있든지…"
최근 주먹을 휘두르는 취객을 제압하던 중 상처를 입힌 소방관에 벌금형이 선고됐는데, 현장에선 심리적으로 위축된다는 목소리가 나옵니다.
[김인중 소방장/구급 경력8년]
"이 사람이 경찰에 신고하면 어떡하지 라는 생각도 들고 내가 너 때문에 경찰서 갔어 하면서 해코지 할까봐 그것도 두렵기도 하고요."
구급대원을 폭행하면 5년 이하의 징역이나 5천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게 돼 있습니다.
"벌금 500만 원 내. 내면 되지 xxx아. 벌금 500만 원 내면 끝나는데…"
하지만, 실제 처벌은 솜방망이 수준에 그쳐 악순환이 되풀이된다는 지적입니다.
전국 최초로 소방관 폭행 사건을 전담하기 위해 조직된 서울 소방재난본부 119광역수사대.
지난 2년 동안 170건이 넘는 사건을 처리하는 등 구급대원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주고 있는데요.
약한 처벌을 꼬집었습니다.
[정재홍/서울소방재난본부 119광역수사대장]
"법령상에 규정된 형량보다 실제 처분이 좀 약합니다 벌금에 그치는 부분이 많다보니까 재범이 발생하기도 하고 소방대원에 대한 폭행이 얼마나 큰 범죄인거고 경각심이랄지 인식이 많이 없는 것 같고요."
고 강연희 소방관 사고 이후 처벌 강화와 호신 도구 소지 허용 등을 담은 법안이 9개나 발의됐지만 한 건도 국회에서 통과되지 못했습니다.
인권 침해를 우려하는 반대에 부딪히고, 사회적 관심이 더 큰 다른 법안들에 우선순위가 밀렸기 때문입니다.
구급대원들은 여전히 관련 법안의 신속한 처리를 기대하고 있는데요.
[정은애 소방경/故 강연희 소방경 직속 상관]
"우리가 적어도 어떤 일을 잘 하든지 못 하든지 국가의 보호 하에서 한다는 그런 믿음을 가질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최연진 소방교/구급 경력 6년]
"저희 도움이 필요해서 부른 환자잖아요."
[장지훈 소방교/구급경력 2년]
"사명감이라고 하죠 10명 중에 10명을 다 살리진 못하더라도 그래도 반 이상은 살려서 병원에 데려가고 싶다…"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보호하는 구급대원, 이들을 보호할 수 있는 방법 마련이 시급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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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데스크
김명순
"때리고 흉기까지"…2년 지났지만 변한 게 없다
"때리고 흉기까지"…2년 지났지만 변한 게 없다
입력
2020-09-29 20:44
|
수정 2020-09-29 2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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