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앵커 ▶
오늘 2부에서 깊게 들여다볼 뉴스는 '데이트 폭력'입니다.
연인들 사이에서 어느 한 쪽이 상대에게 물리적인, 혹은 정신적인 폭력을 가하는 걸 '데이트 폭력'이라고 하는데요.
피해자는 대부분 여성이죠.
연인한테 이런 짓을 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싶지만, 현실은 생각보다 많습니다.
지난 3년 동안 데이트폭력으로 입건된 가해자가 3만 명이 넘습니다.
하지만 실제 피해자 중에 신고라도 한 사람은 소수에 불과한데요.
피해자들이 겪은 악몽 같은 데이트폭력의 참혹한 현실을 공윤선 기자가 취재했습니다.
◀ 리포트 ▶
지난해 현정 씨에게 그 일이 있었던 건, 교제한 지 2달이 조금 지났을 때였습니다.
집에서 말다툼 도중 남자친구 A 씨가 갑자기 주방에 있던 흉기를 들고 와 위협한 겁니다.
[김현정(가명)/데이트폭력 피해자]
"협박을 1시간 동안 했거든요. 근데 '나 너 죽일 거야' 이게 아니라 '너의 피부를 어떻게 하고 눈을 어떻게 XX며 코도 어떻게 XXX고' 이러면서…"
급한 대로 경찰에 신고해 위기를 넘겼지만, 이전에도 폭행과 폭언을 당하기 일쑤였습니다.
[김현정(가명)/데이트폭력 피해자]
"집안에 물건을 집어던지고 욕을 하고 이런 경우가 되게 많았어요. 안 보이는 복부 부분 이런 부분만 폭행을 하고 얼굴이나 정말 티가 많이 날 것 같은 뼈 부분은 아예 때리지를 않더라고요."
현정 씨에 앞서 A 씨와 교제했던 예전 여자친구도 악몽에 시달리긴 마찬가지.
[이수영(가명)/데이트폭력 피해자]
"수건을 이렇게 채찍 삼아서 때리고 뺨 때리고 뭐 이렇게 배를 주먹으로 치고…"
흉기 협박 역시 똑같이 당했습니다.
[이수정(가명)/데이트폭력 피해자]
"칼끝을 목까지 이렇게 대고 자기는 '너 죽일 수 있다'고 '너 죽고 나도 죽으면 된다'고 자기는 '잃을 게 없다'고 이런 식으로 협박을 했었어요."
상대만 바꿔 수년간 계속된 범행, A 씨는 사실상 데이트폭력의 상습범이었습니다.
하지만 피해자 입장에선 누구보다 친밀한 관계인 남자친구의 폭력이 범죄란 걸 깨닫는 데 꽤 오랜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습니다.
더욱이 나를 잘 아는 상대이기 때문에 보복이 두려워 신고마저 꺼리게 됩니다.
[김현정(가명)/데이트폭력 피해자]
"처음 폭행 당했을 때는 그 친구가 미안하다 하면서 울면서 빌었기 때문에 봐줬고 신고도 안 했고 저도 처음에는 '연인간에 이런 걸로 경찰서를 가냐'라는 생각을 했었어요."
[이수정(가명)/데이트폭력 피해자]
"그 친구가 진짜 너무 무서운 친구여가지고 (저를) 죽일 수도 있다고 생각해서 전화번호도 바꾸고 저는 이제 숨어버린 거죠. 빨리 잊으려고…"
실제로 연인에게서 폭언을 듣거나 돈을 뜯긴 여성 중 경찰에 신고한 피해자는 4.8%에 불과했고, 신체적 폭력을 당한 경우에도 9.1%에 그쳤습니다.
어렵사리 용기를 내 신고하면 처벌은 제대로 될까?
여자친구들에게 폭행과 폭언을 거듭했지만, 흉기 위협 1건만 특수협박죄로 기소된 A 씨에겐 고작 벌금 300만 원이 선고됐습니다.
초범이고 반성문을 제출한 데다, 이른바 명문대생이라 학업을 계속해야 한다는 호소까지 통한 것으로 보입니다.
[김현정(가명)/데이트폭력 피해자]
"음주운전을 해도 벌금 300만 원은 나오지 않나요. 어떻게 보면 조금만 더 했으면 제가 죽었을 텐데… 내가 안 죽어서 (처벌이) 이 정도구나 죽어야 했구나…"
특히 데이트폭력은 별도의 처벌 규정 없이 일반 형법이 적용되다 보니, 신고된 사례의 대다수인 폭행 사건의 경우, 물건을 훼손한 범죄보다도 처벌이 가볍습니다.
[최선혜/한국여성의전화 여성인권상담소장]
"처음 만나는 사람의 폭행보다 (기존) 관계가 있으면 오히려 더 사소화 되기도 하거든요. '사랑싸움이다', '부부간이든 연인간이든 이럴 수 있지' 하고 사소하게 넘기기 때문에…"
연인 사이라는 특수성에서 비롯된 교묘하고 애매한 괴롭힘은 아예 처벌 대상이 되지도 못합니다.
[최선혜/한국여성의전화 여성인권상담소장]
"밤새 전화를 해서 진심으로 자기가 원하는 사과의 말을 들을 때까지 절대 전화도 못 끊게 하고 밤새 잠도 못 자게 하고 (이런 범죄는) 경범죄 처벌법 이 정도 수준의 처벌만 가능해서…"
성폭력 처벌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불기소 이유서)
성폭행에 대한 피해 사실을 즉시 알리지 않았다거나,
(불기소 이유서)
교제기간 동안 성관계가 있었고 피해자가 피임 도구를 준비했다는 이유로 준강간 혐의조차 인정되지 않고 있습니다.
[심재국 변호사]
"강제로 하니까 임신이라도 막으려고 콘돔을 샀는데 '콘돔을 샀으니까 너가 동의해서 성관계한 게 아니냐' 결국 수사기관에서는 '우리는 증거만 가지고 판단한다'… (데이트폭력의) 특수성을 고려한 판단이 아니라…"
처벌이 부실한 탓에 데이트폭력의 재범률은 무려 76.5%, 가해자 다섯 중 1명은 1년 이내에 범행을 또 저지르고 있습니다.
보복성 범행이 되풀이되는데도, 피해자는 속절없이 당할 수밖에 없는 겁니다.
[최선혜/한국여성의전화 여성인권상담소장]
"신고를 해도 대부분 입건조차 되지 않는 경우도 많아서 더이상 피해자들이 경찰에 신고를 하지 않게 되고 가해자들도 '난 아무 처벌도 받지 않아' 이런 식으로 역으로 피해자의 신고나 대응을 위축시키는…"
심하면 목숨을 빼앗기는 참극으로 막을 내리기도 하는 데이트폭력.
지난해 언론에 보도된 살인 사건 피해 여성 중 연인에게서 당한 경우는 41명, 전체의 40%가 넘습니다.
MBC뉴스 공윤선입니다.
(영상취재: 김경배, 방종혁, 김희건, 나경운, 김우람 / 영상편집: 김재환, 위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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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데스크
공윤선
공윤선
"제가 죽어야 처벌하나요?"…데이트 폭력 피해자의 절규
"제가 죽어야 처벌하나요?"…데이트 폭력 피해자의 절규
입력
2020-10-05 20:53
|
수정 2020-10-05 2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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