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앵커 ▶
오늘 2부에서는 어제에 이어 데이트폭력 문제를 깊게 들여다보겠습니다.
데이트폭력 가해자들은 재범률이 높고, 신고를 하면 보복범죄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아직 이를 막을 관련법 자체가 없다는 거 아십니까?
그러다 보니까 피해자가 가해자에게 그대로 노출돼 있거나, 생활을 포기한 채 숨어지내야 하는 것이 현실입니다.
심지어 수사 과정에서 피해자에게 책임을 돌리는 2차 가해가 벌어지기도 하는데요.
어디서도 보호받지 못한 채 끔찍한 폭력에 내던져져 있는 데이트폭력 피해자들의 고통스런 현실을 공윤선 기자가 취재했습니다.
◀ 리포트 ▶
지난 7월 어느 날 자정 무렵.
닫혀 있는 가게 유리문을 한 남성이 망치로 힘껏 내려칩니다.
문을 깨고 들어온 남성은 망치를 손에 든 채 여자친구인 선영 씨를 찾기 시작합니다.
성관계를 강요하고 폭행을 일삼는 남자친구에게 헤어지자고 하자 가게로 찾아와 행패를 부린 겁니다.
[김선영(가명)/데이트폭력 피해자]
"제 방에 가면 구멍이 지금 한 6군데인가 7군데인가 그렇게 뚫린 게 있어요. (남자친구가) 말을 안 들으면 치는(때리는) 거예요. 맞아서 뇌진탕까지 왔었잖아요. '헤어지면 안 되겠냐' 하니까 그날 (남자친구가) 김해에서 직접 이리 와 가지고."
경찰에 연행된 남성은 몇 시간 뒤 바로 풀려났고, 선영 씨는 그를 성폭행 혐의로 고소했습니다.
그랬더니 2주 만에 더 끔찍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모자에 가발까지 쓰며 얼굴을 숨긴 남자친구가 전기충격기와 흉기를 들고 찾아온 겁니다.
자신을 왜 고소했냐고 화를 내며 선영 씨의 팔과 손, 목 등에 여러 차례 흉기를 휘둘렀습니다.
가까스로 탈출해 목숨은 겨우 건졌지만 몸과 마음에 남은 상처는 지우기 어렵습니다.
[김선영(가명)/데이트폭력 피해자]
"그냥 살아난 것만 해도 참… 다들 기적이라고 하는데 (손바닥) 힘줄이 끊어지고 신경이 지금 잘못돼, 이게 감각이 없어요. 매일 약을 안 먹으면 잠을 못 자요. 혼자 못 있어요."
선영 씨는 경찰이 야속하기만 합니다.
유리문을 깨고 들어왔던 날 오후 남자친구는 다시 찾아와 목을 졸랐는데, 그때도 별 조치 없이 석방된 겁니다.
[김선영(가명)/데이트폭력 피해자]
"(남자친구가) 목을 졸랐을 때 진짜 경찰들이 잡아가서 구속을 시켰더라면 칼에 찍히고 내가 이렇게 고생을 할 일도 없고… 이번에 목숨을 잃을 뻔했었잖아요."
이전에 경찰에서 받아두었던 신변 보호용 스마트 워치도 막상 위급한 때 전혀 도움이 안 됐다고 분통을 터뜨렸습니다.
[김선영(가명)/데이트폭력 피해자]
"30분 넘어서도 (경찰이) 안 왔었어요. 제가 만약 죽었다면 죽었죠. 임진강 물이, 물난리가 나가지고 (경찰이) 거기를 갔답니다."
여자친구에게 반복적으로 폭력을 행사한 이 남성 역시, 흉기까지 휘두른 뒤에야 경찰에 구속됐습니다.
피해자는 죽음의 문턱까지 다다라서 겨우 가해자와 분리됐습니다.
이처럼 추가 피해에 무방비로 노출된 데이트 폭력은 왜 처벌은 물론, 최소한의 피해자 보호도 잘 이뤄지지 않을까요.
"언제 또 당할지.."
연인 간의 폭력을 따로 규제하는 법이 없고, 그러다 보니 피해자의 신변 보호 조치도 느슨할 수밖에 없습니다.
신변 보호를 요청하면 긴급 상황을 신속히 경찰에 알릴 수 있는 스마트워치를 받거나, 112 신고시스템에 기존 데이트폭력 피해자임이 등록됩니다.
피해 예방보다는 사후 신고 기능밖에 안 되는 조치들이지만, 이런 보호조차 못 받는 경우도 허다합니다.
[김현정(가명)/데이트폭력 피해자]
"(스마트워치가) 남아 있는 재고가 없어서 줄 수 없으니 그냥 그 친구(가해자)가 집 근처로 오거나 연락이 오면 경찰에 전화를 해라 이렇게 말하고 끝나셨어요."
재범률이 높고 보복·강력범죄로 이어지기도 하는 데이트 폭력 특성상 가정폭력처럼 가해자 '접근금지 명령' 등 적극적 조치가 필요하지만, 법적 근거가 없습니다.
징역 3년 이상의 중범죄를 저질렀을 때만 긴급체포가 가능한데, 심각한 피해를 입기 전까지는 말 그대로 피해자가 알아서 숨어지내야 되는 겁니다.
[심재국/변호사]
"연락을 끊고 찾을 수 없는 곳으로 보통 도피를 합니다. 근데 본인이 생활 근거지가 있는데 그걸 완전히 끊고 가야 되는 건… 사실 가해자가 도망을 가야 되는 부분인데."
경찰이라고 할 말이 없는 건 아닙니다.
[이은구/경찰청 가정폭력대책계장(출처:한국여성의전화 토론회)]
"뭔가 범죄가 이루어질 것 같은 판단이 들어도 아직 범죄가 없기 때문에 격리조치를 못하는 거죠. '나중에 맞으면 다시 신고해달라 지금은 우리가 법적으로 어떻게 해 줄 수가 없다' 그렇게 안내할 수밖에 없습니다."
신고했더니 '2차 가해'까지
가정폭력과 달리 '헤어지면 그만 아니냐'는 인식이 높다 보니 수사기관마저 대수롭지 않게 여기며 '2차 가해'도 서슴지 않습니다.
[이수정(가명)/데이트폭력 피해자]
"(경찰이) '이런 사람 왜 만나고 있어요? 맞으면 헤어지면 되죠, 00씨가 이상하시네' 막 이런 식으로 대하니까 되게 힘이 많이 빠지더라고요."
[김현정(가명)/데이트폭력 피해자]
"(경찰이) '본인이 자초한 거 아니냐' '맞을 만한 행동을 한 게 아니냐'라고 저한테 심문을 하시더라고요."
실제로 경찰에 가면 합의를 종용하거나 소극적인 수사를 했다고 답한 피해자가 절반이 넘었습니다.
'데이트 폭력', 해외에선 어떻게 보나
데이트 폭력에 별도의 처벌 규정을 둔 나라들이 적지 않습니다.
미국은 피해자의 진술만으로 경찰이 가해자를 체포하는 의무체포제를 채택하고 있고, 영국에선 2016년부터 신체적 폭력이 없는 강요·통제만으로도 최대 5년형이 선고되도록 법을 바꿨습니다.
일본 역시 이미 7년 전부터 교제 상대도 가정폭력 가해자와 같은 법률의 적용을 받도록 했습니다.
2년 전 우리 정부도 데이트 폭력을 근절하겠다고 대대적으로 선언했습니다.
[이숙진/당시 여성가족부 차관(2018.2)]
"스토킹과 데이트 폭력의 경우 피해 내용 상습성, 위험성, 죄질 등을 입체적이고 종합적으로 수사하여 구속 등 엄정 대처할 것입니다."
하지만 약속했던 '종합 대책'은 아직도 감감무소식이고, 그 사이 데이트 폭력 피해 신고는 40%나 급증했습니다.
MBC뉴스 공윤선입니다.
(영상취재: 나경운 / 영상편집: 김하은 / 영상출처: 유튜브(National Geographic,Al jazee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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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데스크
공윤선
죽음 부르는 '데이트 폭력'…신고하면 "왜 만나요?"
죽음 부르는 '데이트 폭력'…신고하면 "왜 만나요?"
입력
2020-10-06 20:52
|
수정 2020-10-07 18: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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