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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간다] 집마다 '무늬만 전시장'…회장님들은 다 미술애호가?

[바로간다] 집마다 '무늬만 전시장'…회장님들은 다 미술애호가?
입력 2020-10-13 20:23 | 수정 2020-10-13 2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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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 ▶

    바로간다, 기획취재팀 김세로 기자입니다.

    널따란 마당에 고급호텔을 옮겨놓은 것처럼 크고 화려한 집들.

    기업 회장들이 많이 산다는 서울 한남동이나 평창동에 많죠.

    MBC 기획취재팀이 별난 공통점을 하나 찾았습니다.

    상당수 집들이 높다란 담장 안에 전시장을 따로 둔 겁니다.

    그런데 하나같이 비공개였고요. 전시회 한 번 연 적도 없었습니다.

    제 역할도 못할 무늬만 전시장을 도대체 왜 만든 걸까요?

    현장으로 바로 가보겠습니다.

    ◀ 리포트 ▶

    전통적인 부촌으로 유명한 서울 종로구 평창동의 한 단독주택.

    지난 2013년 27억 원에 거래돼 지하 1층에 지상 2층으로 새로 지어졌습니다.

    건축물대장을 보면 집 일부가 전시장입니다.

    무슨 전시회를 여나 싶어 찾아갔더니 직원이라는 사람이 나와 막아섭니다.

    [직원]
    <전시장이 외부에 공개되는 전시장인가요?>
    "아뇨, 저희 자체적으로… 지인들만."
    <일반 사람들은 못 들어가는?>
    "예예."

    집주인은 코스닥 상장 기업인 한 제조업체 권 모 회장.

    [운전기사]
    <일반 사람들은 못 들어가는 전시장이 집에 있어야 할 이유가 있어요?>
    "그걸 우리는 모르니까, 윗분들이 아니까…"

    이 집은 최근 건축법 위반건축물로 드러났습니다.

    전시장으로 허가받아 놓곤 실제로는 집이나 사무실로 썼던 겁니다.

    적발 이후 세금도 3억 원 가까이 추징됐습니다.

    세금 더 낸 이유는 이렇습니다.

    취득세는 통상 집값의 1~3%를 내지만, 고급주택일 경우 8%P가 더 붙습니다.

    별장이나 골프장, 카지노, 요트처럼 사치성 재산으로 보기 때문입니다.

    고급주택은 일단 공시가격이 6억 원을 넘어야 합니다.

    이 가운데 집 면적이 331제곱미터, 즉 100평을 넘는 단독주택이면 고급주택 대상이 됩니다.

    여기서 눈여겨볼 건 전시장은 집 면적에서 빠진다는 겁니다.

    권 회장 집은 지하부터 2층까지 전체 건물 면적(540제곱미터)이 고급주택 기준을 훌쩍 넘지만, 전시장으로 허가받은 면적만큼 집 면적이 줄어 취득세를 3억 원 가까이 적게 냈던 겁니다.

    권 회장 측은 원래 계획은 선친이 만든 문화재단의 전시장이었다며 세금 회피 꼼수는 아니었다고 반박했습니다.

    [권 회장 회사 기획실 직원]
    "예술품들을 전시하기 위해서 마련했었는데 좀 여의치 않아가지고 다시 활용을 잘 못하고 있었죠."

    국내 굴지의 여행사 창업주인 박 모 회장의 평창동 집에도 전시장이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비공개입니다.

    [가사도우미]
    "나중에 갤러리 필요하면 하려고 집에 있는 그림 몇 개 붙여놨어요."
    <그러면 실제로 일반인들한테 공개해서 전시한 적은 있나요?>
    "없어요."

    비공개 전시장은 또 있습니다.

    한 기업 총수 일가 김 모 씨의 종로구 부암동 집입니다.

    마찬가지로 아무나 드나들 수 없습니다.

    "계시나요, 계십니까?"

    전시장 간판도 없습니다.

    법적 다툼 중이라고 공사업체가 내건 현수막만 붙어 있습니다.

    [공사업체 직원]
    <그럼 여기서 계속 먹고 자고 숙식도 하시는 거예요?>
    "그렇죠. 다 배달시켜먹고…"

    공사가 늦어 손해를 봤다고 집주인이 고소하자 업체가 맞고소 한 겁니다.

    애초 설계는 박물관으로 해놓고 집으로 꾸며달라고 하는 등 집주인이 까다롭게 굴었다는 겁니다.

    업체는 집주인이 세금에 민감해 했다며 탈세 제안이 담긴 녹취록도 공개했습니다.

    [집주인]
    "입금 잡으면 안 돼요. 안 되는 돈이에요. 될 거 같으면 내가 보내지 뭐하려고 내가 (수표로) 드려요 안 되지…"

    집주인 김 씨 측은 공사비는 나중에 과세당국에 제대로 신고했고, 하자투성이 공사로 피해를 봤다며 업체와 소송에서 전부 이겼다고 반박했습니다.

    또 여행사 박 회장이나 김 씨 모두 취재진에 내부 사진을 공개하며 준비 부족과 소송 때문에 전시장이나 박물관 개장이 늦어졌을 뿐 세금 회피 의도는 없었다고 주장했습니다.

    MBC 기획취재팀은 서울의 단독주택 건축물대장을 전부 확인해 전시장, 기념관, 공연장 등을 둔 고급주택 의심 건축물을 추려냈습니다.

    취재의 한계상 더 늘어날 수 있지만, 적어도 40채로 확인됐습니다.

    종로구 평창동과 부암동, 용산구 한남동, 성북구 성북동, 서초구 서초동에 많았습니다.

    집주인은 대부분 기업회장과 재벌 일가, 디자이너와 소설가, 전직 국회의원 등 재력가나 유명 인사들이었습니다.

    <외부에서 전시 행사를 한 적 있나 싶어서요?>
    "그런 거 없어요. 뭐 볼만한 게 없어요."

    문제는 무늬만 전시장이 세금 덜 내는 수법으로 악용되기 십상이지만, 단속 자체가 쉽지 않다는 겁니다.

    [성북구청 세무담당 공무원]
    "도우미 분들, 그런 분들은 소유자 없으면 안 열어주세요. 처음부터 남의 집을 문 따고 들어가고 이렇게는 못하죠."

    [종로구청 건축담당 공무원]
    "(도우미) 아주머니 입장이라면 열어주겠습니까? 주인한테 야단 엄청나죠."

    문을 안 열어주면 그만이고, 설령 들어가더라도 전시장인지 집인지 가릴 똑 부러진 기준도 없습니다.

    [종로구청 건축담당 공무원]
    "법조계도 있고 법을 많이 아는 분들이라 따지기 시작하면 한없이 따져요."

    애매하다는 말이 공무원 입에서 나올 정도입니다.

    [종로구청 건축담당 공무원]
    "예를 들어 방을 하나 만들어놨어요. 거기다가 내가 흉상이나 이런 걸 하나 놓고 이 사람의 사진을 놓고 이걸 '기념관'이라고 한다면 그것도 틀린 말은 아니잖아요. 그게 애매하다고요."

    공개 여부는 아예 판단 잣대가 아니어서 비공개라도 전시장 형태만 갖추면 괜찮습니다.

    [서초구청 건축담당 공무원]
    "이걸(전시장을) 외부에 공개했느냐 안 했느냐 그걸 기준으로 해서 (과세)하는 건 아니에요."

    건축법 담당부처인 국토교통부는 MBC 문제 제기에 앞으로 일반 공중, 즉 여러 사람들을 위해 설치되거나 이용되지 않는 시설은 전시장으로 판단하지 않겠다고 밝혔습니다.

    비공개 전시장은 전시장이 아니라는 겁니다.

    [김성호/국토교통부 건축정책과장]
    "음악실도 있을 수 있고 영화를 관람하는 영화실도 있을 수 있잖아요, 단독주택 같은 경우에. 그런 거는 개인의 주택의 일부 기능을 하는 거로 봐야 하고요. 저희가 건축법에서 이야기하는 문화 및 집회시설(전시장)은 아니라는 거죠."

    국토부는 또 이런 비공개 전시장은 집으로 봐야 한다는 취지의 공문도 전국 17개 시도에 보냈습니다.

    MBC뉴스 김세로입니다.

    (영상취재: 최경순, 소정섭 / 영상편집: 신재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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