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앵커 ▶
수도권과 비수도권 사이 의료 인력 불균형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서 정부가 국립 대학의 의대 정원을 줄여서 지역 사립대에 의대를 만들고 또, 정원도 늘려 줬습니다.
그런데 의대 이름에만 지역명이 들어가 있지 수업이나 병원 근무는 대부분, 서울에서 이뤄지는 의대가 있습니다.
결국 피해는, 의사를 찾아서 서울까지 와야 하는 지역 주민의 몫입니다.
이덕영 기자가 집중 취재했습니다.
◀ 리포트 ▶
울산의 한 특수학교에 다니는 18살 최준연 군, 뇌병변 1급 장애여서 다른 사람의 도움 없이는 움직일 수 없습니다.
"고생하셨어요. 네, 수고하세요. 자세 바로하고."
두 다리가 항상 경직돼 있다 보니 양쪽 고관절이 빠져버려 2년 전 큰 수술을 두 차례나 받아야 했습니다.
하지만 울산의 병원들은 이런 수술을 해본 적이 없다고 말했고,
[최인수/아버지]
"수술을 하려고 알아보니까 울산 지역에서는 도저히 안 되겠더라고요. 못 맡기겠더라고요."
먼저 부산을 찾았지만 결국엔 서울의 대형병원까지 가야 했습니다.
[최인수/아버지]
"(부산에서) 예후가 안 좋아서 반대쪽 절반 빠진 수술 하러 서울에 갔어요. 서울 가니까 지난번에 한 수술까지도 손을 대야 하는..."
퇴원 후에도 두 달에 한 번씩은 단 10분 진료를 위해 왕복 10시간이 걸려 서울을 오가고 있습니다.
"차에 뒷자리 침대 만들어서 애 눕혀서 새벽 5시에 여기서 출발하면 거기 10시나 11시쯤 되면 (도착합니다)."
울산에서 준연 군 같은 중증 환자들의 치료만 어려운 건 아닙니다.
화상이나 손가락 접합 치료병원부터 장애인을 위한 치과시설까지 턱없이 부족합니다.
[박영규/치과의사]
"치과는 이 하나 신경 치료를 하더라도 서너 번을 최소한 가야 하는데 시간, 거리 모든 데서 너무 많은 분들이 부담을...그래서 보통 포기를 해버리죠."
인구 1백만이 넘는 6대 광역시 울산, 그런데 10만 명당 의사 수는 서울과 광역시 중 가장 적고, 사망률은 가장 높았습니다.
코로나19에 대처할 수 있는 감염내과 전문의는 단 한 명뿐이고, 공공병원은 한 곳도 없습니다.
이처럼 전국의 광역시 중에서도 울산의 의료서비스 수준은 가장 낮은 실정입니다.
무엇보다 의사 수 부족이 가장 큰 원인인데요, 이곳에도 의과대학이 있지만 제 역할을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지역 유일의 의과대학이 있는 울산대학교를 찾아가 봤습니다.
교내 어디에도 의대 위치를 알려주는 표지판이 없고, 학생들조차 위치를 모릅니다.
[울산대 학생]
"잘 모르겠어요. 어느 건물을 같이 쓴다고 했어요."
그럼 울산대 의대는 어디에 있을까.
서울 송파구의 아산병원.
병원 바로 맞은 편에 연구실 등이 모여 있는 건물이 있습니다.
울산에 없던 의과대학이 바로 이 곳, 서울 한복판에 있는 겁니다.
울산대 의대는 지난 1988년 <지역 의료인력을 확보>하기 위한 문교부의 지침에 따라 설립됐습니다.
국립대 의대 정원을 줄여서 울산대를 포함한 지역 사립대 3곳에 의대가 만들어진 겁니다.
하지만 설립 취지가 무색하게 울산에서 수업을 받는 건 단 1년뿐입니다.
학교는 이런 사실을 공공연히 홍보하고
[울산대 의예과 홍보 영상]
"예과 2학년 때부터 본과 4학년까지 서울아산병원에 있는 의과대학 서울캠퍼스에서..."
학생들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울산대학교병원 관계자]
"(지역에서) 1년 그냥 지나가는 거...들어올 때조차도 '울산의대는 서울에 있다'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울산대 의대가 아닌 '아산대 의대'란 말이 나오는 이유입니다.
이에 대해 울산대 의대는 학생들에게 더 훌륭한 환경인 서울에서 일부 교육을 진행해 오고 있고, 현재 교육시스템이 가장 이상적이라고 밝혔습니다.
지역 의대지만 서울에서 수업을 하는 대학은 또 있습니다.
지난 1985년 의과대학이 설립된 충북 충주의 건국대학교 캠퍼스.
지난 2005년 의학전문대학원으로 전환된 뒤에는 모든 수업을 서울에서 하고 있습니다.
그러다 교육부 감사에서 시정하라는 지적을 받기도 했습니다.
[양귀현/건국대 충주 의학전문대학원 행정실장]
"2020년 올해부터 1학년 수업은 충주 캠퍼스에서 하고 있고요."
지역 의대가 이렇게 해당 지역을 떠나있다 보니 피해는 결국 지역으로 돌아가고 있습니다.
의대 부속병원은 의료인력이 부족해 충분한 진료를 제공하지 못하고, 그러다보니 다시 주민들의 외면과 병원 부실화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충북 충주의 건국대 부속병원.
이곳을 찾은 응급환자 상당수는 다른 지역 병원으로 이동해야 합니다.
중환자실이 부족하거나 응급 수술이 불가능하기 때문인데
[이동희/건국대 충주병원 간호사]
"교통사고를 당하셨다든가, 높은 곳에서 낙상 사고를 당하셨다든가 아니면 심하게 다쳐서 빨리 여러 과가 같이 합쳐서 수술하거나..."
생사를 가르는 '골든 타임'을 놓치는 경우도 발생합니다.
"구급차를 타고 가시다 사망하시는 것도 가끔 일년에 한 두건 정도는 봅니다."
지난 10년 동안 이 병원의 병상 수는 40%가량 줄었는데, 병원 규모가 줄다 보니 의사를 초빙하기는 더 어려워졌습니다.
'지역 의료인력' 확보라는 애초의 의대 설립 목표는 유명무실해진 지 오래입니다.
[양승준/보건의료노조 충주병원 지부장]
"예전에는 (의사가) 한두 분 계셨지만 지금은 건대를 졸업하고 건대 충주병원에 오시는 분들은 단 한 분도 없습니다."
울산대 의대 부속병원도 사정은 비슷합니다.
의사 수를 못 채워 3년 전 중증 환자를 돌볼 수 있는 상급종합병원 지정에서 탈락했고, 결국 울산에 상급종합병원은 한 곳도 없게 됐습니다.
[울산대학교병원 관계자]
"중증질환이라든지 아니면 의사의 교육이라든지 전공의 교육, 이런 면에서 문제가 안 됐는데 의사 수가 부족해서 탈락하게 됐죠."
울산대는 현재 40명인 의대정원을 늘려주면 대학병원을 하나 더 짓겠다고 말하고 있지만 울산대 의대를 졸업한 뒤 울산으로 돌아온 의사는 졸업생 열 명 중 한 명도 안되고, 졸업생 70% 가까이는 수도권에서 자리를 잡고 있습니다.
지역의대는 수도권으로 가기 위해 잠시 스쳐가는 곳이 된 현실.
[양귀현/건국대 충주 의학전문대학원 행정실장]
"우리 학교의 충주에 있는 학생이지만 그 학생 보고 '너 충주에 남아 있어라' 강제할 물리적인 방법도 없고..."
사립의대들은 법의 허점을 이용하고 있습니다.
의대생들은 부속병원이나 대학이 지정한 병원에서 수업을 받을 수 있는데, 울산대와 건국대 모두 서울의 병원을 협력병원으로 지정해 수업이 가능하도록 했습니다.
지난 2011년까지는 협력병원 의사가 임상수업은 할 수 있지만 전임 교원, 교수가 되는 건 불법이었습니다.
그런데 감사원 감사에서 울산의대 등 사립의대 7곳이 협력병원 의사를 교원으로 임용해 사학연금 196억원 등 607억원이 부당 지급된 사실이 적발됐습니다.
그러자 교육부는 잘못을 고치도록 하는 대신 아예 법을 바꾸는 방법을 택했습니다.
[교육부 관계자]
"제가 이거 기억이 안 나는데요, 잘...그 때 병원에 있는 그런 상황도 있었을 거라서..."
사립의대의 꼼수 행위를 묵인하고 방관하는 데서 더 나아가 합법화시킨 겁니다.
[울산대학교병원 관계자]
"법을 아예 바꾼 거죠...'협력병원도 인정을 해달라' 이렇게 하고 세금도 면해주고 그랬던 거죠."
서울로 가버린 지역 의대들.
무너져 가는 지역의료를 다시 세우려면 보다 강력한 법적 장치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오는 이유입니다.
[서동용 의원/국회 교육위원회]
"지역의사제 도입과 의대 정원 확대는 불가피한 문제로 보여집니다. 교육부는 전수 조사를 통해 지역의료 활성화와 지방 대학 육성이라는 원래의 목적과 취지에 맞도록..."
또, 의료의 공공성 확대를 위해 지역 공공의료원을 늘리는 등 의료 인력과 시설 확보가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습니다.
MBC뉴스 이덕영입니다.
(영상취재: 남현택 / 영상편집: 정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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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데스크
이덕영
"울산대 의대가 서울에?"…이름 뿐인 '지역' 의대
"울산대 의대가 서울에?"…이름 뿐인 '지역' 의대
입력
2020-10-19 20:50
|
수정 2020-10-19 2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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