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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사지업체가 초음파탐상기?…'로또' 된 군수품 입찰

마사지업체가 초음파탐상기?…'로또' 된 군수품 입찰
입력 2020-10-21 20:22 | 수정 2020-10-21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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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앵커 ▶

    조달청은 공공 분야에서 필요한 물품을 보통 '나라 장터'라는 전자 시스템을 통해서 공개 입찰합니다.

    군수품도 해당하는데요,

    저희가 최근 3년 동안 누가 군수품 공급을 따 냈는지 입찰 결과를 살펴보았더니 공인중개소, 마사지 업체, 주부가 운영하는 1인 사업체처럼 군수품과 전혀 관계 없는 업체가 수두룩했습니다.

    어떻게 이런 일들이 가능한 건지, 박종욱 기자가 취재했습니다.

    ◀ 리포트 ▶

    지난해 7월, 육군이 발주한 폭발물 탐지기 공급 입찰.

    5억 4천 만원짜리 이 사업 공고가 뜨자, 2백여 업체가 응찰했습니다.

    낙찰받은 업체에 찾아가봤더니 종이상자를 만드는 회사로, 폭발물 탐지기와는 아무 관련이 없었습니다.

    [종이상자 업체 대표]
    "(폭발물 탐지기랑) 관련 없어요. 그건 인정해요. 인정하는데, 나라에서 뭐 자격은 된다고 받아주잖아요. 그건 나라에서 잘못한 거지, 저희가 잘못한 건 아니잖아요."

    지난 3월 해군이 발주한 1억 9천만원 규모 군수품 공급 낙찰자는 경기도 남양주의 30대 주부였습니다.

    직원 하나 없는 1인 사업자로, 사업자 등록지도 본인 집이었습니다.

    군수품에 대해선 전혀 모르지만, 무조건 신청해서 낙찰만 받으면 돈벌이가 된다고 해 응찰했다고 말합니다.

    [이 모씨 (군수품 공급 낙찰)]
    "사업자를 처음 낼 때에는 사무용품이나 잡화류를 판매하려고 냈는데...(입찰 관련해) 제가 아는 분이 계셔 가지고 그분 통해서 움직이고 있어요."

    지난 2018년 이후 나라장터를 통해 진행된 군수품 입찰 5백 7십여 건을 살펴봤더니, 군수품과 무관한 업체가 낙찰받은 경우가 대부분이었습니다.

    올 2월 해병대가 발주한 폭약성분 분석기는 광주의 한 공인중개사무소가, 해군이 발주한 초음파 탐상기는 경남의 한 마사지 업체가 낙찰받았고, 28억원 규모의 동력 패러글라이더는 문구용품 유통업체가 따내는 식이었습니다.

    [공인중개업자 (폭약성분 분석기 낙찰)]
    <공인중개사무소에서 낙찰을 받으셨길래 좀 특이해서 확인 전화를 좀 드린 거거든요.>
    "말하기 싫은데요. 제대로 절차 밟아서 했고요."

    이런 일이 가능한 건 조달청 입찰 방식 때문.

    사업자 등록만 갖고 있으면 사실상 누구나 참여할 수 있게 돼있습니다.

    조달청은, 최저가 낙찰제를 했다간 소수업체가 담합하거나 잡음이 나올 수 있다며, 25년째 이런 방식으로 입찰 추첨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군수품과 무관한 업체가 낙찰받더라도 이 업체가 실제 납품할 업자만 데려오면 예산을 다 지급하기 때문에, 낙찰자는 예산 중 통상 10-20%를 자기 몫으로 떼고 납품업자에게 넘깁니다.

    [종이상자 업체 대표 (폭발물 탐지기 낙찰)]
    "'아무나 다 해라' 이렇게 만들어 놓은 구조거든요. 조달청에서 하는 입찰이. 그냥 운발이에요, 운발..."

    이러다보니 조달청 입찰은 이른바 '로또'로 인식돼, 군수품 공고 1건당 응찰한 업체는 평균 874곳에 달합니다.

    당첨 확률을 높이기 위해, 사업자 수백명씩을 모아 한꺼번에 응찰하는 전문 브로커도 활개를 치고 있습니다.

    [이 모씨 (해군 군수품 낙찰)]
    "저한테 연락을 주죠. 어디, 어디를 입찰을 해봐라. 아예 대놓고 유튜브도 하면서 사람들을 많이 모으고 있고. 만약에 납품됐을 경우에 **에서 알아서 해결을 하고."

    결국 실제 군수품을 공급하는 업체는 응찰을 해도 낙찰 가능성이 거의 없고, 낙찰받은 업체 측이 예산의 최대 20%를 떼어가고 나면, 그 나머지 돈을 받아 물건을 공급하기 때문에 품질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고 말합니다.

    [군수품 전문 공급업자]
    "옛날에는 (수수료) 5-10%에도 했는데, 요즘은 그 사람들이 간이 부어서 거의 20%까지 (가져가요). 마이너스 나고는 할 수 없으니까 등급 떨어지는 물건을 밀어 넣으려고..."

    현행법상 불법인 '대리 입찰' 소지가 있는데다, 불필요한 예산마저 낭비되고 있는 겁니다.

    [김경협/국회 기획재정위원]
    "적격심사제가 악용돼 궁극적으론 혈세가 낭비되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물품의 종류나 계약방식에 따라서 입찰 자격 조건을 달리하는 등의 개선이 필요합니다."

    조달청은 납품받은 물건에 하자가 있을 경우 낙찰받은 계약자가 책임지면 된다며, 낙찰자가 공급업체 측과 계약하는 건 개인간 거래여서 관여할 수 없다고 설명했습니다.

    MBC뉴스 박종욱입니다.

    (영상취재:정연철 김백승 / 영상편집:김현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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