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앵커 ▶
하루 평균 두 명의 노동자가 일터에서 목숨을 잃고 있습니다.
회사 측 책임이라 해도 벌금 몇백만 원 내는 게 처벌의 전부입니다.
노동자의 안전을 위해 설비를 고치는 비용보다 벌금이 더 적은 겁니다.
이런 말도 안되는 현실을 깨고 기업의 책임을 엄하게 묻는 '중대 재해 기업 처벌법'이 국회에 발의됐지만 논의조차 없습니다.
어느 정당은 노동자보다 기업의 눈치를 더 보고 있다는 얘깁니다.
조희형 기자가 취재했습니다.
◀ 리포트 ▶
강원도 삼척시 삼표시멘트 공장.
지난 5월, 이 곳에서 하청업체 소속 63살 김 모 씨가 컨베이어 벨트에 끼어 숨졌습니다.
멈춰섰던 연료 운반용 컨베이어 벨트가 갑자기 작동하면서, 벨트를 청소하던 김 씨의 몸이 끼어들어갔습니다.
[사고 당시 무전 녹음]
"김00씨가 저 (컨베이어벨트) 안에 들어가 있어요. 지금 난 만지지 못하겠어요. 빨리 와 보세요."
안전사고에 대비해 2인 1조로 컨베이어 벨트를 점검했어야 했지만 그 시각 동료는 100미터 떨어진 곳에 있었습니다.
다른 업무를 해달라는 지원 요청을 받고 자리를 비웠기 때문입니다.
김 씨의 시신은 숨진 지 2시간 만에 발견됐습니다.
노조 측은 원청인 삼표시멘트가 인건비를 아끼려다 벌어진 사고라고 말했습니다.
[이재형/민주노총 삼표시멘트지부장]
"근무하는 인원 한 명씩은 더 늘려야 하는데 돈이 그만큼 더 들어가지 않습니까. 이윤 추구를 위해서 1인 근무를 시키는 거죠."
유족들은 원청인 삼표시멘트에 사과와 책임을 요구했습니다.
하지만 "심심한 위로를 전한다"는 삼표시멘트 대표의 사과문과 합의금을 받기까지, 유족들은 한 달 가까이 장례식까지 미루며 싸워야 했습니다.
[김수찬/사망노동자 故 김 모씨 아들]
"인생이 다 바뀐거에요. 엄마 인생도 바뀌고. 그들은 그렇게 글 쓰고 와서 좀 미안한 표정 짓고 합의 부분에서만 해결되면 끝나는 거니까…"
삼표시멘트 공장에서 이런 사망 사고는 반복돼왔습니다.
이 공장에서는 숨진 김 씨를 포함해 지난 1년 동안 3명의 근로자가 목숨을 잃었습니다.
김 씨가 숨진 지 2달 뒤에는 40대 남성이 컨베이어 벨트를 위에서 용접작업을 하다 아래로 떨어져 숨졌고, 지난해에는 16톤 트럭의 후진을 유도하던 50대 작업자가 차량 아래 깔려 숨졌습니다.
모두 같은 하청업체 소속이었습니다.
크레인 차량 사망사고 뒤 삼표시멘트는 과태료 140만 원을 냈습니다.
단돈 140만원의 과태료를 물고 난 뒤, 이 곳에선 1년도 안돼 2건의 컨베이어 벨트 사망 사고가 잇따라 발생한 겁니다.
3명의 죽음 뒤에야, 노동부는 노동자의 안전을 위협하는 471건의 법 위반사항을 이 공장에서 적발했습니다.
[고용노동부 태백지청]
"그게 일제시대부터 있던 설비에요. 모든 걸 다 완벽하게 안전한 설비로 바꾸기엔 사실은 힘들어요. (회사에서) 계속 꾸준하게 계획을 세워서 (개선하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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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포항의 현대제철.
지난 2월, 이 회사 노동자 31살 공 모씨가 1천500도의 쇳물 위로 떨어졌습니다.
공 씨는 시설 수리를 위해 쇳물 분배기 위에 올라갔다가 밟고 있던 뚜껑이 파손되면서 추락했습니다.
이 뚜껑은, 현장 작업자들이 낡아서 위험하다는 이유로 지난해부터 사 측에 교체를 요구했던, 바로 그 뚜껑이었습니다.
[방성준/금속노조 포항지부 수석부지부장]
"비용이 제가 듣기로는 2천만원 정도 하는데 워낙 (쇳물이) 고열이기 때문에 계속 (구멍이) 넓어져요. 교체를 해줘야하는데 교체가 안된 자리에 이번에 빠지게 된 것이고…"
뜨거운 쇳물 때문에 하반신과 등에 심한 화상을 입은 공 씨는 2주 뒤 숨졌습니다.
결혼식을 한 달 앞 둔 예비신랑이었습니다.
[방성준/금속노조 포항지부 수석부지부장]
"사람들하고 잘 어울리고 활발한 친구였고 형들하고도 관계도 괜찮았었고 갑작스럽게 사고가 나면서…"
현대제철은 "오래된 뚜껑들을 순차적으로 교체하고 있었는데 아직 교체하지 않은 뚜껑에서 사고가 났다"고 해명했습니다.
2천만 원짜리 뚜껑 때문에 31살 예비신랑이 쇳물에 떨어져 죽었습니다.
현대제철은 벌금 6백만원만 냈습니다.
[고용노동부 포항지청]
"사망사고와 사업장 감독한 걸 (처벌할 때) 합치는 거죠. 검찰에서는 약식으로 그렇게 한 것 같습니다."
지난 2015년 현대제철 인천공장에서도 44살 이 모씨가 쇳물 분배기의 쇳물에 빠져 사망했습니다.
그리고 5년 뒤, 포항공장에서도 31살 공 모씨가 쇳물 분배기 안에 떨어져 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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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6년부터 2018년까지 3년 동안 업무 도중 사고로 숨진 노동자는 2천 575명입니다.
매일 2명이 일터에서 사고로 죽고 있는 겁니다.
사고 원인을 보면요.
작업절차를 제대로 지키지 않았거나 방호시설과 작업발판을 제대로 설치하지 않거나 기계가 돌아가는데 점검을 하다 사고가 났습니다.
기본만 지켰다면 막을 수 있는 죽음들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왜, 같은 사고가 반복되는데도 기업들은 안전을 위한 투자에 소홀한 걸까?
처벌의 강도가 약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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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안전보건법 위반으로 검찰에 넘겨진 사건 11만여 건 중, 구속된 사례는 26건, 90%는 아예 재판조차 열리지 않았습니다.
그나마도 재판에 넘겨지면 3분의 2는 벌금형에 그쳤는데, 벌금액도 평균 500만 원이 채 안됐습니다.
[김수찬/사망노동자 故 김 모씨 아들]
"그들은 사실 크게 벌금 안 내잖아요. 제가 듣기로 500만 원 이하. 만약 많은 돈을 (벌금으로) 내야 한다면 안전 대책을 강구하는데 더 많은 돈을 쓰지 않을까."
기업주 본인에 대한 형사처벌은 물론 금전적인 징벌도 터무니없이 약하다 보니 기업 입장에선 노동자의 안전을 위한 지출보다 벌금을 내는 게 더 경제적인 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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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영국에는 기업의 잘못으로 노동자가 숨지면, 최대 수백억의 벌금을 부과하는 '기업 과실치사 및 살인법'이 있습니다.
미국은 산재 사고가 나면 기업주가 천문학적인 손해배상금을 낼 각오를 해야 합니다.
지난 2017년, 고 노회찬 정의당 의원도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을 발의했습니다.
사망 사고의 원인이 회사 측에 있을 경우 위험방지에 책임이 있는 사업주나 경영자에게 3년 이상의 징역과 10억 이하의 벌금을 물리고 징벌적 손해배상도 청구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그런데 이 법안은 논의조차 없이 20대 국회 회기 종료로 자동 폐기됐습니다.
지난 6월, 정의당 강은미 의원이 같은 내용의 법안을 다시 발의했습니다.
하지만 법사위에선 아직까지 단 한 차례도 법안을 논의하지 않았습니다.
[강은미/정의당 (어제, 국회 운영위 국정감사)]
"국회가 정기국회와 국정감사를 하고 있는 동안에 일터로 나섰던 120여명이 넘는 분들이 가족 품으로 돌아오지 못했습니다. 9월 7일 목공 작업 중 추락 사망. 9월 7일 대차에 끼임 사망. 9월 7일 보일러 배관 깔림 사망. 9월 7일 작업 중 급류에 휩쓸려 사망…이들의 죽음에 대해서 우리는 어떻게 해야 됩니까?"
경영계는 반대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습니다.
사업장에서 일어나는 사고의 책임을 사업주에게만 묻는 건 적절치 않고 처벌이 과도해 기업활동을 위축시킨다는 이윱니다.
그러나 같은 작업장에서 비슷한 이유로 노동자들이 계속 죽는다면 안전한 근로환경을 만들지 않은 사업주가 최종 책임을 지는 게 상식입니다.
중대재해기업을 명확히 규정하고 강도 높게 처벌하는 법안이 있어야만 노동자들의 죽음을 멈추고 궁극적으로 생산성도 늘릴 수 있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습니다.
MBC뉴스 조희형입니다.
(영상취재:최인규/영상편집:신재란, 김하은/자료출처:국회 강은미·이수진 의원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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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희형
[집중취재M] 매일 2명씩 죽어 나가는데…벌금만 내면 그만?
[집중취재M] 매일 2명씩 죽어 나가는데…벌금만 내면 그만?
입력
2020-11-05 20:59
|
수정 2020-11-05 2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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