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앵커 ▶
지금도 수많은 전태일들이 죽거나 다치고 있습니다.
그런데 산업재해로 인정받아 보상을 받는 건 여전히 쉽지 않습니다.
심지어 회사 일을 하다 피해를 입었는데도 사측이 일을 시킨 적이 없다고 잡아 떼는 경우도 있다고 합니다.
이재민 기자가 보도합니다.
◀ 리포트 ▶
포장 공사가 한창인 도로.
걷어낸 아스팔트가 한 노동자 앞으로 쌓입니다.
잠시 뒤, 이 노동자는 아스팔트를 나르던 중장비에 깔려 숨졌습니다.
숨진 43살 고정남 씨는 지난해 10월부터 회사에서 트레일러 기사로 일했습니다.
추가 수당도 없이 온갖 잡일을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故 고정남/산업재해 피해자, 지난 4월]
"현장 가면은 막 신호 봐 주고, 맨홀 그려 주고, 차 봐줘야 되고, 다 해야 돼요."
(월급 얼마나 주길래?)
"똑같은데…"
그런데 사고가 나자 업체 측은 '우리 직원이 아니'라며 본인의 과실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이경우/피해자 유족]
"마치 외부인이 와서 결국은 공사를 방해한 것처럼, 결국은 딴 사람인 것처럼 그렇게 포장이…"
그러면서 내놓은 근로계약서.
엉뚱한 업체 이름이 적혔 있고, 고 씨가 찍었다는 도장도 처음 보는 막도장이었습니다.
[중장비 업체 사장]
"다른 회사 차에 깔려 죽은 거예요. 내가 뭐 그런 거 시킨 것 없어요. 우리가 시킨 것 없어요."
계약서 위조 의혹에 대해 검찰 수사가 시작됐고, 노동부도 산재를 인정했습니다.
그래도 회사 측은 '일을 시킨 적이 없다'며 위로금 2천만원으로 책임을 덮으려 했습니다.
[피해자 배우자]
"'왜 이 사람 죽였냐고, 살려내라'고 막 그랬어요. 돈 2천만원 갖고 때우려고요? 그런 돈은 필요 없어요. 한 사람이 죽었는데…"
산재 인정조차 받지 못하고 홀로 싸워야하는 노동자는 여전히 많습니다.
정수기 관리 기사인 45살 서현 씨는 실적 압박에 시달리다 지난해 6월 뇌출혈로 쓰러졌습니다.
중증 장애 판정을 받은 서 씨에게 회사는 가혹했습니다.
직원이 아니라 개인 사업자라며 '나몰라라' 한 건 기본.
1주일에 60시간 넘게 일했지만 근로 시간을 후려치며 혹사가 아니었다고 책임 회피에만 급급했습니다.
[서 현/전직 정수기 관리 기사]
"30시간은 말이 안 돼요. 월, 화, 수, 목, 금, 토 이렇게 했어요. (아침) 8시 반부터 (저녁) 7시까지 다 했어요."
학습지 교사들 역시 개인 사업자로 분류돼 계속 산업 재해 판정의 사각 지대에 놓여있습니다.
과도한 실적 압박에 공황 장애 진단을 받은 20대 여성은 결국 교사의 꿈을 접었습니다.
[전직 학습지 교사]
"기대 실적에 미치지 못하면은 유령 회원을 전부 다 교사가 떠안고 가는 그런 시스템 이었어요. 수당 같은 것도 못받았었고요."
한국 산업 재해율은 유럽 29개 나라 평균보다 낮은 0.5%.하지만 사망률은 단연 1위였습니다.
재해율이 낮은 건 근로자가 죽어야 재해 신고를 하기 때문에 생기는 착시 현상입니다.
의무 가입이 아니다 보니 회사 눈치를 보고, 또 들고 싶어도 들 수 없는 노동자가 넘쳐나는 산재 보험.
[김 훈/생명안전시민넷 공동대표]
"날마다 많은 사람들이 죽고, 다치고, 병들고, 팔 다리가 부러져서 불구가 되고 있습니다. 이윤의 극대화를 추구해 온 오랜 세월의 유산이며, 한국 사회의 뿌리깊은 '야만성'입니다."
대한민국 산업 현장에서는 지금도 하루 평균 300명이 다치고 6명씩 죽어나가고 있습니다.
MBC뉴스 이재민입니다.
(영상 취재: 정인학 남현택 / 영상 편집: 김하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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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데스크
이재민
50년 흘렀지만…죽어도, 다쳐도, 병들어도 '내 탓'
50년 흘렀지만…죽어도, 다쳐도, 병들어도 '내 탓'
입력
2020-11-12 20:08
|
수정 2020-11-12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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