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앵커 ▶
앞서 전해드렸듯이 이른바 '박사방' 운영자 조주빈 등에게 중형이 선고됐죠.
하지만 이번 판결이 이례적일 정도로 그동안 성범죄에 대한 형량은 매우 낮았습니다.
세계 최대 아동 성 착취 영상물 사이트를 운영한 손정우의 형량은 1년 6개월.
반면 미국에서는 이 사이트에서 영상물을 딱 한 번 내려받은 이에게 징역 70개월, 또 성착취물 제작자에게는 징역 6백년이 선고 됐습니다.
우리 법 체계는 성범죄자한테 왜 이렇게 관대한 건지 그 구조적인 이유를 따져 보고 이런 현실을 성범죄 피해자들은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지 직접 들어 봤습니다.
◀ 리포트 ▶
Q. 내가 성폭력 가해자에게 선고한다면?
[성폭력 피해자]
"제가 법관이었으면 40년 정도 나올 것 같아요."
[성폭력 피해자]
"10년 이상은 돼야 되지 않나…"
[성폭력 피해자]
"미국에서 700년이 넘게 나온 걸 봤거든요. 굉장히 저는 부러웠어요."
[성폭력 피해자]
"잃어버린 그 모든 기회들과 노력들을 생각하면 너무 짧아요."
초등학교 5학년부터 9년 동안은 김영서 씨에게 '암흑'과 같은 시간이었습니다.
[김영서/성폭력 피해자]
"저는 9년 동안 친아빠라는 사람에게 성폭력 피해를 입었는데 사춘기를 다 겪는 (시기에) 굉장히 그렇죠. 그때는 검은색으로도 칠할 수 없을 정도의 어떤 검은색이었거든요."
살기 위해 집을 뛰쳐나왔지만, 혼자 살아낸다는 것은 또 다른 고통의 시작이었습니다.
수치심과 자책감도 영서 씨를 힘들게 했습니다.
[김영서/성폭력 피해자]
"성폭력이라는 것에 대한 본인 스스로 느끼는 어떤 수치심과 또 가족을 해체했다는 어떤 자책감. 내가 정말 뭔가 잘못했나. 내가 뭔가… 내가 참았어야 하나."
스스로 "내 잘못이 아니"라고 느끼고, 일상을 회복하기까지 20년 넘는 시간이 걸렸습니다.
그런데 가해자인 아버지에게 내려진 형량은, 7년.
[김영서/성폭력 피해자]
"그때 당시로는 형량이 높은 거라고 했어요. 그런데 그 사람이 (교도소에서) 나왔을 때 저는 아직도 20대고 사회에 정착하기 힘든 상황에서 가해자가 출소하는 걸 맞닥뜨렸었거든요. 굉장히 무서웠죠."
지금은 성폭력 피해 상담을 하며 많은 피해자들을 만나고 있는데, 그들도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다고 전했습니다.
[김영서/성폭력 피해자·상담사]
"가해자에게 내려지는 형량이 겨우 1년, 1년 2개월 이런 식이니까. 과연 내가 입었던 피해에 합당하게 그 사람이 벌을 받았나?"
지난 10년간 성범죄 판결에서 징역형이 선고된 비율은 26.1%.
그 중 67.3%는 1년 이상 6년 미만의 가벼운 형이 선고됐습니다.
최근, 집단 성폭행 혐의를 받은 정준영과 최종훈에 이어 'n번방'에서 아동 성착취물 수천 개를 구매한 20대 남성에 대한 형량을 보면서 "성범죄 처벌이 너무 약하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는데요.
[김영미 변호사]
"성범죄 같은 경우는 강력 범죄에 속하는데 고작 1년, 2년, 3년 이 정도밖에 판결이 선고되지 않는다고 하니 국민의 법감정과 (법원의) 형량 사이에 괴리가 발생할 수밖에 없습니다."
반면 최근 미국 법원은 아동 성 착취물을 제작한 남성에게 징역 600년형을, 남편과 함께 두 딸을 10년 넘게 성폭행한 여성에게 723년 형을 선고했습니다.
어떻게 이런 선고가 가능한 걸까요?
[김영미 변호사]
"법 체계 자체가 달라요. (미국과 영국 등 영미법계에서는) 10개의 죄면 그 10개의 죄를 다 더하기를 하는 거거든요. 우리나라는 가장 중한 죄의 2분의 1까지만 가중하도록 되어 있어요."
형량이 최대 1년인 범죄 3건과 3년인 범죄 2건을 저질렀다고 가정해 단순 비교를 하면, 한국에서는 4.5년, 미국에서는 최대 9년을 받게 되는 겁니다.
우리나라의 법체계를 단시간에 바꾸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합니다.
강력 성범죄가 발생할 때마다 법정형과 양형 기준이 강화되지만 실제 처벌 수위는 그마저도 따라가지 못한다는 것이 문제인데요.
피해자들은 낮은 형량은 피해자가 배제된 재판 과정에서부터 시작된다고 말합니다.
피해자에게 신체적, 정신적으로 큰 고통을 남기는 성폭력.
[김민지/성폭력 피해자]
"살이 거의 20kg 넘게 빠지고 반년 만에. 그러다가 걷지를 못해서 휴학을 하고 집안에서 누워만 있었어요. 그러다가 또 폭식과 폭음을 하게 되고 자아가 완전히 무너진 기분이었어요."
[노규미/성폭력 피해자]
"그때 틀어져 있던 노래를 듣거나 비슷한 덩치의 사람을 보거나 그럴 때 갑자기 오는 것들이 있어요. 그 자리를 뛰쳐나가서 토하고… 안 괜찮아요. 어떻게 괜찮겠어요."
피해자들은 언제 끝날지 모르는 고통을 끌어안고 살아가야 합니다.
하지만 법원은 이에 대한 이해도 부족하고 양형에 반영도 하지 못하고 있다는 겁니다.
[노규미/성폭력 피해자]
"젊은 남성이 한순간 실수를 했다고 해서 매장시킬 수 없다 라는 생각으로 좀 너그러운 구형을 하시는 것을 많이 봤는데 피해를 입은 여성한테는 왜 그런 시선을 주지 않으시는지…"
양형 판단에 반영되는 감경 요소가 피해자에게 불리하게 작용하고 있다는 비판도 나옵니다.
재판부가 가해자의 반성문과 개인 사정 등을 참작해 형량을 낮추는 사례가 자주 있기 때문인데요.
성폭력 피해자이자, 해마다 200회 이상의 성범죄 재판을 모니터링 하는 한 활동가는 이렇게 말합니다.
[연대자D/성폭력 피해자·성폭력 피해 지원 활동가]
"반성문을 어떻게 쓰면 된다, 합의 과정은 어떻게 해야 한다, 혹은 헌혈증을 제출하고 그다음에 봉사활동을 하고 심지어 장기기증 서약서를 내고… 이게 실제로 네 먹혀요. 여전히 먹히고 있습니다."
지난해 선고된 판결문 중 3분의 1에서 ‘반성’을 양형 고려 요소로 삼았는데, 진지한 반성을 어떻게 판단하는지, 그 반성이 왜 피해자가 아닌 재판부를 향해 있는지, 피해자들은 이해할 수 없다고 말합니다.
[김영서/성폭력 피해자·상담사]
"가해자가 미안하다고 머리를 조아리고 진짜 예의를 갖춰서 굽신거려야 되는 건 피해자란 말이에요. 판사가 받은 그 반성문으로 어떻게 그 가해자에 대해서 진정어린 사과를 하고 있다 라는 것을 생각할 수 있는지 이해가 안 되거든요."
피해자들이 원하는 것은 무조건 처벌을 강화해달라는 것이 아닙니다.
죄질에 미치지 못하는 부당한 형벌 대신 정당한 형벌을 선고해달라는 겁니다.
[노규미/성폭력 피해자]
"생존자들에게 그런 건 약간의 희망이 되기도 하거든요. 아, 내가 겪은 일이 작은 일이 아니구나, 저 사람이 나쁜 사람이 맞구나."
[김영서/성폭력 피해자·상담사]
"안전하게 살아갈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을 보장해주는 정도의 형량이라도 제대로 주어졌으면 하는 거죠. 우리에게 되게 중요한 건요, 우리가 살아왔던 일상의 회복이에요. 김영서라는 사람의 삶을 그냥 잘 살고 싶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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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중취재M] "1~6년이 중형이라고요?"…성범죄 피해자들의 눈물
[집중취재M] "1~6년이 중형이라고요?"…성범죄 피해자들의 눈물
입력
2020-11-26 21:01
|
수정 2020-11-26 2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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