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앵커 ▶
얼마 전 롯데마트가 시각장애인들의 눈이 돼주는 안내견의 매장 출입을 거부하면서 논란이 거셌죠.
그런데 이런 일은 시각 장애인들이 외출을 했을 때 마주하는 어려움의 극히 일부분에 불과합니다.
문 밖을 나서는 순간부터 내딛는 한걸음 한걸음이 시각 장애인들에게는 마치 지뢰밭을 지나는 것과 같은, 모험과 도전의 연속이라고 하는데요.
집중취재M 오늘은 한 시각장애인의 외출을 동행 취재했습니다.
◀ 리포트 ▶
시각장애인 조은산 씨와, 3년 전부터 그의 '눈'이 되어주고 있는 안내견 세움입니다.
"가자."
"계단 찾아."
계단이라는 걸 알리기 위해 세움이가 잠깐 멈춰섭니다.
"잘했어."
오늘은 아르바이트를 하는 시각장애인 센터에 가기 위해 길을 나섰는데요.
"여의도역에서 내렸을 때 버스 정류장이 있는 출구하고 제일 가까운 문이 어딘지 하고 (버스정류장) 번호 몇 번인지 미리 좀 찾아봤어요."
지하철은 점자 안내 표지판, 점자 블록 등 편의시설이 비교적 잘 갖춰져 있어 탑승하는 건 어렵지 않았는데요.
안내방송이 잘 안 들릴 때는 다음역이 무슨 역인지, 어느쪽 문으로 내려야 하는지 몰라 당황하곤 합니다.
"따라와."
"오른쪽."
"어? 왼쪽이야? 가자."
그래서 자주 이용하는 노선은 아예 외워버렸습니다.
"방화, 개화산, 김포공항 … 강동, 길동, 굽은다리"
지하철을 이용할 때 가장 어려운 것은 출구 찾기.
은산 씨는 6번 출구로 나가야 하는데, 위치 정보 등이 나오는 음성 유도기를 이용하기 위해 리모컨을 눌러보지만,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소리가 여러 개가 나네."
"여기가 몇 번 출구인지."
"소리가 안 나네요."
"점자 표지도 없는 것 같고. 몰라, 가보자."
"바로 출구로 나와 버리네."
결국 다른 사람에게 물어볼 수밖에 없는데요.
"저기 죄송한데 여기가 몇 번 출구예요?"
"6번 출구."
"감사합니다. 우연히 잘 나왔네."
"밖으로 나올 때 난간을 보고 몇 번 출구인지를 판단할 수 있어야 하잖아요. 근데 점자 표지에 '5호선 여의도역' 형식적으로만 붙여놓는 역들이 되게 많아서…"
진짜 난관은 버스 타기입니다.
"돌아가야 되나?"
"왜 소리가 안 들리지?"
"난감하네."
버스정류장 주위에서 계속 헤매는 은산 씨.
"(음성 안내기가) 없는 것 같아요."
"와, 근데 충격적이다. 여기 여의도인데."
"음성 안내기가 없으면 정류장 자체를 찾을 수가 없어요."
점자블록이 없는 것도 문제.
버스정류장 주변 어디에도 점자블록이 없습니다.
정류장 안쪽에만 설치돼 있어 애를 먹은 겁니다.
버스 알림 앱으로 도착 시간을 확인합니다.
"2분 남았고 이거 놓치면 안 돼요. 다음 버스가 20분 뒤에 온대요."
도착 시간을 알아도 여러 대의 버스가 한꺼번에 올 수 있기 때문에 기사님께 물어보는 것이 가장 확실합니다.
"기사님 혹시 몇 번일까요?"
"153번."
"기사님 몇 번이에요?"
"10번입니다, 10번."
"일일이 물어보기엔 버스가 너무 많이 와."
"곧 와요."
드디어 버스를 탔지만,
"아… (교통카드) 찍는 데가…"
교통카드를 찍는 것도, 자리를 찾아 앉는 것도 쉽지 않습니다.
"개 데리고 탄 건 처음 봤어요. 깜짝 놀랐지. 시각장애인이 개 데리고 타도 되나. 행동은 어떻게 할 건가."
안내견 세움이와 버스를 탈 때면 사람들의 시선이 집중되는 것이 느껴집니다.
노골적으로 거부 반응을 보이는 사람들도 많은데요.
"강아지 입마개를 씌우고 타야지, 이동장에 넣어라, 이런 얘기를 들은 적도 있는데… 어떤 친구는 버스에 사람이 많은 시간도 아니었는데 안내견이랑 서 있었더니 그냥 쌩 지나가버려서 (다음 버스까지) 20~30분을 그냥 기다려야 됐다고…"
길을 걷는 것은 마치 지뢰밭을 지나는 것과 비슷합니다.
점자 블록 위나 바로 옆에 세워진 오토바이, 자전거.
인도 위를 쌩쌩 달리는 전동킥보드나 배달 오토바이들은 시각장애인에게 큰 위협이 됩니다.
"배달 오토바이들이 무단횡단하거나 갑자기 어디서 튀어나올지 모르는 상황들이 되게 많잖아요. 시각장애인들은 몇 배 더 위험하죠."
특히 도로와 보행로의 구분이 명확하지 않은 곳이 가장 위험한데요.
"(PD:왼쪽 거기가 보행로거든요.) 여기 보행로가 따로 있어요? 무슨 의미가 있지 그게 우리한테는?"
이러한 어려움 때문에 장애인 콜택시를 이용하는 시각장애인들이 많지만, 불편하긴 마찬가지라고 말합니다.
[김은성]
"야근하면서 저녁 8시 전에 차량을 불렀는데 집에 12시 넘어서 들어갔어요. 차가 안 잡혀서. (밤에) 시각장애인 여성으로서 보행하기도, 밖에 나가서 콜택시를 타기에도 조금은 두렵고요."
적은 차량 대수, 그리고 시각장애인에 대한 이해와 배려가 없는 점도 지적했습니다.
[남정한/실로암장애인자립생활센터 소장]
"(시각장애인들은) 집 앞에서 타서 사무실 앞 (정확한 곳에서) 내리길 원해요. 그런데 사무실 앞에서 안 내려주고 (엉뚱한 데서 세워주는 경우가 있어요.) 정확한 오리엔테이션을 해주고 내려줘도 헷갈릴 수 있거든요."
[김은성]
"시각장애인에 대한 교육이나 안내보행이나 이런 부분들이 이루어지냐 (장애인택시 기사님께 물어봤었는데) 특별히 교육받지는 않는다고 하시더라고요."
물건을 사고, 친구를 만나고, 또 공부나 일을 하러 가기 위해 외출을 하는 일상적인 일이, 많은 시각장애인들에게는 두렵고 피하고 싶은 일이 돼버렸는데요.
[남정한/실로암장애인자립생활센터 소장]
"한 발자국 딛고 문 앞에 나가면 그 다음부턴 넘어지는 게 일인 거예요. 접질리고, 넘어지고, 다치고. 다치는 거, 넘어지는 걸 사람들이 보는 그 시선들. 내가 나를 인정할 수 없는 상황들(이 힘든 거죠.)"
시각장애인에게 '외출'이란 어떤 의미일까요?
"미니 무한도전을 찍는 것 같아요. 매일매일."
"바둑판이 생각났습니다. 바둑판처럼 틀에 (갇혀서) 조금 자유롭지 않다…"
"독립을 위한, 자립을 위한 가장 큰 첫 번째 발걸음이죠."
시각장애인의 외출이 평범한 일상이 되게 하는 것.
우리 사회가 해야 할 일입니다.
(영상취재:박종현, 최재훈/영상편집:김정은, 강다현/취재구성:김명순/나레이션:김민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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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데스크
김명순
[집중취재M] '위험한 모험'…시각장애인의 외출
[집중취재M] '위험한 모험'…시각장애인의 외출
입력
2020-12-15 20:56
|
수정 2020-12-15 2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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