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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중취재M] "주민등록번호 갖고 싶어요"…'있어도 없는' 아이들

[집중취재M] "주민등록번호 갖고 싶어요"…'있어도 없는' 아이들
입력 2020-12-16 20:54 | 수정 2020-12-16 2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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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앵커 ▶

    학교에 갈 나이가 됐는데도 주민등록 번호가 없어서 학교도 못 가고, 통장이나 휴대폰 개설조차 할 수 없는 아이들이 있습니다.

    엄마 없이 아빠가 홀로 아이를 키우는 이른바 '미혼부 가정'의 아이들인데요.

    엄마가 없기 때문에 출생 신고를 할 수 없고, 그래서 마치 유령처럼 살고 있는 아이들이 많다고 합니다.

    어떻게 이런 일들이 생겨나는지, 어떤 문제점이 있는지 신정연 기자가 집중 취재했습니다.

    ◀ 리포트 ▶

    아빠와 둘이 사는 훈이.

    엄마는 훈이를 낳고 한 달 뒤 사라졌습니다.

    세상에 나온 지 1년이 넘었지만 훈이는 출생신고를 못 해 법적으로 유령이나 다름없습니다.

    왜 그랬을까?

    아빠와 엄마는 혼인신고를 하지 않고 훈이를 낳았습니다.

    부모가 혼인하지 않았을 경우 현행법상 출생신고는 엄마만 할 수 있게 돼 있기 때문입니다.

    [훈이 아빠(미혼부)]
    "주민센터에 가서 아기 출생신고하러 왔다 하니깐 아기 엄마 어디 있느냐고, 아기 엄마 없으면 출생신고 안 돼요 이러더라고요. 빨리 아기 엄마 찾아오라고."

    태어났다는 법적 증거가 없으니 정부의 돌봄서비스를 이용할 수도 없습니다.

    아빠는 식당으로 일하러 갈 때에도 훈이를 안고 나갑니다.

    [훈이 아빠(미혼부)]
    "가게 옆에다가 아기 침대 하나 놔두고 서빙도 하면서 계산대도 보는 일을 좀 했었거든요. 현재 통장 잔고도 떨어지고 경제적인 압박감이 가장 크죠."

    없는 형편에 건강보험 적용도 쉽지 않아 훈이가 아프기라도 하면 가슴이 조여옵니다.

    [훈이 아빠(미혼부)]
    "열꽃이 펴서 병원에 갔는데 피검사 한번 해야 된다 해서 7~8만 원정도 나오더라고요. 다른 애들 같으면 5천 원이면 끝나는데."

    이 때문에 미혼부 혼자서도 출생신고를 할 수 있도록 5년 전 이른바 '사랑이 법'이 생겼습니다.

    '엄마의 이름과 등록기준지, 주민등록번호를 알 수 없는 경우 가정법원의 확인을 받으면' 미혼부도 출생신고를 할 수 있게 한 겁니다.

    하지만 이 법에도 여전히 허점이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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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년에 7살이 되는 형석이.

    법적인 이름도 주민등록번호도 없어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을 다닐 수 없었습니다.

    [형석이 아빠(미혼부)]
    "편법도 써보려 했어요. 어린이집 원장이 불가능하대요. 후원금을 내도 불가능하고. 조그마한 구석에 처박혀 앉아서 만날 저런 생활하고 있는 거 보면 부모 심정은 무너지는 거에요."

    아빠는 사랑이법을 믿고 법원 문을 여러 차례 두드렸습니다.

    친자 확률이 99.9993%라는 유전자 검사 결과도 냈지만 소용없었습니다.

    형석이의 산부인과 출생증명서가 화근이었습니다.

    출생증명서에 적힌 친모 이름과 생년월일 등을 근거로 법원은 친모 이름이나 주민번호를 모르는 경우로 한정된 사랑이법 적용 대상이 아니라고 판결한 것입니다.

    [형석이 아빠(미혼부)]
    "친부 맞는데 법이 어쩔 수가 없다고 법원장이 얘기했어요. (허락)해주고 싶어도 법이 그런 걸 어떡해요 안되는 걸."

    형석이의 존재를 인정받으려면 후견인 선임 청구, 성과 본, 그리고 가족관계등록부 창설 허가 등 길고 긴 4번의 재판에서 국가를 상대로 이겨야 합니다.

    이러다 보니 미혼부의 출생신고 신청 10건 가운데 3건은 법원에서 인정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미혼부 자녀가 출생신고를 못 해 미등록 상태로 살아야 하는 문제의 근본적인 원인은 무엇일까요?

    '아내가 혼인 중 임신한 자녀는 남편의 자녀로 추정'한다는 민법의 '친생자 추정' 규정이 지목됩니다.

    때문에 세상에 나온 아이는 엄마의 혹시 있을지 모를 남편의 자식으로 추정돼서, 미혼부는 자신의 아이가 다른 남자의 친자식이 아니라는 걸 입증해야만 출생신고를 할 수 있는 겁니다.

    하지만 엄마가 연락 두절되거나 협조를 안 하면 아빠가 친자입증을 할 수 있는 방법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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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법의 허점 때문에 출생신고를 못 하는 경우는 또 있습니다.

    올해 5살이 된 수애.

    수애 엄마는 전남편과 이혼한 뒤 수애 아빠를 만나 혼인신고 없이 동거를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24주 5일, 6달 만에 수애를 낳았습니다.

    그런데 민법의 '친생자 추정' 조항은 이혼 일부터 10달, 300일 이내 태어난 아이는 이혼한 남편의 '친생자'로 추정합니다.

    만약 출생신고를 하면 수애는 생물학적으로 아무 관계도 없는 '엄마 전남편의 딸'로 등록됩니다.

    이 때문에 출생신고를 포기한 채 수애는 계속 자라고 있습니다.

    [송창순(미혼부)]
    "아이는 존재하는데 유령취급을 받게끔 만들어놓은 법이에요 이게. 존재는 하지만 나라에서 안 보이는 존재죠. 돌아다니는 유령이잖아요."

    혼인을 전제로 하지 않은 다양한 가족형태가 나타나는 요즘 민법의 '친생추정' 조항은 되레 아이의 권리를 침해하고 있습니다.

    [조경애/한국가정법률상담소 법률구조부장]
    "태어난 아이들은 일단 다 출생등록을 할 수 있게 해주고 친자 관계에 관한 것은 그 이후에 재판 절차에서 어른들이 다투어도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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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N은 '태어난 즉시 신고될 권리'를 기본인권으로 천명하고 있습니다.

    공식적으로 사회에 존재를 알려 의료와 보육, 교육 등에 필요한 기본권을 누릴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섭니다.

    출생 신고가 안 된 아이들은 방치되거나 학대받고 심지어 사고가 나도 드러나지 않습니다.

    지난달 전남 여수의 가정집 냉동고에서 생후 2개월 아기가 시신으로 발견됐습니다.

    2년 전 경북 구미 원룸에서는 20대 아빠와 함께 16개월 아들이 숨진 채 발견됐습니다.

    모두 출생신고가 안 된 아이들이었습니다.

    유엔이 지난 2011년과 2017년 이미 두 차례나 우리나라에 '모든 아동이 차별 없이 출생등록 될 수 있도록 제도를 마련하라'고 권고했지만 개선되지 않고 있습니다.

    [정재훈/서울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혼인신고라는 제도 안에서 성립된 가족을 가족이라고 보는 거죠. 정상가족 이데올로기, 전통적 가족 가치관 여기에 우리가 굉장히 집착하는 상황이고."

    홀로 아이를 키우는 미혼부는 7천7백여명으로, 이들이 출생신고한 자녀는 9천 명이 넘습니다.

    그러나 출생신고가 거부돼 유령처럼 사는 아이들은 몇 명이나 존재하는지 가늠조차 안 됩니다.

    [형준이 아빠(미혼부)]
    "쟤가 어디 가다가 누구한테 납치당해 죽었어요. 찾아낼 근거도 없어요. 우리나라가 살아있는 사람이 아니라고 이 나라가 인정해버렸기 때문에 얘는 죽어도 그냥 아무것도 없고 죽인 사람은 처벌 안 받을 수 있어요. 너무 웃기잖아요."

    MBC뉴스 신정연입니다.

    (영상취재:이상용, 이지호/편집: 김현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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