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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중취재M] 정년까지 일주일…"단 하루라도 돌아가고 싶다"

[집중취재M] 정년까지 일주일…"단 하루라도 돌아가고 싶다"
입력 2020-12-23 20:58 | 수정 2020-12-23 2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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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앵커 ▶

    309일간의 크레인 고공 농성과 희망 버스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한진 중공업의 마지막 해고자 김진숙 씨.

    1986년 해고된 김 씨는 무려 35년째 해고자 신분인 상태인데, 그나마 이달 말이면 정년마저 끝이 납니다.

    이런 상황에서 암이 재발해 투병중인 김씨는 단 하루라도 복직자 신분으로 회사를 당당하게 걸어 나오고 싶다는 소망을 밝혔습니다.

    차주혁 기자가 전해 드리겠습니다.

    ◀ 리포트 ▶

    [김진숙/한진중공업 해고자 (2011년 크레인 농성 당시)]
    "안녕하세요. 여기는 한진중공업 85호 크레인입니다."

    지난 2011년, 1월.

    지상에서 35미터, 차가운 크레인 위에서 이어진 김진숙 씨의 고공농성.

    309일이 지나고 97명의 동료 정리해고자는 복직됐습니다.

    당시 웃으며 내려왔던 김진숙은 그러나 정년이 일주일 남은 오늘, 여전히 해고자 신분입니다.

    [김진숙/한진중공업 해고자 (지난 7월)]
    "이게 38년 전 저의 사원증입니다. 여러 선배님들 앞에 죄송스럽습니다만, 어제가 제 환갑이었습니다."

    21살이던 1981년, 당시 국내 최초의 여성 용접공으로 입사했고, 고민 많던 입사 5년차에 노조 대의원이 됐습니다.

    [김진숙/한진중공업 해고자]
    "대뜸 (동료) 아저씨들 얘기가 '니 빨갱이가, 니 간첩이제?'. (노조 얘기) 다시는 입 밖에 내지 마라, 쥐도 새도 모르게 잡혀간다."

    정말 그랬습니다.

    어용노조를 비판하는 유인물을 돌렸더니, 쥐도 새로 모르게 경찰 대공분실까지 끌려갔고 김 씨는 얼마 뒤 해고됐습니다.

    차가워진 외부의 시선은 더 아팠습니다.

    [김진숙/한진중공업 해고자]
    "해고되자마자 외부 세력이 되는 거예요. 저도 그랬거든요. 해고되자마자 맨 처음 들었던 게 외부 세력이라는 말이었으니까요. 그런 말들이 아프죠."

    복직 투쟁이, 노동 운동으로 변하는 동안 수배 생활만 5년, 감방에도 2번 갇혀야했습니다.

    그 사이 남아있던 동료들은 하나둘 세상을 등졌습니다.

    노조위원장을 하다 구속된 입사 동기, 박창수 씨는 수감 중에 의문사했고, 정리 해고에 항의하며 85호 크레인에 올랐던 김주익, 그리고 보름 뒤에는 또다른 동료까지 조선소 안에서 목숨을 끊었습니다.

    [김진숙/한진중공업 해고자 (2003년 김주익·곽재규 합동장례식 추모사)]
    "1970년에 죽은 전태일의 유서와 2003년 김주익의 유서가 같은 나라…우리가 뭘 그렇게 죽을죄를 지었습니까."

    합동 장례식과 함께, 결국 회사는 해고자 복직을 발표합니다.

    단, 김진숙은 제외한다. 그게 조건이었습니다.

    사측은 그러면서 몇년 뒤인 2008년, 매달 2백만원의 생계비를 주겠다며 제안하기도 했습니다.

    복직이란 말은 끝내 없었습니다.

    [김진숙/한진중공업 해고자]
    "그런 일을 겪은 사람이 월 200만 원을 준다고 그 돈 이렇게 받고 그냥 '저 복직 안 하겠습니다'…이럴 수는 없는 거잖아요. 저는 제일 큰 게 명예 회복이 제일 컸습니다."

    2011년, 또다시 한진중공업엔 정리해고의 광풍이 몰아쳤습니다.

    이때 김씨는 자신의 복직투쟁을 뒤로 미룬채 동료 김주익이 생을 마쳤던 그곳, 85호 크레인에 오릅니다.

    [김진숙/한진중공업 해고자 (2011년 크레인 농성 당시)"
    "여러분, 우리 조합원들 한번 봐주십시오. 평생 일한 직장에서 아무 잘못 없이 쫓겨난 사람들입니다."

    이러다 또 한번의 장례를 치를까, 많은 사람들이 달려왔고 김진숙을 말렸습니다.

    [전태삼/故 전태일 열사 동생]
    "(어머니께서) "진숙아, 진숙아, 내려와. 네가 왜 거기 올라가서…너마저 잃을 수는 없지 않으냐""

    이렇게 시작된 전국의 희망버스 행렬은 물대포를 맞아가며 외로운 투쟁에 힘을 보탰습니다.

    결국 309일 만에 회사는 정리해고자 전원의 복직을 약속했지만, 이번에도 김진숙 씨의 이름만은 빠졌습니다.

    대신 회사가 한 일은 85호 크레인 철거였습니다.

    [김진숙/한진중공업 해고자]
    "85호 크레인이 꼴도 보기 싫은 거죠. 무당한테 날짜를 받아서 그걸 철거를 했데요. 그런 과정들을 지켜보면서 이 회사는 달라지지 않겠구나…"

    해고는 부당하다며 민주화보상위원회가 2009년과 얼마전인 올해 9월, 2차례나 김 씨의 복직을 권고했고, 국회와 부산시의회까지 나섰지만 회사는 그대로였습니다.

    오늘 열린 정년퇴임식에도 끝끝내 김진숙의 자리는 없었습니다.

    [박태준/한진중공업 동료]
    "'빚을 갚아야겠다, 은혜를 입었다' 보다 그냥 아픕니다. 부당 해고당한 회사를 35년 동안 벗어나지 못하고, 35년을 맴돈 사람입니다."

    5년 간의 직장 생활, 그 시간이 7번이나 반복된 35년의 복직 투쟁.

    목숨을 끊은 동료는 한 명 더 늘었고, 살피지 못한 몸 속에선 암세포가 자라 내년 3월, 세 번째 수술을 앞두고 있습니다.

    그래도 당장은 복직이 더 간절합니다.

    [김진숙/한진중공업 해고자]
    "연세가 80이 넘으신 분들이, 30년, 40년이 지나서 그 간첩 혐의를 평생을 쓰고 살았던 분들이 그 연세에 왜 재심 신청을 하시겠습니까. 저는 그게 너무너무 절박하게 이해가 되거든요. 간첩으로 죽을 순 없으니까. 그리고 저도 해고자로 죽을 순 없으니까요."

    단 하루를 복직했다가 나오더라도 35년 전 해고는 불법이었다는 것을 확인받고 싶은 마음.

    정당한 복직이 아니라, 재입사 방식으로 하루 출근하라는 회사의 제안을 거절할 수 밖에 없는 이유는, 한진중공업에서 죽어나간 4명의 동료들 때문입니다.

    [김진숙/한진중공업 해고자]
    "김주익도 크레인 위에서 죽었죠. (최)강서는 정리해고된 채로 죽은 거란 말이에요. (제가 복직하면) 박창수, 김주익, 곽재규, 최강서가 같이 들어가는 겁니다."

    하지만 김진숙이 그토록 돌아가고 싶어하는 한진중공업은 현재 매각 절차가 진행 중이고, 노동자들은 다시 한번 구조조정의 벼랑 끝에 서야 할지도 모릅니다.

    MBC뉴스 차주혁입니다.

    (영상취재:이준하·노성은/영상편집:신재란/영상제공:희망버스기획단, 영상창작단 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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