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앵커 ▶
2010년 한명숙 총리의 불법 자금 수수 사건의 핵심증인이었던 고 한만호 한신건영 대표가 돈을 건냈다는 자신의 진술이 검찰의 회유와 협박성 발언에 따른 것이었다고 증언한 사실이 드러났습니다.
한 대표의 옥중 비망록을, 탐사전문 매체 뉴스타파와 MBC가 공동으로 취재했습니다.
홍의표 기자입니다.
◀ 리포트 ▶
'수인번호 3382 한만호'.
다른 사건으로 구속 수감돼 있던 한만호 대표는 2010년 3월30일 경남 통영교도소에서 갑자기 서울구치소로 이감됩니다.
그리고 4월 1일, 서울중앙지검 특수부에 불려갑니다.
서울시장 선거를 두 달 정도 앞둔 시기.
한 대표는 어느 정치인의 이름을 들었다고 합니다.
당시 야당 후보로 서울시장 선거에 도전했던 한명숙 전 총리였습니다.
[한만호 비망록 21쪽/대독]
"수사관님과 검사님이 '절대 불이익이 되지 않게 하겠다. 한 총리에 대해서 성실하게 사실대로 답변해달라. 선택해라, 협조해서 도움을 받을 것인지 아니면 힘들게 해서 어려워지시든지…"
"하늘이 무너지는 공포감", 한 대표가 쓴 그날의 기억입니다.
그는 결국 출소 뒤 사업 재기에 도움이 될 거라는 기대에 검찰에 협조하기로 마음 먹었다고 합니다.
[한만호 비망록 21쪽]
"돌아와서 밤을 꼬박 새웠다. 추가 기소되면 부모님 아이들이 버틴다고 될 일이 아니다. 제 자신에게 합리화했다."
9억을 3번에 걸쳐 3억씩, 한 전 총리에게 현금과 수표, 달러를 섞어 전달했다는 검찰의 기소 내용.
한 대표는 검찰이 조서를 주고 외우게 한 뒤 시험까지 치며 만들어냈다는 기록을 남겼습니다.
[비망록 77쪽]
"방에서 운동장에서 시험준비하느라 혼자 중얼중얼대서 다른 수감자들이 이상한 사람으로 쳐다봤다. '구치소에서 공부하라' 하며 조서에 답변 내용 매주 불러서 '시험본다' 테스트 했다."
잘 외우지 못하자, 돈을 전달할 때 한 전 총리와 통화한 횟수를 임의로 고치기도 했다고 썼습니다.
[비망록 70쪽]
"매번 3번씩 433으로 스토리 만들었다가 나중에 332로 했다. '소동이 되니 그냥 333으로 하자' 합의하고 진술과 연습했다. 종종 자금제공 순서가 바뀌고 해서 검사님이나 수사관님들이 당황한 적이 몇 번 있었다."
검찰의 입맛대로 잘하면 특식이 제공됐는데, 한 대표는 심한 모멸감을 느꼈다고 털어놨습니다.
[비망록 139쪽, 1086쪽]
"그래도 20년 넘게 CEO한 사람을 마치 저능아 취급했다. 그 모멸감은 죽어서도 잊지 않을 것이다. 한만호는 없어지고 오로지 검찰의 안내대로 따르는 강아지가 되었고…"
그런데 2010년 12월 한 전 총리의 두 번째 재판 날, 한만호 대표는 자신의 진술을 뒤집기로 결심합니다.
검찰 조사 때 인정했던 '불법 정치자금 공여'는 없었다고 판사 앞에서 진술한 겁니다.
사건이 지나치게 조작되고, 검찰이 자신의 진술을 언론에 흘려 서울시장 선거에 개입하려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두려움과 죄책감을 느꼈다는 이유였습니다.
[비망록 1111쪽/142쪽]
"수사관에게 '노무현 대통령도 저래서 자살한 것으로 알고있는데 한 총리님도 이러다 그렇게 되시는 것 아닐까요? 정말 걱정됩니다'(고 물었다.) 얼마나 엄청난 범죄를 날조한 것인지에 살아있음이 더 고통스러웠다."
MBC뉴스 홍의표입니다.
뉴스투데이
홍의표
"'433·332·333' 외워서 진술…검찰의 강아지였다"
"'433·332·333' 외워서 진술…검찰의 강아지였다"
입력
2020-05-15 06:41
|
수정 2020-05-15 06: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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