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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재 인정까지 6년…'죽음의 방' 반도체 공장

산재 인정까지 6년…'죽음의 방' 반도체 공장
입력 2020-06-19 06:44 | 수정 2020-06-19 06: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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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앵커 ▶

    반도체 관련 부품 업체에서 근무하다가 희귀병에 걸려숨진 노동자에 대해 의료적 인과관계가 아주 명확하지 않더라도 산업재해를 인정해야 한다는 법원의 판결이 나왔습니다.

    왜 병에 걸렸는지 입증 책임을 모두 피해자에게 돌려서는 안된다며 판결의 경향이 달라지고 있는 건데요.

    김정인 기자가 취재했습니다.

    ◀ 리포트 ▶

    49살 김모 씨는 2011년 경기도 파주의 한 반도체 부품 제조업체에 취업했습니다.

    어찌된 일인지 김 씨는 자주 병석에 누웠고, 입사 3년 반이 지나선 병 진단까지 받았습니다.

    '미만성 거대B세포 림프종', 몸 어디서 탈이 난건지 짐작조차 어려운 질환이었습니다.

    병명을 안 지 한 달도 안 돼 숨진 김 씨, 아내는 억장이 무너지면서도 궁금했습니다.

    입사 전엔 반도체 업종 근처에도 안 가 봤고 술담배도 안 했던 남편인데, 왜 희한한 병에 걸렸는 지 알기 위해 산업재해 판정을 신청했습니다.

    그런데 근로복지공단 측은 '남편이 왜 죽었냐'고 묻는 아내에게 오히려 사망 원인을 찾아오라고 했습니다.

    [조승규 노무사]
    "포름알데히드에 노출된 것은 맞는데 그게 왜 림프종의 원인이 됐는가, 그걸 밝혀오라고 근로복지공단에서 얘기를 했었고... 사실 일반인은 물론이고 과학자들도 아무리 전문가라도 밝히기 굉장히 어려운 부분이거든요."

    공단은 1년 반이 지나 '포름알데히드와 병의 역학적 근거가 부족하다'며 '산재가 아니'라고 일축했습니다.

    하지만 법원은 반도체 공장의 이른바 '클린룸'에 주목했습니다.

    밀폐된 공간 특성상 김 씨가 근처 작업대에서 발생한 유해물질에도 노출됐을 가능성이 높다고 본 겁니다.

    티끌 하나 없을 것 같은 '클린룸'.

    온갖 화학 물질들이 떠다니지만 환기마저 잘 안 돼, 숱한 노동자들이 시름시름 앓다 숨져 간 '죽음의 방'입니다.

    어떤 화학 물질들이 쓰이는지, 이들이 어떤 반응을 일으켜 유독 물질이 생성되는 지, 노동자들은 알 도리가 없습니다.

    그런데도 문제가 생기면 당국은 노동자들에게 피해를 증명하라고 버텼습니다.

    지난 2007년 삼성전자 공장에서 일하다 숨진 황유미 씨 등 반도체 관련 작업장의 숱한 피해자들도 바로 이같은 '입증 책임' 앞에 좌절하곤 했습니다.

    김 씨의 아내 역시 법정에서 억울함을 토로했습니다.

    "남편이 근무했던 장소에 가고자 했으나 정문에서 막았고 아무도 만나주지 않았습니다. 회사에서 산재를 인정해주면 회사에 불이익이 생기기 때문에 산재처리를 못해준다고 했습니다.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습니다..."

    법원은 국가기관이 피해자들에게 의료적인 증명을 엄격히 요구하는 관행을 질타하며 김 씨의 산업재해를 인정했습니다.

    [판결문 中/서울행정법원 (대독)]
    "사업장에서 발생한 유해물질에 지속적으로 노출되어 발병했고, 병의 악화로 인해 사망에 이른 것으로 평가할 수 있어 김 씨의 사망과 업무 사이에 그 인과관계가 있다고 볼 수 있다"

    법원의 전향적 판결이 나오기 시작했지만, 기업과 당국은 여전히 산재 사고의 입증 책임을 피해자 측에 떠넘기고 있습니다.

    김 씨의 아내가 이 판결을 받아내는 데도 무려 6년이 걸렸습니다.

    MBC뉴스 김정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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