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앵커 ▶
소방관 10명 중 4명이 참혹한 사건·사고 현장에서 일하면서 외상 후 스트레스 등 각종 정신질환에 시달리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법원이 참혹한 현장에 수시로 투입돼 마음의 병을 얻고 극단적 선택을 한 구급대원에 대해 순직을 인정했습니다.
조명아 기자입니다.
◀ 리포트 ▶
23살의 젊은 나이부터 20년 넘게 소방관으로 일해 온 A 씨.
화재현장에 투입됐다가 12년 가까이는 구급대원으로 일한 A씨를 힘들게 하는 건, 노동 강도 보다 출동할 때마다 마주쳐야 할 참혹한 현장이었습니다.
심각한 상처를 입은 응급 환자들과 훼손되고 부패한 시신들을 보며 A 씨는 수면장애와 강박증에 시달리기 시작했습니다.
[A 씨/음성 대독]
"수습했던 시신이 자꾸 눈에 떠오릅니다. 숨이 막혀 죽을 것 같고 술 없이는 잠을 잘 수가 없어요."
더욱이 A 씨는 다른 구급대원에 비해 3배 가까이 많이 참혹한 현장에 노출됐습니다.
공황장애 진단을 받으면서도 구급 업무에 투입됐던 A 씨는 잠시 해당 업무를 떠났다가 응급구조 자격증이 있다는 이유로 반년 만에 복귀했습니다.
치료받는 사실조차 직장에 숨기며 근근이 버티던 A 씨는 구급대원으로 복귀한 지 2달 만에 극단적 선택을 했습니다.
[천지선 변호사/A 씨측 대리인]
"(구급 업무에 복귀하고) 상당한 절망감을 느끼셨던 것으로 추정돼요. 그래서 벗어날 수가 없다는 식으로 (아내에게) 진술하셨던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서울행정법원은 "구급 업무로 복귀해 깊은 절망감에 빠졌고 비관적 상태가 지속되면서 합리적 판단을 기대할 수 없을 정도에 이른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습니다.
그러면서 "극심한 스트레스와 이로 인한 정신질환으로 심신의 고통을 받다가 사망에 이르렀다며 공무와의 인과관계가 인정된다"고 판결했습니다.
5년 전 A 씨의 죽음을 다시 떠올리는 게 힘들다며 유족 측은 인터뷰 대신 변호인을 통해 입장을 전해왔습니다.
[천지선 변호사/A 씨측 대리인]
"(순직이 인정되자) 나라에서 '힘들게 일했다, 성실히 일했다'고 인정해준 것 같아서 아이들 보기에 부끄럽지 않고 명예회복을 했다고 (아내는) 굉장히 기뻐하셨습니다."
극심한 스트레스와 심적 고통 속에 있는 수많은 소방관들이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다는 낙인을 우려해 자칫 치료조차 못 받고 있는 건 아닌지 실태 점검이 필요해 보입니다.
MBC뉴스 조명아입니다.
뉴스투데이
조명아
참혹한 사고현장의 고통…소송 거쳐 '순직' 인정
참혹한 사고현장의 고통…소송 거쳐 '순직' 인정
입력
2020-06-29 06:40
|
수정 2020-06-29 06:43
당신의 의견을 남겨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