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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년간의 '외침'…전태일이 꿈꾸던 세상은?

50년간의 '외침'…전태일이 꿈꾸던 세상은?
입력 2020-11-13 06:38 | 수정 2020-11-13 0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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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앵커 ▶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살인적인 노동으로 생명이 시들어가는 노동자들의 현실에 작은 숨구멍이라고 내보려고 목숨을 던진 전태일 열사.

    오늘은 그가 숨진 지 50년 되는 날입니다.

    그때의 전태일과 지금의 전태일들.

    먼저 조희형 기자의 보도 보시겠습니다.

    ◀ 리포트 ▶

    1970년 11월 13일 오후 1시 반.

    노동자 전태일은 근로기준법 책을 들고 나와 외쳤습니다.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
    '내 죽음을 헛되이 말라!'

    그리고 자신의 몸에 불을 붙여 그 자리에서 산화했습니다.

    스물두살이었습니다.

    [김영문/전태일 친구]
    "이 자리에요, 이 자리. 저기에서 이리로 뛰어 나온 거예요. 불이 얼마나 세게 타올랐겠어요. 옷을, 얼굴을 다 그슬리고 하니까…"

    평화시장 봉제공장에서 소녀 견습공인, '시다'들은 아침 8시부터 밤 11시까지 재봉틀을 돌렸습니다.

    창문없는 다락방에서 일하고 받는 하루 일당은 70원.

    [이숙희/당시 평화시장 노동자]
    "타이밍(각성제)을 먹기도 하고 그러면서 일을 했죠. 졸다가 이렇게 손을 자르는 경우도 있어요."

    무수한 노동자들이 폐병과 관절염, 위장병으로 죽거나 쓰러졌습니다.

    당시에도 엄연히 근로기준법은 있었습니다.

    일주일에 최대 60시간만 일해야 하고 1회 이상의 유급휴일이 보장돼야 한다는 내용이지만 아무도 지키지 않았습니다.

    전태일은 허울뿐인 근로기준법을 그 자신의 몸과 함께 불에 태웠습니다.

    [이숙희/당시 평화시장 노동자]
    "(전태일이 분신하자) 공장장이나 사장들이 '어떤 깡패가 일하기 싫으니까 자살했어' 이렇게 얘기를 했어요."

    그의 분신은 노동자들을 깨웠습니다.

    2주 뒤 결성된 청계피복노조엔 9천명의 조합원이 밀려들어왔습니다.

    [신순애/당시 평화시장 노동자]
    "옆에서 각혈해서 쓰러져도 나는 돈 벌어야 되니까 또 미싱(재봉틀)하고 막 이랬거든요. 그랬는데 (노조에 가입하니) 동지가 보이고, 친구가 보이고…"

    79년 YH 여성노동자들이 들고 일어났고, 87년 노동자 대투쟁, 이어서 민주적 노동조합들이 들어섰습니다.

    그 시작엔 전태일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다시, 구의역 김군과 김용균, 택배노동자들처럼 지금의 '태일이들'도 여전히 많습니다.

    전태일 열사 50주기를 맞아 문재인 대통령은 노동계 인사들 중엔 처음으로 전태일에게 국민훈장 무궁화장을 추서했습니다.

    MBC뉴스 조희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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