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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중취재M] 돈 안 주고 기술 뺏고…대기업 횡포 맞섰다 파산 위기

[집중취재M] 돈 안 주고 기술 뺏고…대기업 횡포 맞섰다 파산 위기
입력 2021-01-18 20:53 | 수정 2021-01-19 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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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앵커 ▶

    대기업이 중소기업에 일을 시키곤 돈을 제대로 주지 않거나, 기술까지 빼앗는 대기업 '갑질' 문제,

    문제가 생기면 장기간의 소송전으로 몰리면서 중소기업은 고사직전에 이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으로 비유되는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분쟁, 근절되지 않는 이유가 뭔지 조윤정 기자가 집중 취재했습니다.

    ◀ 리포트 ▶

    현대건설이 경상남도로부터 발주 받아 건설한 한 도로.

    중소건설사인 동림종합건설은 지난 2013년,이 도로 공사에 하도급 업체로 참여했습니다.

    도로에 흙을 깔고 배수 구조물을 설치하고 다리도 2곳 만드는 일이었습니다.

    다른 업체가 하다 그만둔 공사를 남은 작업만 하기로 계약한 건데, 막상 현장에 가보니 문제가 있었습니다.

    짓고 잇던 다리 구조물의 높이와 폭이 설계와 달라 뜯어내고 다시 공사를 해야 할 상황이었던 겁니다.

    [권태수/동림종합건설 회장]
    "높이가 안 맞고 해서 자재가 제작이 잘못되니까 이중으로 제작에 대한 오차를 또 수정해야 하는거에요. 계약한 공정은 하지도 못하고, 돈은 돈대로 다 들어가니까."

    추가 공사가 필요하니 계약서를 다시 쓰자고 했지만, 현대건설은 우선 공사부터 하라고 했다고 합니다.

    [권태수/동림종합건설 회장]
    "(계약서를) 변경해주겠다 작업을 해라. 투입비(들어간 돈) 정리 해 주겠다. 시간도 없고, 원청에서 돈을 준다니까, 일 하는 사람으로서는 할 수 밖에 없는 거죠."

    기존 공사비만으로는 감당이 안돼 임금체불 문제까지 발생하면서 동림건설은 결국 3년 만에 공사를 중단했습니다.

    못받은 공사비가 35억원이라는 게 동림건설의 설명인데,

    그런데도 현대건설은 추가 공사를 시킨 적이 없다며 계약을 해지하고, 오히려 동림건설을 상대로 소송을 냈습니다.

    공사 대금으로 210억 원을 지급했는데, 진행된 공사는 138억 원 수준으로, 72억 원을 떼먹었다는 겁니다.

    사기 혐의로 형사 고소까지 했습니다.

    [조중호/동림건설 대표이사]
    "추가 공사 변경 계약을 안 해줬으니까, 서류상으로 없어요. 너희가 다 책임지고 한다고 하지 않았냐 이런 식으로 몰면서‥"

    5년 간 이어진 소송에서 동림건설은 민형사를 모두 이겼습니다.

    사기 혐의는 무혐의 처분을 받았고, 공사비에 대해서도 현대건설이 동림건설에 13억원을 줘야 한다는 대법원 확정판결을 지난달 받았습니다.

    하지만 남은 건 파산 직전의 회사뿐입니다.

    소송과정에서 현대건설은 회사와 임직원을 상대로 70억 원대 가압류를 걸었습니다.

    모든 금융거래가 중지됐고, 새 사업을 한 건도 수주하지 못하면서 5년 동안 직원들 월급도 못줬습니다.

    [조중호/동림건설 대표이사]
    "가정은 가정대로 피폐해지고, 수입이 없으니까 꿔서 살아야지. 대기업이 아주 말려죽이려는 수작이거든요."

    40여 명 직원들이 거의 다 떠나면서 기술인력 기준을 못 맞춰 작년엔 건설 면허마저 정지됐습니다.

    사무실 캐비넷엔 소송 서류들만 한가득입니다.

    [권태수/동림종합건설 회장]
    "아무리 바위를 바늘로 찔러도 피가 안 나온다. 너네들은 이게 전부지만 그 사람들은 이게 한 쪽의 깃털만큼 안 되니까 싸우지 마라 그러더라고. 안 싸우면 어떻게 합니까. 평생 이 빚을 안고 가야합니다."

    공정거래위원회에도 신고했지만, 추가공사 계약서를 발급하지 않았다며 경고 처분을 내린 게 전부.

    공사 대금 안 준건 서로 입장차로 확인할 수 없다며 판단을 미뤘고, 법원에서 이긴 지금은 신고하려고 해도 시효 3년이 지나서 불가능합니다.

    동림건설이 손해배상 소송을 준비중인 가운데, 현대건설은 법원 판결을 받아들인다면서도 보상 문제 등에 대해서는 할 말이 없다고 밝혔습니다.

    이처럼 불공정 행위에도 중소기업이 공정위 도움을 받기 쉽지 않지만, 막상 공정위와 법원이 중소기업 손을 들어줘도 대기업은 아랑곳 않고 소송전을 이어가기도 합니다.

    현대중공업이 지난 2000년 처음으로 국산화한 선박용 발전 엔진, '힘센 엔진'입니다.

    이 엔진의 핵심 부품인 피스톤은 삼영기계가 만들어 공급했습니다.

    1975년 설립된 삼영기계는 세계 3대 피스톤 업체로, 현대중공업과 20년 넘게 거래하면서 감사패도 여러 차례 받았습니다.

    [한국현/삼영기계 대표]
    "(회장님이) 평생을 현대중공을 도와주는 일이 곧 조선산업이 세계적으로 1위 하는데 기여하는거와 마찬가지라고 생각하고서 (일을 해왔습니다.)"

    그런데, 현대중공업은 지난 2012년부터 불량 등을 이유로 제작 공정이 담겨 있는 품질 관리서 등 기술관련 자료를 달라고 계속 요구했습니다.

    보내지 않으면 납품이 취소될 수 있다는 압박에 삼영기계는 결국 자료를 넘길 수 밖에 없었습니다.

    현대중공업은 이 기술 자료를 삼영기계에 알리지도 않고, 다른 업체에 넘겨 피스톤을 생산하게 했습니다.

    그리고는 단가를 깎고, 발주 물량을 줄이더니 결국은 삼영기계와의 거래를 끊었습니다.

    가장 큰 고객사가 발주를 끊으면서 4백억 원(2014년)이 넘던 삼영기계 매출은 3분의 1수준으로(130억 원, 2017년)으로 곤두박질 쳤습니다.

    [한국현/ 삼영기계 대표]
    "현대중공업 입장에서는 기술 하나 가져간건데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저희는 거의 전부를 빼앗긴거나 다름 없다고‥"

    공정위가 기술 유용을 인정해 역대 최대 과징금 9억7천만원을 부과했지만, 현대중공업은 불복하고 공정위를 상대로 행정소송을 제기했습니다.

    [문종숙/공정위 기술유용감시팀장(지난해 7월)]
    "굉장히 강한 겁박을 했고, 이 자료가 왜 요구되었는지도 모른 채로 줬고,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그 자료가 제3의 업체로 넘어갔고‥"

    이 뿐만이 아닙니다.

    삼영기계에 납품대금을 안 준 것과 부품단가를 부당하게 깎은 것에 대해 공정위와 법원이 과징금과 배상 판결을 내렸지만, 현대중공업은 모두 소송으로 맞섰습니다.

    [한국현/삼영기계 대표]
    "시간을 끌어서 고사를 시키려는 전략이지 않을까‥절대로 저희 쪽으로 돈이 넘어오지 않도록. 도산되면 자연스럽게 이 문제는 덮이기 때문에‥"

    현대중공업의 기술 탈취 문제는 국회에서도 3년 연속 다뤄졌지만, 현대중공업은 오히려 자신들이 피해자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김한정 의원/2020년 국정감사]
    "(삼영기계가) 법적 기관 및 정치권을 속이면서까지 중소기업 약자 코스프레 함으로써 현대중공업을 전방위적으로 압박하고 있다. 사장님 이것 보셨습니까? 이거 누가 쓴 겁니까?"

    현대중공업은 공정위와 법원 판단을 존중하지만, 본사 입장이 충분히 반영되지 않아 추가자료 제출 등을 통해 상급심 판결을 받겠다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대기업들이 중소기업과의 분쟁을 합의 대신 소송으로 끌고 가는 건 장기간 소송을 버틸 수 있는 중소기업이 많지 않은데다, 설혹 지더라도 합의를 하는 것 보다 이익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의 특허 손해배상액 중앙값은 6천만 원으로, 미국의 65억 7천만 원의 100분의 1 수준도 안 됩니다.

    기술탈취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제도가 지난 2012년 도입됐지만 아직 적용받은 경우도 없습니다.

    [한국현/삼영기계 대표]
    "과징금 대비 탈취해서 얻어낸 그 기술의 가치랑 비교를 해보면 비교도 안 되게 기술탈취한게 더 이득이거든요."

    실제로 중소기업들은 불공정 거래로 피해를 받은 경우

    징벌적 손해 배상 비율을 높이고,

    공정위·법원 사건처리 기간을 단축하는 게 가장 필요한 걸로 나타났습니다.

    [양용현/KDI 연구위원]
    "신고를 하는 순간 하도급 거래관계가 끊길 수 있다는 그런 불안감이 있고, 법원에서 입증하는데도 상당히 어려움이 있다는 것. (징벌적 손해배상이) 현재 3배로 부족하다고 (생각합니다.)"

    국내 중소제조업체 10곳 중 4곳은 매출의 80%를 대기업 납품에 의존하고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부당한 요구에 저항하기가 쉽지 않고, 이는 다시 대기업 의존도를 높이는 악순환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김남주 변호사]
    "우리 중소기업이 (대기업의) 종속적인 체제에 있다 보니까 기술 투자도 잘 안 해요. 왜냐면 딱 살아남을 수 있게 (평균적으로) 3% 정도 밖에 이익률을 안 주거든요, 대기업이."

    공정거래위원회는 이와 관련해 현재 피해액의 3배인 기술유용행위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제를 10배로 확대하는 등 대기업 불공정 행위를 근절할 수 있는 제도 마련에 나설 계획이라고 밝혔습니다.

    MBC뉴스 조윤정입니다.

    (영상취재: 강재훈·강건구(경남) / 편집: 김재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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