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자 ▶
바로 간다, 인권사회팀 이재민 기자입니다.
서울 강남 한복판, 아파트 단지 땅 속 깊은 곳에서 정체불명의 검은 기름이 흘러나오고 있습니다.
지하로 내려가면 기름 냄새가 진동하고, 수돗물과 함께 섞여 나오기도 합니다.
유래를 찾으려면 강남 개발이 한창이던 4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는 전설 같은 말까지 들립니다.
도대체 어디서 솟아나오고 있는 건지, 바로 추적해보겠습니다.
한강과 고층 빌딩으로 둘러싸인 서울 강남구 청담동.
재건축 공사에 들어간 아파트 단지 앞에 40년 넘은 4층짜리 상가 건물이 외롭게 서있습니다.
컴컴한 지하로 내려가자,
"아유"
역한 기름 냄새가 마스크를 뚫고 들어옵니다.
천을 들춰 보니 검은 액체가 흥건합니다.
[한의택/상가 관리사무소 직원]
"지금도 마르지 않은 상태로 (기름이) 고여 있습니다. 깊은 물에서 이렇게 막 솟구치듯이, 샘솟듯이…"
영하 10도 강추위가 들이닥친 지난 13일 아침.
갑자기 독한 냄새가 퍼졌다고 합니다.
[상인]
"'머리가 아프다' 이런 사람도 있었고…"
순찰을 돌던 관리사무소 직원은 물이 흐르는 소리에 지하실로 향했습니다.
수도관 동파로 콸콸 쏟아져 나오던 물.
그런데 손전등을 비추자, 군데 군데 시커먼 기름이 둥둥 떠있었습니다.
[한의택/상가 관리사무소 직원]
"아예 계단을 못 디뎠어요, 물이 많이 차 가지고. 근데 거기에 새카만 게 많이 섞여 있어서, 들어와 봤더니 기름이랑 같이 이제 막 뒤섞여 가지고…"
수도관 밸브를 잠그고 물을 다 빼냈지만, 기름은 어딘가에서 계속 흘러나왔습니다.
[상가 재건축 법인 이사]
"진짜 기가 막히다, 기름이. 기름이 어떻게 뒤엉키게 됐을까, 이게…"
민방위 대피소 문을 열고 지하실 가장 안쪽으로 들어가 봤습니다.
바닥 곳곳에 지름 10에서 20센티미터 정도인 구멍 10여개가 뚫려있습니다.
기름의 근원지였습니다.
이곳은 상가 지하에서 기름으로 추정되는 검은 액체가 솟아나온 곳입니다.
구멍에서는 지금도 이렇게 검은 액체가 잔뜩 묻어나오고 있습니다.
손가락이 잘 떨어지지 않을 정도로 진득한 것이 한 눈에 봐도 오래된 기름입니다.
기름의 정체는 뭘까.
상인들은 30년 전까지 아파트와 상가에서 난방용으로 쓰던 벙커C유라고 의심합니다.
[상가 재건축 법인 이사]
"'난방유가 매립이 되어 있다'라는 얘기는 계속 왕왕 들렸었죠. '기름 탱크가 있고, 그것이 그냥 매립이 되어 있는 상태다.' 불법인지 아닌지도 모르고, 그냥 전설같이…"
소방서 기록을 보니 강남 개발 초기인 1979년, 각각 31만 리터와 7천 5백 리터짜리 난방용 기름 탱크 2개가 있었던 사실이 확인 됩니다.
하지만 1993년 지역 난방으로 전환되면서 기름 탱크는 쓸모가 없어졌고, 2005년과 2007년 각각 철근과 콘크리트로 구멍과 환기구를 막고, 폐기됐다고 돼 있습니다.
완전히 철거가 됐는지, 남은 기름은 어떻게 처리된 건지 아무런 기록이 남아있지 않습니다.
강남구청 측은 현장을 둘러본 뒤 "동파로 샌 물이 땅 속으로 들어가자, 지하에 남아있는 기름이 위로 뜨면서 밖으로 흘러나온 것"으로 추정했습니다.
하지만 추가 조치는 없다는 입장입니다.
[서울 강남구청 관계자]
"위험물 시설 폐기를 하고 이랬기 때문에 일단 토양 오염으로 관리 대상에서 제외가 돼요."
정체 모를 기름 범벅 위에 세운 아파트의 유해성, 환경 교란 여부도 미궁으로 빠져들고 있습니다.
바로간다 이재민입니다.
(영상취재: 박주영 / 영상편집: 장예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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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데스크
이재민
[바로간다] 강남 한복판에 검은 기름 '둥둥'…"전설의 폐기름"?
[바로간다] 강남 한복판에 검은 기름 '둥둥'…"전설의 폐기름"?
입력
2021-01-26 20:20
|
수정 2021-01-26 2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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