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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동네의 비극…함께 떠난 할머니와 손주들

달동네의 비극…함께 떠난 할머니와 손주들
입력 2021-02-02 20:32 | 수정 2021-02-02 2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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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앵커 ▶

    강원도 원주의 재개발 지역에 불이 나면서 필리핀 출신의 다문화 가족 세 명이 숨졌습니다.

    손주를 돌보기 위해 필리핀에서 온 할머니는 불편한 몸을 이끌고도 아침 저녁으로 손주들을 등 하교 시켰고 매일 복지관을 들러서 도시락을 챙겼다고 합니다.

    이웃 주민의 애도가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손하늘 기잡니다.

    ◀ 리포트 ▶

    찻길 하나 없는 산비탈에 판잣집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습니다.

    "<여기까지만 갈 수 있나 보네요.> 네."

    윗 집과 아랫 집이 서로의 반찬 냄새를 맡았을 동네.

    지난 주말 새벽 화재로 두 집은 함께 무너져 이제는 뼈대조차 보이지 않습니다.

    팔을 뻗으면 양 손이 닿는 이 골목의 시간은 재개발이 시작된 17년 전에 멈춰있습니다.

    그리고 이 좁은 틈새로 번진 불길에 한 가족의 시간도 멈춰버렸습니다.

    새벽 3시, 옆 집에서 난 불길이 옮겨 붙으면서 필리핀인 73살 할머니와 초등학교 1학년 손녀, 유치원생 손자는 그 자리에서 숨졌습니다.

    [최초 신고자]
    "애기 엄마는 안으로 들어가고 저는 곁에서 받으려고 손을 내미는데 애기 엄마가 엎드렸다 그냥 일어났어요. 보이지가 않아서 구할 수가 없었어요. 그게 마지막이에요."

    몇 집 남지 않아 황량하기까지 한 동네.

    재개발 보상비를 받고도 떠나지 못한건 코로나의 여파 때문으로 보입니다.

    코로나로 공장이 문을 닫으면서 엄마는 일을 그만둬야했고,

    용접일을 하던 50살 남편은 일감이 끊기자 중국으로 떠났습니다.

    일 하러 나가야 하는 딸을 대신해 70대 노모는 지난해 필리핀에서 한국으로 왔습니다.

    불편한 다리로 산비탈을 오르내리며 매일 복지관까지 걸어와 도시락을 타간 할머니.

    할 줄 아는 유일한 한국어는 '감사합니다' 였습니다.

    [하태화/밥상공동체사회복지관 부장]
    "코로나 이후에 도시락으로 나가면서는 계속 도시락을 하루에 한 번씩 받아가셨고. 한국어는 거의 못하셨어요. 간단한 인사 정도, '고맙습니다‥'"

    생계가 더욱 어려워졌지만 이들 가족이 지원받은 건 아동수당 10만원이 전부였습니다.

    [주민센터 관계자]
    "재개발이라고 다 조사하거나 이러지는 않아요. 복지상담을 오신 것도 없었고, 신고된 것도 없었고, 그냥 일반인이신 거거든요."

    아이를 모두 잃은 부모는 빈소를 차릴 생각도 못하고 있습니다.

    [공경호/이웃 주민]
    "(아버지가) 공항에서 6시간 코로나 때문에 자가격리 해야 한다고 해서‥ (아버지가) 어떻게 살아야 하느냐고 막 울먹여요. 대성통곡해요."

    다음달이면 동생과 학교에 다닐 꿈에 부풀었던 9살 누나.

    [학교 관계자]
    "아이가 돌봄 선생님한테 '제 동생이 1학년 들어오니까, 동생도 돌봄 신청해야 하는데' 이렇게 얘기를 하고‥"

    지붕마저 사라진 집앞엔 주민들이 가져다 놓은 국화꽃 세 다발 만이 놓였습니다.

    MBC뉴스 손하늘입니다.

    (영상취재: 김희건 / 영상편집: 고무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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