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메뉴 바로가기
뉴스데스크
기자이미지 윤상문

[다시간다] 사람이 죽어 나가도…변한 게 없는 비닐하우스 숙소

[다시간다] 사람이 죽어 나가도…변한 게 없는 비닐하우스 숙소
입력 2021-03-01 20:30 | 수정 2021-03-01 20:33
재생목록
    ◀ 기자 ▶

    다시 간다 인권사회팀 윤상문 기자입니다.

    "비닐하우스는 집이 아니다."

    이주 노동자들이 열악한 숙소 문제를 호소하며 몇 년째 외쳐온 구호입니다.

    지난해 말 캄보디아 노동자가 혹한 속에서 숨지고 난 뒤에야 비닐하우스 숙소가 금지됐는데요.

    현장은 어떻게 달라졌을까요?

    다시 가보겠습니다.

    ◀ 리포트 ▶

    경기도 포천의 한 채소 농장.

    농작물을 키우는 여러 채의 비닐하우스 가운데 검은 천막으로 덮인 게 있습니다.

    노동자들의 숙소입니다.

    안을 둘러봤습니다.

    오래된 가스레인지는 시커멓게 때에 찌들었고, 칼바람을 막아주는 건 비닐 1겹과 천막 1장 뿐입니다.

    1년여 전 베트남에서 오기 전엔 숙소가 이 정도일 거라곤 생각도 못 했습니다.

    [베트남 노동자 A씨]
    "<청소 안 해요?> 다시 청소 안돼요. 기름 여기 많이 있어요. 그냥 자면 이거 바퀴벌레‥ <귀로 (들어와요)?> 네."

    가장 견디기 힘든 건 온수가 안 나온다는 겁니다.

    간이 열선을 고무통에 담가 물을 직접 데워서 써야합니다.

    [베트남 노동자 A씨]
    "이렇게 (열선을 물에) 꽂아 넣고 30분이 지나야 샤워할 물이 마련돼요. 그렇지 않으면 샤워할 따뜻한 물이 없어요."

    열선을 담가 물을 데우려다 세 차례나 감전됐습니다.

    [베트남 노동자 A씨]
    "손 아파. (옆구리도) 아파 여기. 1시간 반 (동안 마비됐어요.) 아파. 이거 이렇게 못해요."

    그래도 자신의 숙소는 사정이 좀 나은 편이라고 했습니다.

    바로 옆 여성 노동자들의 숙소는 아예 물이 나오지 않아 밖에서 물을 길어다 써야할 정도입니다.

    이천의 또다른 비닐하우스 숙소.

    간이벽을 세워 만든 방은 여기저기 상자로 덧대놨습니다.

    날씨가 추우면 벽으로 물이 흐르기 때문입니다.

    너덜너덜 밖으로 나와 있는 콘센트는 언제 불이 나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위험해 보입니다.

    베트남 노동자 B씨는 이곳에서 도저히 살 수가 없다며 노동부에 농장을 옮겨달라고 신청했습니다.

    노동부 조사 과정에서 농장주는 좋은 숙소를 구해줄테니 B씨를 계속 일하게 해달라고 한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하지만 좋은 숙소는 말 뿐.

    실제 돌아온건 협박뿐이었습니다.

    [농장주]
    "기숙사 어쩌고저쩌고 하는데 너네가 다 방 구하면 돼. 그 방에는 냉장고도 없고 세탁기도 없어. 뭐도 처음 사야 돼요. 그건 사장님(내) 사정이 아니야."

    지난해 12월, 영하 18도의 날씨에 난방장치가 고장 난 비닐하우스 숙소에서 캄보디아 노동자 속헹 씨가 숨졌습니다.

    이 사건 이후 고용노동부는 비닐하우스 숙소를 금지했고, A씨와 B씨는 원하던대로 농장을 바꿀 수 있었습니다.

    [김달성 목사/포천 이주노동자센터]
    "그동안 (사업장 변경을) 전혀 안 해주다가, 기숙사 문제로 사업장 변경을 해준 것은 그동안 보지 못했던 사례입니다."

    하지만 다른 이주 노동자들에겐 여전히 꿈 같은 이야깁니다.

    농장주가 숙소에 문제가 없다고 고집하면 언제 나올지 모를 노동부 결정을 기다려야 하기 때문입니다.

    고용노동부는 비닐하우스에 사는 것만으로도 이직할 수 있게 지침을 바꾸겠다고 했지만 두 달째 검토만 하고 있습니다.

    [이재갑/고용노동부 장관 (지난 2월 16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전체회의)]
    "(가설건축물까지 일률적으로 금지하면) 사업주가 기숙사를 제공하지 않는 상황으로 몰려서 도리어 주거환경이 악화될 우려가 있습니다."

    대안 마련도 지지부진한 상황입니다.

    농촌에 있는 빈집을 고쳐 이주 노동자에게 제공할 계획이지만 대상이 10곳에 불과합니다.

    공동기숙사 설치도 제안 수준에 머물러 있습니다.

    [경기도 관계자]
    "단순히 도나 이런 데서 결정한다고 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서…"

    농장주들도 당장 집을 신축하긴 어렵다며 비닐하우스 금지에 대한 유예기간을 달라고 곳곳에서 시위를 벌이고 있습니다.

    [최범진/한국농업경영인연합회 대외협력실장]
    "재정적 부담이 따르기 때문에 기존에 축조된 미허가 가설건축물이라도 미비시설의 보완을 전제로 이전처럼 고용을 허가해 줄 필요가 있습니다."

    하지만 의지가 있다면 불가능한 것도 아닙니다.

    강원도 화천의 한 농장주가 이주노동자들에게 제공하는 숙소입니다.

    냉난방도 잘 되고 창문도 정상적으로 달려있습니다.

    여러 문화권에서 온 노동자들을 배려해 조리대도 2곳을 만들었습니다.

    [농장주]
    "우리가 못 잘 데는 외국인 근로자도 못 자겠지요. 기본적으로 할 수 있는 건 해줘야지."

    농촌은 이미 이주 노동자 없이는, 한 해 농사를 시작하기도 어렵습니다.

    농민이든 이주노동자든 어느 한 쪽에 희생을 강요할 게 아니라, 공생을 위한 대책을 서둘러 내놓을 때입니다.

    다시간다 윤상문입니다.

    (영상취재: 김희건, 전승현, 최인규 / 영상편집: 김재환)

    MBC 뉴스는 24시간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 전화 02-784-4000
    ▷ 이메일 mbcjebo@mbc.co.kr
    ▷ 카카오톡 @mbc제보

    당신의 의견을 남겨주세요

      인기 키워드

        취재플러스

              14F

                엠빅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