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메뉴 바로가기
뉴스데스크
기자이미지 이준범

과로도 사고도 '혼자 감당'?…착취에 몰린 '배달의 10대'

과로도 사고도 '혼자 감당'?…착취에 몰린 '배달의 10대'
입력 2021-04-16 20:24 | 수정 2021-04-16 21:02
재생목록
    ◀ 앵커 ▶

    만으로 16세가 되면 오토바이 면허를 딸 수 있습니다.

    즉, 이때부터 오토바이 배달 일을 할 수 있고 실제로 학교 마치고 밤늦게 배달 하는 청소년들, 많습니다.

    그런데 배달 일이 특수 고용직이라는 것도, 또 이 직종이 뭔지도 잘 모른다는 걸 이용해서 일부 못된 어른들이 아이들한테 부당한 노동을 시키고 있습니다.

    그 실태를 이준범 기자가 취재했습니다.

    ◀ 리포트 ▶

    자정이 다 된 시각, 경기도의 한 공원.

    사람 한명 없는 어둠 속 벤치에 18살 A군이 혼자 앉아 있습니다.

    A군이 최근 시작한 일은 오토바이 배달.

    종일 30건 넘게 배달하느라 지칠대로 지쳤지만, 주문이 끊긴지 한참인데도 집에 가질 못합니다.

    하루 12시간인 근무 시간을 반드시 채워야 하기 때문입니다.

    [A군/18살]
    "아직 못 가요. 낮 12시부터 밤 12시까지 무조건이요. 해도 하루에 8시간 일할 줄 알았어요. 주 하루 이틀 쉬고 그런 식으로 일할 줄 알았는데.. 그게 제일 힘든 것 같아요."

    생계를 위해 시작한 배달일은 생각보다 훨씬 고됐지만, 마음대로 그만둘 수도 없습니다.

    오토바이 리스 기간인 6개월을 채우지 못하고 중도에 그만두면, 위약금조로 남은 기간의 리스비를 다 내야 하기 때문입니다.

    [A군/18살]
    "(하루) 2만5천원 곱해서 (리스 기간) 남은 금액 다 내야 해요. 너무 육체적으로도 힘들고 정신적으로도 조금 힘들어요. 더는 안 할 것 같아요."

    16살 B군도 하루 10시간씩 일하는 조건으로 배달일을 하고 있습니다.

    방과 후 새벽 두세시까지 배달을 하고 몇 시간 자고 난 뒤, 다시 학교에 갑니다.

    [B군/16살]
    "(오후) 4시부터 빠르면 (새벽) 2시. 늦으면 3시?"
    <힘들어서 "밤 11시에 가겠다, 10시에 가겠다" 이렇게 할 수 있어요?>
    "아프면 그렇게 할 수 있는데, 그거 아닌 이상은 거의 못 하죠."

    오토바이 배달일은 자영업 성격의 특수고용직.

    그래서, 근무시간을 정해놓고 일을 시킬 수 없게 돼 있지만, 이런 내용을 아는 청소년은 거의 없습니다.

    [40대 오토바이 배달기사]
    "(배달 일이란 건) 내가 하고 싶은 만큼만 하는 거예요, 그냥 건당이니까 어차피."

    현행 근로기준법상 청소년은 하루 7시간, 주 35시간 이상 일할 수 없고, 밤 10시 이후 근무도 원칙적으로 금지돼 있습니다.

    하지만, 배달일이 근로기준법 보호 대상이 아니다보니, 하루 12시간에 새벽 근무까지, 업체들 마음대로 일을 시켜도 문제 삼지 못합니다.

    [심준형/경기 고양시노동권익센터 노무사]
    "(그 조항은) 청소년 노동자의 건강권을 보호하기 위한 목적이거든요. 일하는 형태에 무관하게 보장되어야 입법 취지에 맞는 거죠."

    운전은 미숙한데 시간에 쫓기다보니, 사고도 빈번합니다.

    배달 2주 만에 사고를 내 다리 뼈가 으스러진 C군.

    처음엔, 하루 3만원 가까이 내는 오토바이 리스비에 보험료가 다 포함돼 있다고 들었지만, 막상 사고가 나니 보험 처리 비용 30만원과 오토바이 수리비 30만원을 요구받은 건 물론, 병원비·수술비도 본인 부담이었습니다.

    [C군/16살]
    "(업체에서) "사고 나도 걱정하지 마라. 보험처리되니까 돈 같은 건 걱정하지 마라" 하셨는데, 알고 보니까 안 되더라고요."

    경기도가 최근, 10대 배달 청소년들의 노동 환경 파악을 위해 실태를 조사한 결과, 대부분이 하루 평균 12시간, 주 6일을 일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직원이 아니어서 보호는 받지 못하면서도, 직원처럼, 근무시간에 매여 시키는대로 일하고 있었는데요.

    주문이 적은 새벽 시간이나, 기피 대상인 장거리·고난도 배달도 유독 청소년들 몫이었습니다.

    [D군/18살]
    "헛기침 한번씩 하면서 "이런 건 막내가 가줘야지?" 약간 이런 식으로.."

    [B군/16살]
    "밤에 일하면 차들이 많잖아요. 그 라이트 때문에 눈이 피곤하고.."

    하지만, 이 모든 문제들은 '특수고용'이라는 근로 형태 앞에서 정당화돼, 배달 청소년들을 보호할 제도적 장치는 전무한 실정입니다.

    [박승삼/경기도 평생교육국장]
    "본인이 특수 형태 노동자인지도 모르고 일을 시작했는데, 그들이 감당하기 어려운 법적 책임을 지우는 것은 부당합니다."

    멋모르고 일을 시작한 아이들 대다수는 문제가 있다는 사실조차 모릅니다.

    [B군/16살]
    "(업체 사람들이) 다 착하시고 잘해주셔가지고.. 처음 올 때부터."

    고용노동부는 10대 배달 청소년들이 법의 사각지대에 놓여있는 건 알고 있지만, 현황 파악이 안돼 구체적인 대책 마련은 어렵다는 입장입니다.

    국회에도 배달 대행 등 플랫폼 노동자 보호법이 발의돼있지만, 여기에도 청소년 관련 내용은 빠져 있습니다.

    MBC뉴스 이준범입니다.

    (영상취재 : 소정섭, 강종수 / 영상편집 : 조아라, 신재란)

    MBC 뉴스는 24시간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 전화 02-784-4000
    ▷ 이메일 mbcjebo@mbc.co.kr
    ▷ 카카오톡 @mbc제보

    당신의 의견을 남겨주세요

      인기 키워드

        취재플러스

              14F

                엠빅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