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앵커 ▶
사람이 아무리 일하느라 바빠도, 화장실을 안 갈 수는 없죠.
그런데 일하는 도중에 화장실에 다녀오면, 일감이 줄어서 돈을 벌 수 없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바로 국내 2위 배달 앱 '요기요'의 배달 기사들 이야긴데요.
인공지능, AI가 일감을 배분한다는 요기요.
그 시스템이 어떻길래 화장실을 참는 경쟁까지 시킨다는 건지, 먼저 김세진 기자가 이들의 이야기를 들어봤습니다.
◀ 리포트 ▶
서울 관악구의 한 음식점 앞.
점심 시간, 다른 라이더들이 배달에 바쁜 가운데, A씨만 오토바이에 앉아 뚫어지게 스마트폰을 봅니다.
아침 10시에 나와 3시간 째 일감을 기다리는 중입니다.
요기요는 근무평점에 따라 배달기사들에게 등급을 매긴 뒤, 1등급부터 일할 기회를 주는데, 2등급으로 떨어지면 일감 잡기가 어려워 월 수입이 수백만원씩 줄어듭니다.
그런데 늘 1등급이던 A씨가 지난달 갑자기 2등급으로 떨어진 겁니다.
[A씨/요기요 배달기사]
"1개예요. 스케줄 한 개 남은 거예요. 아, 없어졌다. <아, 그새 없어진 거예요?>"
원인은 화장실.
갑자기 배가 아파 휴식 신고를 하고 화장실에 6분간 다녀왔는데, 그 다음주 바로 2등급으로 내려간 겁니다.
[A씨/요기요 배달기사]
"일주일 일하면서 딱 6분 쉰 겁니다. 화장실이 가고 싶어도 안 가고, 배가 고파도 참고 그렇게 했는데…"
요기요 배달 7개월째인 B씨는 1등급 유지를 위해, 비가 오든 눈이 오든 모든 식사를 오토바이 위에서 해결해왔습니다.
[B씨/요기요 배달기사]
"전 휴식을 안 썼어요. 그래서 아예 안 쓰고 항상 김밥이랑 햄버거만 먹었어요."
그런 B씨도 지난해 11월 갑자기 등급이 내려간 적이 있습니다.
배달 거부나 지각 없이 모든 주문을 소화하다, 휴식버튼을 누르고 딱 30분 화장실에 다녀왔는데, 그게 화근이 된 겁니다.
[B씨/요기요 배달기사]
"(콜센터에) 막 따지니까, 그 때 얘기해주면서, 왜 휴식을 쓰느냐? 아 나 X 쌌다. 그럼 난 X 싼 것도 죄가 되느냐 (했더니) 시스템이 그렇다, 어떻게 할 수가 없다…"
이처럼 휴식의 대가가 크다 보니, 요기요 기사들은 아무리 화장실이 급해도 참고 또 참습니다.
[A씨/요기요 배달기사]
"창피하지만 너무 참아서 길에서 볼일을 보는 기사님들도 많습니다. 그 방법밖에 없거든요."
[K씨/요기요 배달기사]
"엘리베이터 탈 때 이럴 때는 진짜 그 안에서 미칠 정도예요. 손님한테 화장실 한번 써도 될까요 말 나오기 전까지 막…"
그렇다면, 휴식버튼을 안 누르고 잽싸게 화장실에 다녀오면 되지 않을까.
배달기사들을 따라다녀 봤습니다.
배달 가는 가게에 화장실을 부탁해보지만 매몰찬 답이 돌아오고,
"죄송한데 화장실 한번 쓸 수 있을까요?"
"없어요, 가까운 데 (가세요)…"
"화장실 없다고요?"
"네…"
공공건물 화장실도 코로나로 이용할 수 없는 곳이 많습니다.
[B씨/요기요 배달기사]
"이제 파출소에서 안 받아줘요. 코로나로 인해서 파출소를 못 들어가게 막았기 때문에…"
개방된 화장실을 찾아가는 데 걸린 시간이 20여분.
휴식버튼을 안 누를 수가 없는 겁니다.
라이더들은, 밥 먹거나 쉬는 건 바라지도 않으니, 화장실만큼은 편히 다녀올 수 있게, 일주일에 몇분 이상 쉬어야 등급이 떨어지는지라도 알려달라고 호소합니다.
하지만 요기요측의 한결같은 답은 모른다는 것.
모든 걸 인공지능 AI가 판단하기 때문에 자기들도 알 수 없다는 겁니다.
그러면서도 기사들 평가에 휴식시간이 반영된다는 건 인정합니다.
[요기요 콜센터]
"(휴식시간) 기준이 없는 거예요. AI가 상대적으로 판단을 했을 때, 상대 라이더가 몇 분을 (휴식) 걸었는지 이런 걸로 데이터를 종합하기 때문에…"
배달기사들이 등급 하락으로 수입이 줄까봐 화장실 참는 경쟁을 벌이는 사이, 요기요는 AI를 내세워 기사들을 손쉽게 줄 세우고, 쉴 틈 없이 배달에 즉각적으로 응하게 하는 효과를 거두고 있는 겁니다.
[K씨/요기요 배달기사]
"정말 노예처럼, 노예 노동하는 거예요. 주면 주는대로 일해야 하는 거고, 화장실 가고 싶은데 언제 가야 할 타이밍도 없고…"
MBC의 취재에, 요기요는 AI의 판단 기준은 밝힐 수 없다면서, 화장실 문제 등에 대해 개선할 뜻도 밝히지 않았습니다.
MBC뉴스 김세진입니다.
(영상 취재 : 소종섭, 강종수 / 편집 : 이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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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데스크
김세진
화장실 갔다고 일감 '뚝'…'쉴 틈' 없애버린 요기요
화장실 갔다고 일감 '뚝'…'쉴 틈' 없애버린 요기요
입력
2021-04-22 20:12
|
수정 2021-05-04 0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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