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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중취재M] 아까시꽃이 활짝 폈지만…갈 곳 잃은 꿀벌들의 한숨

[집중취재M] 아까시꽃이 활짝 폈지만…갈 곳 잃은 꿀벌들의 한숨
입력 2021-05-19 20:48 | 수정 2021-05-19 2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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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앵커 ▶

    매년 5월이 되면 전국의 산에는 아까시나무 꽃이 지천으로 피어나죠.

    양봉업자들은 해마다 이맘때면 남쪽 지방에서 북상하는 아까시 꽃을 따라가면서 꿀을 채집하곤 합니다.

    그런데 이제는 기후변화로 인해서 꽃이 한꺼번에 피기 때문에 양봉업도 위기에 처했다고 하는데요.

    김민욱 기자가 이동 양봉 현장을 1박2일 동안 따라가 봤습니다.

    ◀ 리포트 ▶

    경북 예천군 풍양면의 한 양봉장.

    동틀 무렵부터 벌집에 있는 꿀을 모으는 채밀작업을 하느라 분주합니다.

    노란색의 꿀이 뚝뚝 떨어지며 모입니다.

    "<한 통에 몇 마리 정도가?> 한 5만 마리 정도가. <아 이게 5만 마리에요?> 네. 잘 하십니다. 처음 하시는 거치고는. 시간 있을 때 여기 오셔서 아르바이트라도 하셔야 할 것 같아요. <네. 내년 봄에 제가…>"

    양봉 경력 50년의 이을재 씨.

    지난 25년 동안 그랬듯이 충청북도에 있는 집을 떠나 백 개가 넘는 벌통들을 들고 경북 예천을 찾았습니다.

    남쪽부터 피는 아까시꽃을 따라 조금씩 북상하며 꿀을 모으는 이동양봉의 시기가 왔기 때문입니다.

    전국 양봉업자 절반 이상이 이맘때면 벌통을 들고 아까시꽃을 따라 움직입니다.

    연간 꿀 생산량의 70%가 이때 나옵니다.

    "이 시기가 (양봉업자들에게는) 없어서는 안 되고 우리가 등한시해서는 안 돼요. <힘들어도 어쩔 수 없이 돌아다니셔야 되는 거군요?> 그럼요. 힘든 것을 낙을 삼아야 됩니다. 5월달에는요."

    이날, 이 씨는 경북 예천을 떠나 북쪽으로 70킬로미터 떨어진 충북 충주시 신니면으로 향했습니다.

    오후 6시, 벌통을 나를 트럭 4대가 들어옵니다.

    낮에는 벌떼의 웅웅거리는 소리가 엄청났는데 지금은 조금 작아졌습니다.

    이렇게 해질 무렵이 되면 낮 동안 꿀을 따던 벌들은 하나둘씩 벌통 안으로 돌아옵니다.

    그렇기 때문에 벌통 이동 작업은 해가 진 다음부터 진행됩니다.

    벌통 140여 개를 트럭에 싣고 캄캄한 시골길을 벗어나 국도에 오르자 벌통을 실은 다른 트럭들이 합류합니다.

    개화시기와 날씨에 맞춰 이동하다 보니 양봉업자들은 같은 날 같은 길 위에서 만납니다.

    "<비슷하게 움직이시는군요, 다.> 그럼요. 이 시기가 되면 충주시내 화물차가 전부 다 없어요."

    두 번째이자 마지막 이동양봉 장소인 충북 충주.

    한 장소에서 일주일쯤 머물기 때문에 꽃이 막 피기 시작할 때 새로운 장소에 도착해야 합니다.

    하지만 이곳도 꽃은 이미 활짝 핀 뒤였습니다.

    "지는 꽃보다는 오히려 피는 꽃을 (쫓아)가야지만 안정적으로 꿀을 딸 수가 있어요. <그런데도 이미 다 거의 만개한 상태네요.> 그렇죠."

    더 북쪽으로 올라가 봐야 이미 꽃이 다 져서 더이상 꿀을 딸 수 없습니다.

    몇 년 전만 해도 이을재 씨는 경북 예천보다 훨씬 아래인 경남 함안부터 꽃을 따라 전방까지 네다섯 번 꿀을 따며 북상했습니다.

    "경상남도 함안. 거기까지 갔었고. <더 위로도 올라가신 적 있으세요?> 그 위로 전방 쪽에 올라갔었는데."

    하지만 지금 이 씨의 이동거리는 크게 줄었습니다.

    기후변화로 전국에서 비슷한 시기에 꽃이 한꺼번에 피면서, 한 번 혹은 많아야 두 번 이동하면 개화시기가 끝납니다.

    "충주에서 꽃이 끝난다고 하면 전방 쪽에도 '거의 마무리입니다.' 이렇게 소식이 오더라고요."

    2007년 최대 30일까지 차이가 났던 남쪽과 북쪽의 개화 시기는, 2017년에는 16일로 10년 만에 절반으로 줄었습니다.

    [나성준 박사/국립산림과학원]
    "(최근 자주 나타나는) 2~3월의 고온현상, 그로 인해서 적산(누적된) 온도가 증가하고 이러한 영향이 남부와 북부에 동일하게 나타나고 있는데요. 그 결과 아까시나무의 개화시기 (차이)가 점차 줄어들고 있다고 판단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봄철 강풍과 이상저온 여름철 집중호우까지 반복돼 벌이 꿀을 모으기도 어렵게 날씨가 변했습니다.

    지난해에는 특히 국지성 폭우로 인한 피해가 컸습니다.

    [안창숙/양봉업자]
    "완전히 (물이) 쓸다시피 해가지고 거의 다 떠내려가고 아무것도 남은 게 없어요. <벌통 몇 통 정도 있었는데요?> 벌통이 뭐 한 1천 통 가까이…"

    2000년대 이후에는 더운 중국 남부지방의 등검은말벌까지 등장했습니다.

    토착화된 등검은말벌은 꿀벌을 공격해 초토화시키는 주범입니다.

    [반화병/한국양봉협회 이사]
    "등검은말벌은 가을철에 아주 활발히 움직입니다. 벌을 죽여 버리니까. 다 피해가 심각하죠."

    이러다 보니 꿀 생산량은 크게 떨어져 작년엔 6년 전의 3분의 1로 줄었습니다.

    "아까시에서 유밀이 많이 되면서 향도 좋고 그래요. 생산량이 만약에 줄어든다라고 했을 경우에는 외국 꿀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그런 상황이 오지 않을까 염려스럽습니다."

    언제나 달콤함의 대명사로 기억되는 우리의 꿀.

    하지만 기후변화는 우리에게서 꿀마저 빼앗아 가려 하고 있습니다.

    MBC뉴스 김민욱입니다.

    (영상취재: 정인학 / 영상편집: 이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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