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욕탕을 '3일장' 지내다…철거되는 공간의 애도

◀ 앵커 ▶

예능프로그램 놀면 뭐하니에서 환불 원정대 멤버들이 비닐과 호피 의상을 뽐내는 장면인데요.

이곳은 세트장이 아니고 목욕탕을 개조한 문화공간이었습니다.

오래된 목욕탕이 문을 닫으면서 예술인들이 공연과 전시 공간으로 되살린 곳인데요.

그런데 이곳에서 장례식이 열렸습니다.

어떤 사연이 있는 걸까요.

전동혁 기자가 다녀왔습니다.

◀ 리포트 ▶

서울 마포구 아현동의 한 낡은 건물.

1958년 지어진 동네 목욕탕 '행화탕'입니다.

요즘은 보기 힘든 보일러 굴뚝이 솟아있고 남탕 여탕으로 구분해놓은 문을 열고 들어가면 옛날식 타일이 목욕탕 벽면을 채우고 있습니다.

목욕이 귀한 행사처럼 여겨지던 6-70년대 동네 사람들이 이른바 때빼고 광내던 행화탕은 그러나 아현동 일대 재개발이 시작되면서 지난 2008년 문을 닫았습니다.

낡은 목욕탕 공간을 다시 되살린 건 예술인들이었습니다.

"예술로 목욕합니다"라는 구호를 내걸고 행화탕을 공연과 전시 공간으로 탈바꿈시킨 겁니다.

[정민아/가야금싱어송라이터]
"예술인들이 아주 좋아할 만한 그런 요소가 있는 곳이잖아요. 목욕탕이라는 것도 그렇고. 재개발을 하지 않은 상태 그대로 보존돼 있다는 것도 그렇고."

그러나 '재개발 예정지'에 있던 행화탕은 올해 들어 결국 "퇴거 명령"을 받았고, 예술단체들은 마지막 기획으로 행화탕 장례식을 3일 동안 치렀습니다.

[서상혁/축제행성 대표]
"이 시한부의 건물에 들어오면서 언젠가는 장례라는 의례로 함께했던 사람들과 기억을 좀 남겼으면 좋겠다."

목욕탕에 들어가면 상주가 조문객을 맞이하고

"행화탕에 전하고 싶은 이야기 남겨주시면…"

목욕탕 곳곳에 애도의 낙서를 남길 수 있습니다.

[전윤서]
"제가 다녀간 지도 거의 한 1년? 굉장히 오래된 흔적이 사라지는 게 저는 아쉬운 마음이 좀 커요. 사라져야만 하나?"

동네 목욕탕으로 시작해, 복합문화공간으로 도심의 한 구석을 지켜온 행화탕.

추억만을 남긴채 이제 곧 철거에 들어갑니다.

MBC뉴스 전동혁입니다.

(영상취재: 이준하·한재훈/영상편집: 이지영/영상제공: 축제행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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