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메뉴 바로가기
뉴스데스크
기자이미지 윤수한, 김정인

[집중취재M] 3천만 원이 소액?…이유도 안 나오는 '두 줄' 판결

[집중취재M] 3천만 원이 소액?…이유도 안 나오는 '두 줄' 판결
입력 2021-06-14 20:48 | 수정 2021-06-14 23:46
재생목록
    ◀ 앵커 ▶

    돈 문제로 법정에서 다투는 일,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상황이죠.

    금전 관련 민사 재판 가운데는 '소액 심판'이란 게 있습니다.

    분쟁 금액이 비교적 적은 사건인데, 우리 법원은 소송 금액 3천만 원까지를 소액 사건으로 분류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재판은 결론이 나도, 판결문에 이유 한 줄 적혀 있지 않을 때가 대부분인데요.

    이기면 다행이지만, 졌을 경우엔 영문조차 알 수 없어서 이의 제기도 쉽게 할 수 없는 게 현실입니다.

    한 해 수십만 건씩 쏟아지는 소액심판청구, 당사자들로선 억울하고 당혹스런 사연들부터 들어보시겠습니다.

    먼저 윤수한 기자가 집중 취재했습니다.

    ◀ 리포트 ▶

    지난 2014년, 안 모 씨는 치과 치료를 받은 뒤 반년 가까이 통증에 시달렸습니다.

    [안 모 씨/'소액 사건' 원고]
    "(한쪽 볼이) 점점 함몰이 되고, 여기 보철 치료한 이빨도 시꺼멓게 되고, 이쪽도 시꺼멓게 되고 잇몸이 녹아나고… 후유증이 막 갑자기 생기는 거예요."

    증상은 계속 악화됐고, 결국 의사를 상대로 치료비 등을 청구하는 소송을 냈습니다.

    "치료 과정에 문제가 있다"는 내용의 감정서까지 어렵게 받아내며 2년 8개월이나 법정공방을 벌였습니다.

    하지만 결론은 패소, 더 기막힌 건 판결문이 달랑 두 장이란 사실이었습니다.

    원고·피고의 인적사항을 빼면 "원고의 청구를 기각한다, 소송 비용은 원고가 부담한다." 판결 내용은 이 두 줄이 전부였습니다.

    안 씨가 청구한 손해배상금은 2천3백여만 원.

    우리 법원은 소송 금액 3천만 원까지는 '소액사건'으로 분류합니다.

    이 경우 1심 판결문에는 결론의 이유를 쓰지 않아도 됩니다.

    그래서 왜 졌는지, 알 수 없는 겁니다.

    [안 모 씨/'소액 사건' 원고]
    "이해도 안 되지만 황당해요. 하다못해 (판결) 이유를 두 글자라도 쓰면 그래도 이해될지 말지야. 대한민국 법이 왜 이런지 모르겠어요."

    교통사고를 당해 380만 원짜리 소송을 냈던 화물차 기사 박상익 씨도 마찬가지.

    블랙박스 영상 등을 근거로 상대 차가 무리하게 끼어들었다고 강조했지만, 1심 법원은 박 씨 과실이 70%라고 판결했습니다.

    역시, 판결 이유는 알려주지 않았습니다.

    2심까지 가서야, 상대 과실이 70%라는 정반대의 판단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박상익/'소액 사건' 원고]
    "첫 번째 (재판) 결과가 제가 가해자로 나오니까 좀 황당했습니다. 판사님 성향의 문제가 아니라, (사고 영상을) 제대로 보지 않았다고 저는 판단하거든요. 누가 봐도 상식적인 결과인데…"

    이렇게 '이유 없는 1심 판결'이 비일비재한 소액사건은 한해 70만 건, 전체 민사 재판의 70%를 넘습니다.

    [신지식/대한법률구조공단 변호사]
    "수학문제를 풀 때도 풀이과정을 생략하고 바로 답을 쓰면 틀린 답을 쓰기 쉬운 것과 마찬가지로 판결 이유를 쓰지 않게 되면 판사 스스로 그 오류를 수정하기 어렵기 때문에…"

    항소를 하면 그나마 결론의 근거가 적힌 판결문을 받아볼 수 있지만, 실제 2심까지 가는 비율은 고작 2%입니다.

    1심 재판부의 판단 근거를 모르기 때문에, 항소하려면 증거와 논리를 어떻게 보강해야 할지도 알 수 없어 그냥 포기하는 겁니다.

    소액 사건의 기준이라는 '3천만 원'.

    소송의 당사자가 대부분 서민들이란 걸 고려하면, 이 금액이 진짜 '소액' 취급을 받아도 되는지 의문입니다.

    이런 기준은 누가, 왜 정한 건지 계속해서 김정인 기자가 따져봤습니다.

    (영상취재: 현기택, 나경운, 노성은 / 영상편집: 김정은)

    ◀ 리포트 ▶

    시민들에게 물어봤습니다.

    [박종민·황남권]
    "<어느 정도가 판결 이유를 아예 생략할 수 있는 소액이라고 생각하실까요?> 20만 원 이내? 저는 15만 원?"

    [이민아]
    "100만 원? 100만 원이 보통 사람들이 들고 다니는 휴대폰 기계가 100만 원…"
    [김명선]
    "50만 원? 어느 재판이든 (판결) 이유가 있어야 하니까."
    [김명선]
    "<(법원에선 소액사건 기준을) 3천만 원으로 하고 있어요.> (판사들이) 일을 안 하시겠다는 작정이신지. 3천만 원의 이유가 뭔지 궁금하네요."

    공감을 나타내는 법조인들도 적지 않습니다.

    [최정규/변호사]
    "2018·19년 봉급 생활자의 평균 임금(중위값)이 2천8백만 원 정도더라고요. (법원의 소액 기준이) 처음에는 뭐 몇십만 원 선에서 시작했는데, 점점 이제 올라갔죠."

    [심제원/변호사]
    "소액이 아니죠. 소액이 아니죠. 3천만 원이라고 하면 어떤 사람한테는 평생을 모은 돈일 수도 있는 것이거든요."

    다른 나라는 어떨까요.

    독일은 600유로, 80만 원 정도. 일본은 140만엔, 1천4백만 원입니다.

    우리보다 못 사는 나라들이 아닌데, 소액의 기준 자체가 훨씬 낮고, 함부로 못 바꾸도록 법으로 못박아놨습니다.

    반면 우리는 대법원이 알아서 결정합니다.

    [최정규/변호사]
    "2016년까지는 2천만 원이었어요. 근데 갑자기 2017년부터 이제부터는 3천만 원으로 할게~ 그걸 누가 정했지? 시민들이 그걸 동의했나? 시민들한테 물어나 보긴 했나?"

    '소액 심판'은 원래 민생 사건을 빨리 처리하겠다며 만든 제도입니다.

    서류 없이 진술만으로도 접수할 수 있는데, 이렇게 구술로 접수된 소송, 사실상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최정규/변호사]
    "'내 사건은 소액사건이니까, 내가 구술로 소를 제기할 테니 받아적어라' 하면 '법률구조공단 가보세요'라고 하거든요."

    생업에 쫓기는 서민들을 위해 재판도 저녁이든 주말이든 진행하라고 법에 보장돼 있지만, 아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이렇듯 소송당사자의 편의는 외면당하는 반면, 판사가 판결문을 짧게 쑬 수 있도록 한 규정만 꼬박꼬박 지켜지는 겁니다.

    [도진기/변호사(前 판사)]
    "업무적으로는 판결 이유를 안 쓰는 것, 이건 굉장히 큰 메리트(이점)이기도 하거든요. 식당에서 신발 잃어버린 사건도 '절반 주고 끝내' 이렇게 판결문 쓰긴 쉬운데. 이유를 대법관도 잘 못 쓸 걸요. 생활상의 분쟁은 계약서가 없잖아요. 법리를, 어떻게 엄밀하게 잣대를 갖다대겠습니까."

    대법원도 이런 사정을 모르지 않지만, 판사가 부족해 어쩔 수 없다고 합니다.

    [도진기/변호사(前 판사)]
    "사실 시간을 많이 잡아먹는 게 판결문 작성이거든요. 소액사건이 판사 1인당 한 달에 한 4-5백 건 정도 접수가 돼요. 일주일에 백 건, 날밤을 새도 못합니다. 불가능한 숫자예요."

    결코 적다고 할 수 없는 3천만 원.

    그 돈이 왜 그렇게 처분돼야 하는지 이유라도 들어보고 싶어서, 그래야 덜 억울할 것 같아서, 종종 3천만 1백 원짜리 소송들이 등장합니다.

    [심제원/변호사]
    "(소액재판 안 받으려고 3천만) 1백 원, 1천 원 (더 청구하는) 그런 경우도 있죠."

    이른바 '이유 없는 판결문' 자체를, 극히 예외적으로만 인정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최정규/변호사]
    "나는 정말 평생 한 번 법원에 갈 사건인데, 이 사건이 이런 식으로 처리되고 정말 내 사건을 소중하게 생각해서 처리되기를 바랄 텐데… 지금의 방식은 과연 타당한지에 대한 점검이 필요한 거죠."

    MBC뉴스 김정인입니다.

    (영상취재: 서현권 허원철 강재훈 / 영상편집: 정지영)

    MBC 뉴스는 24시간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 전화 02-784-4000
    ▷ 이메일 mbcjebo@mbc.co.kr
    ▷ 카카오톡 @mbc제보

    당신의 의견을 남겨주세요

      인기 키워드

        취재플러스

              14F

                엠빅뉴스